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새로고침2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효니 Mar 12. 2018

예술이 예술을 만날 때

안웅철, 모모미, 송철의 그리고 박귀섭

짐노페디의 공명, 안웅철

우리나라에서 유일무이하게 독일 음반사 ECM의 앨범 표지 사진을 찍는 사진가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ECM 대표 만프레드 아이허(Manfred Eicher)와 작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굳이 비유하자면 연주가가 ‘도이치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과 음반을 제작하는 일이라고나 할까. 1980년대 대중가요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안웅철이란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민해경, 박성신, 장필순, 조동진의 사진을 찍은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얼핏 대중가요와 가까운 사진가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음악 마니아다. 클래식과 재즈는 물론 힙합,헤비메탈도 즐겨 듣는다. 그런 그가 사진가로서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 ECM 앨범 표지 사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무려 12년을 기다린 끝에 비로소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2013년 발매된 정명훈의 피아노 소품집이 그의 첫 번째 앨범 표지 작업이다. ECM은 서양 음악을 다루는 레이블이지만, 안웅철의 사진은 동양적이다.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단조로움 속에 공존하는 적막감과 신비감이 에릭 사티 음악의 매력 아니던가. 그의 사진을 볼 때 세속과 멀어지는 느낌이 드는 건 그 이유 때문인 듯하다. 눈을 통해 머리를 비우고, 귀를 통해 마음에 공명을 주니 ECM과 안웅철의 만남이 조화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www.anwoongchul.com


글의 틈새를 들추다, 모모미

사진을 찍으면서 무엇을 바탕으로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떠오르는 개념, 장면만으로는 작업에 한계가 있었다. 다른 사람은 바로 눈치 챌 수 없어도, 자신만은 그 연결지점이 분명한 작업을 하고 싶었다. 마침 늘 마주했던 것이 텍스트, 그 중에서도 ‘시’였다(그녀는 남편 이로와 함께 책방 ‘유어마인드’를 운영하고 있다). 그때부터 ‘시’를 사진에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첫 번째 모티프가 됐던 것은 황인찬의 시집 <구관조 씻기기>다. 시인의 문장들은 편하게 다가오는 듯하면서 어렵게 다가왔다. 머릿속에 여운도 오래 남았다. 기억 속에 되풀이되는 텍스트를 보니 사진작업에 응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모미는 <구관조 씻기기>처럼 서정적이고 매력적인 틈이 많은 시를 좋아한다. 중간 중간 무엇인가 생략돼 있는, 호흡이 긴 장면에 자신의 이미지를 채워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시와 사진을 접목하는 이유는 감정과 생각의 확장을 위해서다. 이는 추상적인 텍스트를 머릿속에서 떠올린 채 어떤 장면을 바라보게 한다. 사실 텍스트를 사진으로 새로이 표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둘 다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지칭하고 묘사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단어나 문장을 그대로 끌어와 피사체를 표현하는 것이, 어떻게도 연결되지 않는 극단적인 자유로움을 선보이는 것이 좋은 방법은 아닐 터. 이와 관련해 모모미는 사진과 텍스트의 아주 옅은 접점을 보여주고, 또 자신의 감각을 살짝 비트는 것이 작업을 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했다. 

alohagarden.net


소리로 그린 그림,  송철의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한 플루트에 한동안 미쳐 살았다. 당연히 평생을 플루티스트로 살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운명을 바꾼 건 사진이었다. 영국 유학시절 하우스메이트였던 기자의 취재를 도와주다가 사진 찍는 일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음악 하나만 알고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음악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이후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음악을 했던지라 모든 것이 서툴렀다.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은 쉽게 식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일 아침 사진을 찍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곧바로 직업 사진가의 길을 선택했다. 송철의는 ‘위로’를 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다양한 작업을 하지만 주제는 늘 ‘위로’로 귀결된다. 자기 자신에게 실망했던 시절, 아름다운 자연을 찍으며 위로와 용기를 얻은 것이 계기가 됐다. 사진과 음악의 만남은 그에겐 필연일 것이다.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음악을 하고 있으니 그들과 협업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이 마음이 구체화된 건 그의 사진에서 영감을 얻은 피아니스트 이진주가 작곡을 하면서부터다. 이후 다른 작곡가들과 협업을 하게 됐고, 그 역시 다른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사진작업을 했다. 닐스 프람, 올라퍼 아르날즈, 피터 브로더릭 등이 송철의를 자극한 음악가들이다. 그는 음악을 듣고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이미지들이 눈앞에 그려지면 꽤나 큰 성취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는 무력했던 지난날의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가 아닐까 싶다. 이 위로는 다시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운명의 장난도 꽤나 값진 일이 될 것이다. 

www.soundrawing.net     


몸짓과 사진의 파드되, 박귀섭

발레는 오랜 수행의 결과물이다. 몸이 먼저 기억할 때까지 매일 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한다. 규율에 얽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현대무용은 다르다. 규정된 형식이나 기교를 떠나 자유와 새로움을 추구한다. 이처럼 어우러지지 않을 것 같은 발레와 현대무용 사이에도 커다란 교집합이 존재한다. 무용수의 언어, 바로 ‘몸짓’이다. 무용수가 무엇인가를 몸짓으로 표현하면, 사람들은 이를 해석해야 한다. 상상하는 재미는 있지만, 누군가의 몸짓에 어떤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는지를 단번에 알아채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소통의 부재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이 간극에 박귀섭이 있다. 그는 촉망받는 발레리노에서 사진가로 전향한 인물이다. 발레가 베이스지만 현대무용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며, 또 이를 통해 ‘소통’하고자 한다. 도구는 현대무용과 비슷한 선상에 있는 현대미술, 바로 사진이다. 그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발레무용수를 모델로 해서, 현대무용을 연상케 하는 장면을 ‘직관적’ 매체인 사진으로 표현한다. 몸짓에 담긴 메시지를 간결하면서 구체적으로 전달한다는 느낌이다. 발레를 하지 않았다면 작업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작업은 발레리노가 아닌 사진가로 살면서 겪은 이야기다. 자신을 버티게 해준 주변 사람들, 자신의 굴곡진 인생 등을 나무 뿌리와 음표들로 묘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묻어난 몸짓과 사진의 파드되(Pas de deux, 2인무)를 이해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그렇다고 굳이 정답을 찾을 필요는 없다. 앞서 말했듯 박귀섭의 목표는 ‘소통’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상상하고 말하려는 시도 자체가 소통의 시작이라는 표현은 결코 비약이 아닐 것이다. www.a-apollon.com [2017.1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