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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Jun 24. 2020

침묵이 전하는 위로

이민희

이민희의 사진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연상시킨다. 다소 불편한 몸으로 인해 조금은 느리고 조금은 흐릿하게 다가오는 그녀의 사진은, 애써 무언가를 행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두는 것이 보통의 위로라고 말하는 듯하다.


잠들었던 눈(Sleeping eyes) 보랏빛 사운드, Pigment Print, 30x40cm, 2015


침묵도 언어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온점이 아닌, 줄임표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표현을 안 하는데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아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살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아는, 눈빛만 보아도 아는, 아니 마음에 와닿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말 한마디보다 어깨나 등을 따듯하게 토닥거리는 것이 보통의 위로처럼 말이다.


얼마 전 ‘대안예술공간 이포’에서 개인전을 마친 이민희의 사진은 온점보다 줄임표에 가깝다. 한 장의 사진에 미사여구를 드러내는 대신, 어떤 감정을 함축해서 보여주는 편이다. 그는 “나는 시를 쓰고 싶었다. 나는 하나의 이미지로 그런 시를 쓰고 싶었다. 가슴 벅찬 생명의 시를. 그리고 시시콜콜한 사랑의 시를. 그러나 나는 그런 시를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대신 그것들을 느낄 수 있는 사진들을 찍는다.”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그가 추구하는 사진은 ‘보이는 것을 넘어 내면의 빛으로 덥혀진 뜨거운 사진’이다. 사실 이민희는 조금 특별한 사진가다. 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장애를 지닌 몸으로 인해 눈에 보이는 것들과 몸으로 감각되는 것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대로 인지되지 않고, 매우 느리고 흐리게 다가온다. 이민희의 사진이 또렷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이유다.


새벽, 바람의 향기, Pigment Print, 90X60 cm, 2018


그동안의 이민희 작업을 살펴보면, 사진 속 배경과 피사체가 명징하진 않지만, 그 안에선 바람과 빛과 체온의 따스함이 전해진다. 몸으로 감각되는 것들이 시시각각 인지되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릴 뿐,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는 모양새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쨍하지 않은 햇빛에서,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진한 삶의 향이 느껴진다고 할까. 찰나의 순간에 피사체를 박제하는 대신, 작은 움직임에도 반응하고, 세파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우리네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마치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애써 무언가를 행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두는 것이 보통의 위로라고 말하듯이.


이러한 이민희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진이 ‘위로’와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자신의 작업은 무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됐으며, 사진에 반영된 것은 자신의 상태라고 말한다. 이는 그동안 옳다고 여겼던, 살아오면서 형성된 습관과 사회에서 익힌 관념들에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황과 자신이 원하는 상태가 서로 상충한 것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도 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지 않는가. 비록 이민희는 자신의 작업이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서 물리적인 셔터 속도와 마음의 일렁거림이 일으킨 공명이 우리를 공감하게 하고 위로하는 것일 테다.


탄생, Pigment print, 90x60cm, 2019


이민희는 지난해 12월 열린 개인전 <푸른 공명>에서 위와 비슷한 결의 사진을 선보였다. 자신을 괴롭히는 의문의 근원지를 찾아가는 데 방점이 찍힌 작업은 ‘가족과 어머니’를 소재로 한다. 이민희는 신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5년 만에 마주했을 때 눈물부터 흘렸다고 한다. 어머니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안쓰럽고, 미웠지만, 어머니의 품은 포근했다. 이때 이민희는 자신을 둘러싼 의문의 근원 중 하나가 어머니의 부재에서 비롯됐음을 깨달았다.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슬픔으로 승화된 셈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머니의 공간과 소품, 어머니를 떠올리는 심상을 담은 풍경을 촬영했다. 이후 사진을 전시장에 설치한 다음, 벽면에 자신의 마음을 손글씨로 써 내려갔다. 이민희는 이번 작업에 대해 “한 존재의 울림은 내게 잠재된 어머니와 내 삶에 대한 허망함을 만나게 했다. 스스로에게 분노와 참회의 시간을, 병든 어머니는 내게 있는 욕심과 사람다움에 대해 자문하게 했다.”라고 말한다. 여전히 여백이 많은 사진이지만, 침묵에서 표현으로 몇 발자국 나아간 느낌이다. 사진을 통한 그의 소통은 한동안 끊어져 있던 인연의 끈을 얽어매게 하였을까. 마음속 슬픔의 시작점을 발견했으니 작업이 위로로 이어질 수 있을까. 우리가 이민희의 사진에서 위로를 받는 것처럼, 이제는 그 역시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2020. 01]


(왼쪽) 진실의 창, Pigment print, 60x90 cm, 2019 (오른쪽) 잠든 문, Pigment Print,60x40cm,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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