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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Aug 15. 2022

나의 드라마 일지

올해 출판계의 화두는 드라마 대본집이다. 

활자에 새긴 드라마의 여운 덕분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서점으로 향하고 있다.


상수  here’s looking at you, kid.

자막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은정  ····?

상수  카사블랑카에 나온 대사야··우리나라에서 참 멋지게 번역됐지. 

        당신 눈에 뭐가 보이든·· 난··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맞춰줘야 되나 하다가 짠이나 하자 잔을 내미는 은정.

        그 잔을 지나쳐 은정의 눈에 잔을 가져다 대는 상수.

                                                                                         [멜로가 체질, 16부 51. 껍데기집 / 밤.]


드라마의 인기는 한시적이라는 통념이 깨진 걸까? 드라마가 종영됐음에도 대본집으로 인해 그 여운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오늘날 정설이다. 이는 수치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얼마 전 교보문고와 예스24가 발표한 상반기 출판 시장 분석에 따르면, 6월 기준 2022년 현재 출간한 대본집은 총 21종(작년 상반기 17종, 2020년 상반기 6종)이고, 판매량은 2021년 대비 교보문고는 159%, 예스24는 108% 증가했다. 대본집 열풍의 서막을 알린 건 2020년에 발행한 <사이코지만 괜찮아>. 드라마에 출연한 한류 스타와 예쁜 굿즈가 인기몰이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당시 분석이다. 이를 기점으로 <서른, 아홉>, <술꾼도시여자들>, <시맨틱 에러>,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옷소매 붉은 끝동> 등 대본집을 잇따라 제작하며 흥행을 이어가는 중이다.


동네 사람들이 지안을 데려다주는 장면, 드라마 <나의 아저씨> 12화 스틸 컷. ⓒ 세계사


올 상반기 대본집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SBS 드라마 <그해 우리는> 1·2권이 1·2위를, 2018년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3위를 기록했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대본집은 예술 분야로 분류되는데, 이례적으로 예술 서적이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는 것. 심지어 대본집 덕분에 10~20대의 도서 구매량이 늘었다고 한다. 책을 멀리하고 숏폼 콘텐츠를 즐기는 시대, 대본집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건 무슨 연유에서일까. <그해 우리는>과 <멜로가 체질> 대본집을 출판한 김영사 김민경 편집자는 “책을 읽지 않는 것도, 숏폼을 선호하는 것도 맞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과 콘텐츠를 보는 눈이 낮아진 건 아니에요. 오히려 더 까다로워졌어요.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는 확실한 애정을 쏟습니다. 처음엔 책을 사려 하지 않다가도 ‘이 드라마 인기가 많았는데, 한번 읽어볼까?’ 하는 호기심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게다가 대본집은 드라마로 1차 증명된 다음에 나오잖아요. 그만큼 리스크가 적습니다”라고 말한다. 또 <나의 아저씨> 대본집을 담당한 세계사 강현지 에디터는 “1020세대는 마음에 드는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재소비합니다. 드라마를 예로 들면, 본방송 외에도 회차별 요약 영상, 특정 인물 서사 모음 클립, 코멘터리 등 작품 하나에서 파생된 여러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파고들며 즐겨요. 대본집도 그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장면을 묘사했는지, 배우가 인물을 어떻게 분석하고 연기했는지, 애드리브는 어느 정도 들어갔는지 자세히 알 수 있으니까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정의해온 독서와 다른 접근 방식이죠”라고 말한다. 여기엔 굿즈 지분도 상당하다. <그해 우리는> 한정판 굿즈인 주인공 명찰이 중고시장에서 6만 원에 거래될 정도라니, 굿즈가 대본집을 또 다른 차원의 굿즈로 인식하게 만든 셈.


맥주 거품 논란’을 일으킨 <나의 아저씨> 장면을오하이오 작가가 일러스트로 재현했다. ⓒ 세계사


이와 함께 대본집을 ‘추앙’하게 하는 또 다른 요소는 생동감과 편안함, 업계 비밀(?)이 아닐는지. 대본집은 대사와 지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다소 건조한 활자와 각색되어 재탄생한 영상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시놉시스가 달라지는 지점이다. <멜로가 체질>의 경우 드라마에서 상수(손석구)의 신스틸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는데, 시놉시스상에는 상수를 소개하는 텍스트가 단 두 줄(!)에 그친다. 생활 밀착형 언어도 읽는 맛을 돋우는 요소다. 여느 책에선 접할 수 없는 거친 말투가 독자와 독서의 거리를 좁히는 느낌이다. 이와 관련해 김민경 편집자는 “작가마다 대본을 작성하는 스타일이 달라요. 웬만해서는 수정을 하지 않습니다. 작가의 개성과 의도를 100% 살리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오타를 그냥 두기도 해요. 드라마에서 ‘삐’ 처리된 욕설을 그대로 싣기도 하고요. 이를 모르는 분들은 편집이 엉망이라고 하시겠지만요(웃음)”라고 설명한다. 강현지 에디터 역시 “말맛과 카메라 쇼트의 호흡을 표현하는 영상 언어 특성상 표준어 규범대로 수정하기보다는 작가의 표현을 그대로 살리는 데 집중했어요. 지문과 대사를 구분하면서도 읽는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디자인적 요소도 최소화했고요. 대본집 핵심 독자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들의 취향을 저격하기 위해 영화 GV(Guest Visit, 관객과의 대화) 분위기가 떠오르는 인터뷰, 일인칭시점 에세이 등을 추가로 기획했습니다”라고 밝혔다.


<나의 아저씨> 16화 엔딩 컷. ⓒ 세계사


이처럼 대본집은 드라마에 진심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아니 여러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본방을 사수하기 위해 집으로 달려갈 때의 설렘, 미장센이 주는 감동 같은 그해 우리의 가슴 떨림을 곱씹을 수 있고, 나아가 이를 영원히 소장할 수 있기 때문. 여기에 강현지 에디터는 인생 드라마를 깊은 호흡으로 느끼고,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삶의 순간을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대본집을 추천한다고 덧붙인다. 이러한 관심과 가파른 성장에 힘입어 최근에는 대본집 전문 출판사도 등장했다고. 독자에게는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는 길이 늘어나는 거지만, 일각에서는 시의성과 대중성에 끌려가다 보면 책의 완성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출판사에서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김민경 편집자는 말한다. “저희도 우려하는 부분이에요. 우후죽순 대본집이 쏟아지면 독자들의 피로도는 당연히 높아질 거예요. 오랫동안 책이 주목받기도 어려울 테고요. 그래서 흥행보다는 콘텐츠의 가치에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대본집이 계속 사랑받을 수 있는 비결이요? 훌륭한 작가들이 집필하는 한, 배우들의 멋진 연기가 뒷받침되는 한,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가 존재하는 한 인기는 그리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거예요.” [2022.08]



최웅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다시 만났으면. 잘 지냈냐고. 어떻게 지냈냐고. 힘들진 않았냐고··· 

         나는···나는 좀 많이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잖아. 그 정도 이야긴 해도 되잖아 우리 ···


         연수,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두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


연수  (N) 우리가 헤어진 건,

최웅  말해 봐. 어떻게 지냈어 너. (…)

연수  (N) 너 없이 살 수 있을 거라는 내 오만.

                                                                  [그해 우리는, EP06 오만과 편견 S#43. 골목길,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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