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논 마스터즈’의 영상 <The Perfection>이 공개됐다. 캐논의 ‘기술’과 마스터즈의 ‘예술’이 만나 ‘완벽 그 이상’을 만든다는 명제 아래 제작된 <The Perfection>이 랜선을 유영하기 시작하면서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가 있었으니, 바로 강영호다. 강영호는 광고, 다큐멘터리 사진, 순수 사진, 영화 포스터 등 여러 방면에서 작업해온 작가다. 그런 그에게 아련함과 그로테스크함을 오가는 작업 세계에 관해 물어보았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사진과 관련된 날카로운 이야기도 나눠보았다.
정말이지 강영호다운 ‘캐논 마스터즈’ 영상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몸짓을 넋 놓고 봤다.
캐논의 표현을 빌리자면, 만신 이해경과 함께 공연했던, 황해도 대동굿의 예술적이고 역동적인 찰나의 순간들을 실시간으로 무대 위 화면에 담아낸 <접신과 흡혼>에서 영향을 받아 제작된 영상이다. 찍자마자 전시하는, 예술의 경지(나)와 기술의 경지(캐논)가 만나는 콘셉트다. 영상 제작을 위해 7kg이나 감량했다. <The Perfection>에 내 작업이 포함되니까 뿌듯하더라. 자기 작품으로 광고 영상을 찍는다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다.
현재 ‘캐논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 EOS R5’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작가와의 케미스트리가 궁금하다.
내 사진을 대가의 작업처럼 만들어준다. 먼저, AF 정확도와 속도가 훌륭하다. 다음으로 계조가 정말 풍부하다. 감도를 12,800까지 올렸음에도 전혀 깨지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피터 린드버그의 작업이 연상될 정도다. (웃음) 6월 출판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집 속 사진을 ‘EOS R5’로 촬영했다. 모두 흑백으로 촬영했는데, 퀄리티가 상당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결과물이 보장되니까 든든하더라. 현장에서 만난 사진기자들이 부러워할 정도였다.
캐논과는 끈끈한 유대감이 있다. 작년 7월 <접신과 흡혼> 공연 당시, 캐논의 기술력이 나의 상상력을 실현해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 사용한 ‘EOS-1D X Mark III’는 만신 이해경의 몸짓과 표정을 포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더욱이 캐논이 이미지 전송 시스템을 잘 구축해 준 덕분에 무대 위에서 촬영한 사진을 화면에 안정적으로 띄울 수 있었다. 캐논과 함께한 <접신과 흡혼>이 내 사진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생각한다.
곧 만신 이해경과 <접신과 흡혼> 무대를 다시 한번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연을 궁금해할 독자들에게 전하는 관전 포인트가 있다면.
없다. 문화적으로 새로운 충격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이런 공연은 어디서도 볼 수 없을 테니까. 일단 와서 보고, 마음 가는 대로 느끼길 바란다. 이해경 선생은 굿을 하고, 나는 사진을 찍을 뿐이다. 굿과 사진이 한 공간에 있다는 게 중요하다. 메시지는 필요 없다. 올해는 관객과의 호흡이 있었으면 한다. 작년에는 비대면으로 공연을 하니까 너무 허무했다.
이제 작업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시월애>, <인터뷰>, <파이란> 등의 영화 포스터, <나쁜 여자 착한 여자> 드라마 포스터 사진에선 ‘아련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이를 ‘강영호만이 표현할 수 있는 공기의 무게’라고 생각한다. 인물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강영호의 색깔은 무엇인가.
인물을 바라보는 나만의 관점, 철학은 없다. 촬영 방식에 특별한 의도도 없다. 내 사진 속 조명을 보라. 배를 향할 때도, 발을 향할 때도 있다. (웃음) 계획적, 정밀함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다만, 남들과 다르고 싶은 욕망이 작업에 반영된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사진 찍기 전, 인물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다.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싶어서다. 더욱이 본능적으로 유행 좇는 걸 싫어한다. 작가의 색깔이 반영되지 않은 사진은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패션 사진을 예로 들면, 다들 유행을 따라가는 데 급급하다. 소위 말하는 ‘패션 피플’도 마찬가지고. 개인적으로 패션 작업 스타일을 선호하진 않는다. 패션모델과 작업하다 보면, 모델이 셔터 타이밍에 맞춰서 포즈를 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보기엔 좋은 장면이 아닌데, ‘이 순간엔 이렇게 찍어야 한다.’라고 강요받는 느낌이다. 사진가의 생각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델이 포즈를 취하는 타이밍과 엇박자로 셔터를 누르곤 했다. 그런데 외국 패션 사진가는 다르다. 그들은 유행을 찍기보다는, 작가만의 느낌을 추구한다.
최고의 피사체는 누구인가.
우리 딸. 언제든지 모델이 되어주니까. 딸을 제외하면, 김혜수와 전지현이다. 우리는 모델과 사진가의 관계가 아닌, 함께 퍼포먼스 하는 관계다. 김혜수와 전지현은 음악을 틀어 놓으면, 선율에 맞춰 연기를 한다. 이는 사진가에게 자신만의 감각으로 사진 찍을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매력적인지 설명해달라.
작업 정신, 그리고 열정. 연예인이 사진가와 개인 작업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광고/패션 사진을 찍고 나서, 자투리 시간에 하는 편이다. 김혜수와 전지현은 상업적인 상황이 아님에도 열정적으로 작업에 임해준다. 피사체로서 멋있는 건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사진작가가 나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구조 자체가 편협하다. 대부분 비슷한 주제와 정해진 문법만 따른다. 사진에 어려운 텍스트를 덧붙이는 게 대표 공식 아니던가. 파인아트는 파인아트끼리,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끼리, 패션은 패션끼리 각자 영역에서 패턴화되는 것도 또 다른 원인 중 하나다. 옷 입은 것만 봐도 무슨 사진 찍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전혀 감각적이지 않고, 전혀 독창적이지 않다. 보는 이가 감동할 수 있겠나. 그러니 대중 파워도 부족하고. 게다가 감각에 의존한 작업은 평단에서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결과적으로 해외 무대에서 ‘독창성’이라는 이름 아래 작업을 선보이는 일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다만, 거장이 되는 건 다른 듯하다. 실력뿐만 아니라, 미술관과 비평가의 지원과 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분히 여러 요소가 뒷받침돼야 한다.
예전 <월간사진>과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솔직한 게 능사가 아닌 시대에 “사실 요즘 일이 없다.”라는 말을 했다니.
광고, 영화 포스터 작업 시장에 많은 공헌을 했다고 생각한다. 2000년대 초중반, 한 번 촬영에 많은 페이를 받았다. 대신, 모든 기획을 내가 했다. 광고주한테 직접 프레젠테이션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경제가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시장 가격이라는 게 낮아지다 보니, 당해낼 재간이 없더라. 하지만 페이를 깎을 생각은 없었다. (올림픽대로에 있는 <Flower project>를 예로 들며) 지금 페이는 예전보다 더 높다. 다만, 기본 페이가 높으니까 작업 의뢰가 자주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와 작업한다는 것은 물건이 아닌, 내 생각을 사는 것이다. 강영호에게 1억 원을 지급했다는 건 자랑거리라고 생각한다. 제일 싫어하는 말이 ‘가성비’다. ‘가성비’는 문화를 망치는 일이다.
상업사진가 수명이 짧으니까 적은 비용으로 많은 일을 하려는 거 아닐까.
사진 찍는 기술만 앞세우는 ‘오퍼레이터’로 일하는 게 문제다. 협상의 주체가 아닌, 피고용인이 되는 것이다. 에디터가 픽업 안 한다는 것은 곧 일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찍는 것 이상으로 일을 하니까, 에디터 윗선과 바로 이야기를 나눈다. 구조적인 문제도 크다. 상업 분야 특성상 오래 일한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들 새로운 얼굴만 찾는다. 이로 인해, 긴 호흡으로 이어나가는 작업이 아닌, 다들 ‘한 철 장사’에 혈안이 되는 것이다. 이는 외국과 다른 부분이다. 본인만의 스케일을 키울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단순히 셔터를 누르는 행위만으로 1,000만 원 이상 받는 건 반칙이라 생각한다.
디지털화되면서 촬영의 시작과 끝을 작가가 결정하지 못하는 세상이 됐다고 한다. 촬영하다가 에디터로부터 “실장님, 이만 됐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절망적이라고 하더라.
오퍼레이터급으로 계약했으면, 오퍼레이터만큼만 하면 된다.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다. 자존심을 굽히는 게 상업이다. 중요한 건 자존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가’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나는 작업하면서 커피도 내리고, 기념사진도 직접 찍어준다.
진입 장벽이 너무 높은 것도 한몫할 것 같은데.
진입 장벽이 높은 게 아니라, 재능 있는 사람이 적다고 생각한다. 패션 쪽 단점은 인문학적 텍스트가 없다는 것. 반대로, 파인아트에는 머리만 있다. 중간에서 나오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아쉽다. 요즘 인기 있다고 하는 젊은 작가들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독특하다고 해서 보면 가볍고, 감각이 좋다고 해서 보면 중국풍을 너무 따라가더라. 나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보이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감각적이면, 또 평가절하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다. 춤추면서 사진 찍으니까 그냥 끼 부리는 줄로만 안다. 끼가 많고, 독특한 감각을 가진 작가가 많이 나와야 한다. 그걸 포용하는 자세도 당연히 필요하고.
눈여겨보는 우리나라 작가가 있나. 없어도 있어야 한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갑철이다. 거친 톤에서 느껴지는 진정성이 인상적이다. 해외 작가로는 앤더스 페터슨(Anders Petersen)을 좋아한다. <Cafe Lehmitz> 작업을 보면, 작가의 삶이 느껴진다. 피트 수자(Pete Souza)도 훌륭하다. 오바마를 세련되게 찍으니까 오바마가 멋있게 다가오더라. 그의 사진을 통해 정치인이 싫어도 이미지 퀄리티가 좋으면, 인물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좋은 작가란 무엇일까.
예술가의 삶은 정치가의 삶과 비슷한 것 같다. 정치가 직업이 될 때 한 인물의 행동이 달라지는 것을 자주 목격했을 것이다. 직업 정신과 삶은 동반자 같은 사이가 돼야 한다.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작업에 삶이 반영돼야 한다. 그런 예술가가 진짜라고 본다. 앞에선 민중, 정직, 청렴, 평등 등을 내세우고, 뒤에선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게 정말 옳은 것일까.
마지막으로, 날카로운 한마디 부탁한다.
우리나라 사진의 전망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면, 자기 권력에 안주하려는 느낌이 강하다. ‘청년 정신’이 없다. 스스로 대가라고 말하는 순간, 촌스러워진다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한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문화적 파워가 있는 사진이 등장해야 한다는 것. 작금의 사진 문화를 보면, 패션 사진은 패션계 안에서만, 파인아트는 비평가 안에서만, SNS에서 인기 있는 작가는 성수동 안에서만 인정받으려 한다. 국민이 알 수 있는 사진, 다시 말해 대중적인 힘을 가진 사진이 있어야 문화가 발전한다. [2021. 06]
2015년부터 시작된 ‘캐논 마스터즈’는 국내 사진·영상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를 선정해 그들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캐논의 다양한 제품과 기술, 서비스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캐논 마스터즈’는 캐논 유저이자 오피니언 리더로서 캐논 제품에 관한 의견을 제공하고, 제품을 활용해 다양한 사진·영상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