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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Jul 17. 2022

나는 내가 지난날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콰야&최백호

낭만을 노래하는 최백호, 낭만을 그리는 콰야가 말하는 ‘잊혀지는 것’에 대한 소회.


콰야 & 최백호 ⓒ 김제원


롯데갤러리 동탄점에서 진행 중인 콰야×최백호의 <희미해졌거나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하여>(~7월 10일)는 세대와 장르를 뛰어넘는 전시다. 둘 사이에는 40년이라는 시간이 존재할뿐더러, 전업 작가인 콰야와 달리 최백호의 본업은 음악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콰야와 최백호의 작업은 ‘처음에는 진하고 짙었지만, 어느샌가 시간과 함께 흐려져 기억 속을 맴도는 선율’이 된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을 캔버스 위에 표현한다. 지나간 일은 빠르게 훌훌 털어내는 게 미덕이라는 시대에 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달보드레한 몸짓인가. 흥미롭게도 소재와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희미해지는 효과를 주기 위해 눈을 반쯤 감고 전시장을 돌아보니 두 작업이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콰야와 최백호는 대체 어떤 공명을 일으켰기에 세대와 장르가 이어지는 듯한 기운을 자아내는 것일까?



2인전을 기획한다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최백호 미안한 말이지만, 처음엔 콰야라는 작가를 잘 몰랐어요. 전시 제안을 받고 그때부터 열심히 정보를 수집했죠. 그런데 작업이 가슴 한구석을 찌르더군요. 그러면서 내게는 없는, 이젠 희미해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어요.

콰야 최백호 선생님의 음악을 워낙 자주 들어서 친숙했습니다.(웃음) 그동안 오붓·잔나비·정우물 등과 작업했는데, 뮤지션과의 협업은 항상 저를 설레게 해요. 그런데 하나의 캔버스 위에 선생님과 함께 그림을 그린다고 하니 얼마나 기대됐겠어요. 소원을 이룬 ‘성덕(성공한 덕후)’의 마음이 이런 건가 싶었죠.


전시 제목이 낭만적이에요. 최백호 작가님에게 그런 것들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최백호 나이가 들면 뭔가 사라지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져요. 특히 스친 인연은 더욱 그렇죠. 얼마 전 연습을 하다 어떤 분을 만났는데, 소싯적 제 마음에 생채기를 낸 사람과 똑 닮았더라고요. 깜짝 놀라 한참을 쳐다봤어요. 정신을 차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사람이 첫 번째로 상처를 준 사람인지, 세 번째였는지 헷갈리더라고요.


콰야 작가님의 표현을 빌리면, ‘나는 언제나 과거에 사는 사람이다’라는 끼적임이 와닿았어요. 저도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연애할 때는 대부분 “과거는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하지만.(웃음)

콰야 제게도 점점 잊히는 것이 있더라고요. 평소 작업하는 내용도 곧 사라질 일상을 기억하는 것이고요. 특정하긴 어렵지만, 저는 애정을 갖고 바라본 것들이 그런 대상입니다.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이제 더는 잡을 수 없는? 그렇다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번엔 놓치지 않겠다는 건 아니에요. 그 순간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이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큽니다.

최백호 작가에게 과거는 매우 중요합니다. 비록 상처투성이일지라도. 그림 그릴 때, 곡을 만들 때 과거는 매우 소중한 자료가 되거든요. 무심히 흘러갔다고 하는데, 알게 모르게 내 안에 쌓여 있어서 그런지 나이가 들수록 내 이야기를 더 하게 됩니다.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만든 것들을 확실히 알게 돼서 그런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이는 연애 안에선 적용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웃음)


두 작가의 협업(오른쪽)과 최백호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사운드 룸.


최백호 작가님은 50세가 넘어서야 붓을 들었다고 했는데, 젊은 시절 화가의 꿈을 펼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최백호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라이파이>라는 만화를 따라 그리곤 했어요. 그런데 시골에 살다 보니 그림 도구가 없었습니다. 연필과 공책뿐이었어요. 분필로 땅에 그리기도 했고. 스무 살 때 미대에 진학하려 재수하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컸어요. 그래서 그림을 포기하고 노래를 택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낭만에 대하여’가 인기를 끌면서 경제적 상황이 좋아졌어요. 오십이 넘은 시점에.


음악 생활을 할 때는 가슴 가득한 열정을, 그림을 그릴 땐 모든 의식이 사라지는 휴식을 느낀다고 하셨는데요.

최백호 어머님이 제 그림을 좋아하셔서 언젠가는 화가가 되겠노라 다짐했지만, 음악에 빠져들었어요. 체계적으로 공부하지도 않았고, 끝까지 하겠다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두 장르를 비교하자면, 그림은 붓을 드는 순간 온전히 혼자가 되는 반면 음악은 복잡 미묘해요. 공연할 때마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의 순간이 있거든요. 모든 것이 0(zero)가 되는 순간.


결국, 음악이 가슴을 타오르게 하다 식히는 역할을 동시에 하는 거네요. 그림에 나무가 빠지지 않는데, 나무가 쉼의 상징인가요? 이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최백호 어릴 때 학교 사택에 살았는데, 친구가 없어 늘 나무 위에 올라갔어요.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나무 위에서 낮잠을 자곤 했습니다. 나무는 변함이 없잖아요.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켜요. 복잡한 세상에서 나무를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나무를 그릴 땐 어머니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처음엔 구체적이던 나무가 어느 순간 추상적으로 변했어요.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이것저것 시도하다 여기까지 온 거죠. 트로트도 하고, 발라드도 하는 제 음악처럼요.


콰야의 작품 앞에 선 최백호 ⓒ 김제원


콰야 작가님의 다른 작업과 비교할 때 신작 주인공이 유독 어린아이 같더라고요.

콰야 일상을 이야기하는 기존 작업과 달라진 건 없어요. 최근 어린아이를 그린 작업을 했는데, 그 연장선인 셈이죠. 아무래도 2022년을 사는 제 시점에서 ‘희미해졌거나 사라져버린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잊힌 것이라기보다는 오늘을 살면서 맞닥뜨리는 아픔처럼 다가왔습니다.

콰야 ‘과거가 현재를 살게 한다’는 말과 비슷해요. 최백호 선생님이 말씀하신 상처와도 연관이 있고요. 그러나 제겐 구체적 상황보다는 전체적 느낌과 상상이 더 중요합니다. 밤을 지나는 시간에 조용히 나를 돌아보는 그때 그 시간의 분위기처럼요. 그래서 보는 이마다 해석이 각양각색이에요. 아이러니지만, 저는 작업을 통해 긍정의 힘을 얻어요. 즐겁고 유쾌하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 자체가 소중하다는 것을 그림에 녹여내고 있습니다.


최백호 작가님의 그림은 단순한데 붓 터치가 거칠고, 콰야 작가님의 그림은 따스한데 붓 터치가 거칠어요.

최백호 화가가 본업이 아니니까 막히면 그만둬요. 곡을 만들다가도 잘 풀리지 않으면 매달리지 않는 편이죠. 아예 놔버리기도 하고요. 거칠면 거친 대로, 끊어지면 끊어지는 대로 그대로 둡니다. 평소 삶이 그림에 반영됐다고 할까요.

콰야 솔직하게 표현 방식을 이야기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캔버스 속 붓 터치와 색감, 마티에르가 어떤지는 제게 중요하지 않거든요. 더구나 특별한 소재를 그리는 것도 아니니, 엄청난 일을 한다는 생각도 안 하고요. 그래서 붓을 내려놓고 나서 작업이 크게 마음에 드는 일도, 들지 않는 일도 없어요. 일기 쓰듯 소소한 일상과 그날의 감정을 표현하는 작업인 만큼 즉흥적이고 직관적이라는 말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협업인 ‘희미해졌거나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하여’(2022)를 이야기해볼게요. 한 점은 콰야 작가가 먼저 그린 뒤 최백호 작가님이 이어받았고, 다른 한 점은 이와 반대로 진행했죠. 서로 교감이 잘됐다고 생각하시나요?

최백호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기엔 시간이 부족했어요.(웃음) 처음 협업을 제안받았을 때 안 하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갤러리에서 끝까지 시키더군요. 콰야 작가가 그린 그림을 받았을 땐 정말 좋았습니다. 솔직히 제가 칠해서 망쳐놨다고 생각해요. 반면, 제가 먼저 시작한 작업은 재미있었습니다. 구도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선을 긋는데,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래서 요즘은 시간이 날 때마다 연필로 연습하고 있어요.

콰야 작업과 별개로 저는 중간중간 선생님을 뵙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소중했는데, 선생님은 안 그러셨나 봐요?(웃음) 선생님의 그림을 이어받았을 때 제가 구상하던 작업과 너무 딱 맞아서 놀랐어요. 추상적 시공간에 인물을 배치하는 작업을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반대로 저는 먼저 그리는 일이 더 힘들었습니다. 엉뚱하게 시작해버리면 내용이 산으로 갈 수 있다는 걱정에 오래 휩싸여 있었어요. ‘희미해졌거나 사라져버린 것들’이란 주제에 맞는 내용이 무엇인지 고민을 반복한 기억이 납니다.


최백호의 작품 앞에 선 콰야 ⓒ 김제원


콰야 작가님은 <불혹> 앨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는데.

콰야 <불혹>뿐 아니라 다른 음반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노랫말이 제가 사는 시대와 딱 맞는 건 아니더라고요. 억지로 공감대를 찾으려 하진 않았어요. 그러다 선생님이 의도하진 않으셨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목소리가 바뀌고, 노래에 스며든 감정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게 됐어요. 이러한 감정의 접점을 제 방식으로 풀어내려 한 것이 적절한 표현인 듯합니다.


최백호 작가님은 <불혹>을 발매한 뒤 유혹에서 벗어나셨나요?

최백호 음악은 고통을 수반해요. 경제적으로 성과가 안 좋으면 제작비를 충당하기 어렵거든요. 그래도 ‘음악적’으로는 유혹을 안 받으니까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조만간 랩에도 도전해보려 해요. 미술은 음악보다 자유롭습니다. 많이 팔리는 작가도 아니고, 아직은 아마추어 수준이니까요.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자체를 인정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어떤 반응에 흔들리면 그림이 망가질 수 있다는 걸 유념하려 해요.


최백호의 음악과 콰야의 그림이 젊은 세대에게 공명을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인지, 서로 분석해보는 건 어떨까요.

콰야 특정 음악이나 인물에 열광하는 것이 아닌, 편안한 감정 때문이 아닐까요. 힘들 때 꺼내 들을 수 있는,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

최백호 한마디 덧붙이면, 운이 좋았어요. 꾸준히 이것저것 하다 보니 아이유, 스웨덴세탁소 같은 젊은 음악가와 노래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콰야 작가는 트렌드를 계산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가서 공감을 얻는 것 아닐까요. 일상을 돌아본다는 것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콰야 작가가 프랑스 남부 앙티브에 가봤으면 해요. 도시 풍경이 그의 그림과 잘 어울리거든요.


이번 전시를 함축한 단어를 꼽으라면 위로, 휴식이 될 것 같습니다. 긴 어둠의 시간을 지나온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백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세뇌하며 살길 바라요. 그러다 보면 마음가짐이 긍정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자력이라는 게 있어요. 늘 건강한 생각을 한다면, 좋은 기운의 사람들이 착 달라붙을 거예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콰야 잠시 멈춰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지만, 어느 시점에서 돌아봤을 땐 사소한 기억이 내일을 걷게 하는 힘이 될 테니까요. 그림과 노래가 있는 전시장에 와서 그렇게 한다면 금상첨화고요.

[20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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