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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Feb 28. 2022

한국사진 흐르는 미리내를 그리며

2021년 에디터의 이목을 집중시킨 활동이 있었으니, 바로 한미사진미술관의 ‘젊은 사진가 포트폴리오’ 프로그램이다. ‘클래식’이라는 한미사진미술관을 둘러싼 고정관념을 깨트리기라도 하듯, 선정된 작가들의 작업이 꽤 실험적이었기 때문이다. 한미사진미술관 김선영 학예연구사와 함께 그동안의 한미사진미술관 활동을 톺아보고, 변화를 끌어낸 모멘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한미사진미술관 삼청별관 ⓒ 박기호


한미사진미술관을 둘러싼 스테레오타입을 ‘클래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 전시 대부분이 ‘원로 및 중견 세대 작업’, ‘스트레이트한 사진’ 소개에 큰 비중을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를 기획할 때 우선순위에 두는 내용이 무엇인가?

전시 프로그램 대부분이 ‘원로 및 중견 세대 작업’, ‘스트레이트한 사진’에 큰 비중을 두었다는 말은 한편으로는 맞고, 한편으로는 틀리다. ‘원로 및 중견 세대 작업’에 비중을 둔 건 맞지만, 스트레이트한 사진이라는 특정 경향에 편중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대변하는 건 고명근(2002), 아론 시스킨드(2002), 이상현(2008), 테라다 마유미(2012) 등의 전시다. 국내 첫 사진미술관으로서 기관이 지녔던 책임의식과 운영 철학이 자연스레 클래식한 작업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공간으로 비친 것 같다.

원로 및 중견 세대 조명에 집중했던 건 사진전문미술관이 전무했던 개관 당시, 한국사진을 둘러싼 여러 과제 – 예술사진의 흐름 파악과 그에 대한 밀도 있는 연구, 전시와 출판, 작품 소장, 작가 지원 등 – 를 위한 첫 발걸음을 떼는데 시간 흐름 순의 선형적 방법론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사진의 맥락을 파악하고 정리하는 부분에서 필요한 것이었다. 그간 조명해야 했던 작가들을 시대, 주제 구분을 통해 이른 세대부터 짚다 보니 자연스레 해방 전후, 20세기 후반에 주조를 이뤘던 흑백 스트레이트 사진이 자주 등장했다.

전시를 기획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건 작업, 주제의 시의성과 더불어 사진사 안에서 꼭 짚어야 하는 작가, 작업, 주제인지에 관한 부분이다. 그동안 다수의 한미사진미술관 전시가 주제전 보다 개인전 위주로 소개되었는데, 이는 하나의 경향, 주제 아래 작업을 조명하기에 앞서 개별 작가 작업에 대한 총체적 탐구가 앞서야 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사진전문미술관이기에 1년 동안 모든 전시 프로그램을 사진 매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을 살려 주제전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모색을 계획 중이다.


선형적 방법론 관점에서, 한미사진미술관 내 ‘한국사진문화연구소’는 한국사진사를 정리하는 중요한 기관이다. ‘교육, 학술’ 목적이 아니더라도, 귀한 사진사 자료에 접근할 방법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국사진문화연구소에서는 한국사진사의 주요 문헌 자료의 정리 작업과 구술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자료집과 기관지 <사진+문화>로 발간하여 연구자뿐만 아니라 한국사진사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과 공유하고 있다. 이는 한미사진미술관 웹사이트(www.photomuseum.or.kr) 상단 ‘RESEARCH INSTITUTE’에서 모두 볼 수 있다. 그 외 자료 열람은 교육, 학술과 관련된 비영리 목적에 한해 기관 방문하여 가능하다. 다만, 현재 기관 열람은 방역 조치에 따라 중단되었다. (김소희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연구원 답변으로 대체)


최근 클래식한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한미사진미술관의 시도가 인상적이다. 2015년부터 시작한 ‘젊은 사진가 포트폴리오’ 프로그램 덕분인 듯하다. 특히, 2021년 김박현정 작가와 정승원 작가 선정이 눈에 띈다. 예년 선정 작가들과 달리, 두 작가의 작업은 클래식/스트레이트한 사진과 거리가 있다. 이를 변화의 모멘텀으로 봐도 무방할까?

탈피라기보단 ‘확장’의 모멘텀 아닐까. 어느 순간 ‘시작점부터 차근차근 짚어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에만 치중하다 보면 동시대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사진을 둘러싼 다양한 실험과 그에 관한 즉각적인 반응에 우리가 거리감을 가지고 분리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원로 및 중견 세대의 동시대 작업이 중요한 만큼, 현대사진 심장부에 있는 젊은 세대 작가에 관한 관심이 시급하다고 느꼈다. 한편으로는 이들도 언젠가 중견, 원로가 될 텐데, 그전에 미술관이 인연을 맺고, 작업 인생의 한 편에서 같이 고민하고 소통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멋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기존의 (과거로부터)한 방향보다는 (과거와 현재로부터)쌍방향의 접근을 통한 ‘틈 메우기’가 유효하다는 판단을 했다. ‘젊은 사진가 포트폴리오, MoPS Talent Portfolio’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그렇기에 미술관 학예실에서는 이를 단순한 ‘지원’ 프로그램으로 여기지 않는다. 미술관의 필요 의식에서 기획된 것이기에 젊은 사진가들을 ‘지원’하는 것이 아닌, ‘협업’하고 ‘소통’한다는 태도로 임하고 있다. 함께 즐겁고 신나게, 때로는 치열하게 무언가를 만들다 보면 한국 현대사진에, 미술관에 새로운 움직임의 씨앗들을 심을 수 있지 않을까.


젊은 사진가 포트폴리오 작가 프레젠테이션 현장 사진


‘젊은 사진가 포트폴리오’ 프로그램 진행 과정을 설명해달라. 예를 들어, 매년 평균 몇 명이 지원하는지, 심사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심사할 때 어떤 부분에 주목하는지, 선정되면 어떤 지원을 받게 되는지 등등.

해마다 편차가 있지만, 매년 평균 50~60개의 포트폴리오가 접수된다. 디지털 포트폴리오 심사(1차)와 실물 작업 및 작가 대면 인터뷰(2차)를 통해 미술관 내부에서 이뤄졌던 기존 선발 절차를 2021년부터 2차 선정 과정에 외부 리뷰어 3인(강홍구, 신수진, 최봉림)을 초청해 작가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2차 선정 과정의 경우, 작업의 우열 가리기가 아닌, 시의적절한 형태의 지원 채널을 작가와 매칭하는데 중점을 뒀다. 더불어 동료 작가들과 한자리에 모여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외부 리뷰어에게 작업에 대한 다각적인 의견을 듣는 경험이 작가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다.

고백건대, 이런 내용이 처음부터 완벽하게 전달되고 구현되진 않았다. 동료 작가, 비평가, 미술관 학예사가 수평적인 입장에서 한 작가의 작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생산적인 논의를 해보고자 했던 우리의 취지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국내에서 ‘리뷰’는 작업에 대해 질문하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맥락보다는, 작업을 발표하고 질문받고 평가받는 시간으로 이해하는 편이 다수여서, 예상했던 것보다 작가 프레젠테이션 분위기가 경직됐던 것이다. 기대와는 달리, 마치 학교에서 선생님께 피드백을 받는 것처럼 경청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미리 행사 취지를 충분히 외부 리뷰어에게 전하지 못했고, 작가 관점에서 당연히 그럴 수 있음을 예견하지 못한 우리의 부족함 때문이었다. 당시 운영 측이 행사 시간, 장소의 온도, 진행 형식 등 부수적인 부분들에 조금 더 세심해져야 함을 깨달았다.

선정 작가 6인 중 3인은 해외 포트폴리오 리뷰 참가를 위한 제반 비용을 지원받고, 리뷰 이후 작업을 보완하여 출판물을 만든다. 이와 함께 또 다른 작가 1인은 개인전을, 2인은 단체전을 통해 전시와 연계된 도록 출간을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선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프로그램 문이 닫히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참여했던 작가가 포트폴리오를 보완해서 다시 지원하기도 하니, 적극적으로 참여해달라. (웃음)


‘해외 포트폴리오 리뷰 참가 지원’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부탁한다. 이 부문의 강점 혹은 자랑거리는 무엇일까?

‘젊은 사진가 포트폴리오’ 일환인 한미사진미술관의 ‘뷰 리뷰, View ReView’ 프로그램은 2019년부터 ‘휴스턴 포토페스트(FotoFest)’와 MOU를 맺고 진행 중이다. 휴스턴 포토페스트 기간 중 이뤄지는 포트폴리오 리뷰는 오랜 역사를 가진 공인된 프로그램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포트폴리오 리뷰가 작가와 큐레이터, 에디터 등 사진 관계자들 간의 만남이 성사되는 자리임을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휴스턴 포토페스트 리뷰 행사의 공식 명칭은 ‘만남의 장소, Meeting Place’다!)

‘뷰 리뷰’는 두 가지 측면에서 강점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국내 작가들이 해외 활동을 모색할 때 미술관이 직·간접적으로 그 과정에 관여하여 안정적인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뷰 리뷰’ 외에도 전시, 해외 협업 사업을 통해 지속적인 해외 프로모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해외 무대로 활동 반경을 확장하는 일을 주저하던 국내 작가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실질적인 견인차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뷰 리뷰’ 프로그램은 국내 작가들을 위한 공고한 해외 사진 플랫폼이 되고자 하는 한미사진미술관의 기본적인 방향성과 맞닿아있다.


그동안 ‘젊은 사진가 포트폴리오’ 지원을 받은 작가들의 구체적인 성과가 있다면?

작년 ‘뷰 리뷰’에 참여한 김박현정 작가가 <Operator, Painter, Editor> 작업으로 오는 9월 휴스턴 포토페스트 그룹 전시 ‘Ten by Ten’에 참여하게 되었다. ‘Ten by Ten’은 지난해 포트폴리오 리뷰 당시 10명의 리뷰어가 선정한 10명의 작가를 선보이는 전시다. 리뷰어 Nela Eggenberger(Eikon Magazine 수석 에디터)가 김박현정 작가를 전시에 추천했다. 또한, 지난해 단체전으로 함께한 정승원 작가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컸는데, 직접적인 계기라 할 수는 없겠지만, 전시 이후 정승원 작가는 다양한 프로젝트가 성사되었다. 기실, 이러한 단기적인 성과를 무시할 수는 없으나, 이보다 더 가치 있는 건 작가들이 모든 과정을 미술관과 함께 겪으며 공명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작가가 하나의 작업을 진행하며 미술관 스태프들과 외부 리뷰어, 해외 전문가들의 다양한 피드백을 듣고 소통하는 것, 이를 전시, 출판, 교육 콘텐츠로 풀어내는 과정을 경험했다는 것이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한국-러시아 수교 30주년 기념 사진전


해외 교류전 질문으로 넘어가 보자. ‘수교 OO 주년 기념 전시’라는 타이틀이 흥미롭다. 이러한 기념 전시가 한미사진미술관에서만 개최되는 비결(≒원동력)이 있을까?

개관 이래 20년 동안 차근차근 쌓아온 신뢰와 시간의 힘이 아닐까. 한미사진미술관의 확고한 방향성과 책임의식도 비결인 것 같다. 국내외 공고한 플랫폼이 되기 위해 한미사진미술관은 매우 오래전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층위의 노력을 해왔다. 해외 유수의 사진 기관과 아트페어, 사진 페스티벌, 비엔날레 현장을 발로 뛰며 미술관과 국내 작가들을 알리는 동시에, 해외 기관 및 전문가들과 컬렉션, 전시 협업 등의 실질적인 교류를 맺어왔다. 20년이 넘는 활동이 기관의 신뢰로 쌓여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흔히 사진 교과서 속 주류 국가라 할 수 있는 미국, 독일, 프랑스가 아닌, 리투아니아, 북유럽, 이탈리아 같은 나라와 협업하는 이유가 있다면?

특정 국가를 염두에 두고 전시 프로그래밍을 했던 건 아니다. 해외 작가의 경우 스웨덴, 체코 같은 동유럽과 덴마크, 핀란드 등의 북유럽, 그리고 이탈리아 작가들을 소개해왔다.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미 잘 알려진 작가보다는 숨어있는 보석 같은 작가들을 좀 더 눈여겨보고 찾았던 것 같다. 그런 사진작가들은 한미사진미술관이 아니면 국내에 조명될 기회를 얻기 어려울 테니까. 주류 국가 작가의 경우 현대미술 맥락 안에서 다른 국내 기관의 대규모 전시를 통해 소개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가. 그렇다고 우리가 미술사, 사진사에 중요한 궤적을 남긴 주요 작가들을 등한시한다는 말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한미사진미술관의 해외 교류전 활동이 추후 우리나라 사진가를 해외에 소개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것으로 보인다. ‘해외 교류전’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질문 그대로다. 해외 기관들, 미술/사진 관계자들과 신뢰를 쌓고, 미술관이 공고한 플랫폼 역할을 하기 위한 과정이다. 원팀으로 전시를 진행하다 보면, 상대 기관의 방향성, 성격과 더불어 실무자들 간의 인간적인 신뢰가 쌓인다. 기관과 개인, 두 층위의 소통이 합을 이룰 때 매우 큰 시너지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해외 관계자들과 지속적이고 밀접한 교류를 하면서 한국 작가들의 역량을 보여줄 적절한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동시대 사진의 움직임에 한국 작가들을 접속시켜 한국사진 풍토에 동기부여를 하고, 상호 관계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여기에는 미술관 개관 이전부터 노력한 송영숙 관장/설립자의 공로가 있다. 꽤 시간이 지난 2015년부터 눈에 보이는 성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속적인 컬렉션으로 이미 해외에서는 한미사진미술관의 컬렉션 방향과 성격을 파악하는 기관이 여럿이며, 그에 맞춰 기획 전시를 제안하거나 국내 작가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제안하곤 한다. 분명 이는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는 부분들이다.


한국 사진문화 풍토에서 한미사진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다소 추상적이지만, 한국사진이 만들어온 시간의 궤적을 중요시하고 연구, 보존, 다양한 사업을 통해 한국사진의 가치를 공명해 나가는 일.


마지막으로, 클래식/스트레이트한 사진에 계속해서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인지, 사진의 확장 가능성을 살펴보는데도 점점 무게 추를 옮겨볼 것인지도 궁금하다.

무게중심은 그대로 두되, 적극적인 확장을 도모할 계획이다. 한국사진의 시작과 그 자생적인 움직임에 관심을 두고, 현대미술과의 접점을 찾아가는 일은 사진전문미술관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한미사진미술관이기에, 사진전문미술관이기에 한국사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지속해서 찾고, 실질적인 프로그램으로 구현해나가고자 한다. [2022.02]



김선영 2010년부터 한미사진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며, 전시와 국제 교류 업무를 담당해왔다. ‘젊은 사진가 포트폴리오’(2015~ )를 비롯, 동시대 중견·신진 작가들과의 전시와 해외 사진전문미술관 및 재단과의 협업 프로젝트를 책임 진행해왔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ROSPHOTO에서 전시하고(2019), 2023년 리투아니아 국립미술관에서 전시 예정인 <The Centennial of Korean Art Photography 1920-2020>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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