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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내가 되는 일

효연 산문 10

by 박효연

최악의 내가 되는 일

대가를 바라지 않고 타인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일이

더러 있다. 나조차 확신이 들지 않으면서 확신하고 내가 하지 않은 일에 책임을 물고 혼나기도 하지만 아무 말하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지 않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그 무게를 받아들이기도 한다. 또, 나를 믿으라 이야기하기보다 내가 얼마나 최악의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너는 괜찮다는 걸 보여준다. 생색내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냥 최악인 사람, 별로인 사람으로 남기도 한다. 내게 정말 소중하고 더 이상 마음이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에게만 최악의 사람이 된다.


나는 이만큼 최악인데 너는 멋지다 나는 너를 존경해 혹은 나의 자아는 이만큼 비대한데 그게 거짓이 아니거든? 그런 내가 너를 믿고 존중하고 사랑하고 배려한다? 나의 이 행위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는 나름 괜찮은 사람이구나라는 얄팍하더라도 그들의 자존감을 채울 수 있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서 나는 자주 자아가 비대한 최악인 사람이 된다.


이런 나를 그 누구도 몰라줘도 좋았는데 오늘은 생색내고 싶어졌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한 사람을 위해 오늘도 나를 깎고 과장된 표현으로 이야기하며 상대를 높이는 순간 상대에게 너는 자아가 네가 가진 거에 비해 비대하네 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내 행동의 당위성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나를 드러낸다. 사실 최악인 사람처럼 굴었던 것보다 이 행위가 나에겐 더 독약과 다를 바 없다. 이리 생각한 연유는 표현함으로 인해 내가 오랜 시간 일궈온 게 무너지는 느낌이 드니까. 명확하게 날 드러낸 적 없으면서 나를 더 깊이 알아보려 하지 않는 게 속상하고 이런 내 수고를 조금이나마 깨달아주길 바라는 못된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니까.


내 옆에 아주 가까운 사람으로 몇 년을 있든 내 가족의 구성원으로 27년을 있든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언젠가부터 난 대게 이런 식으로 행동했으니 그냥 그런 사람으로 그들에게 간주된다. 나는 그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에서 비롯된 마음이 나에게 오는 평판이나 기타 다른 부산물에 비해 아주 작은 행복이나 생각으로 닿을지라도 그들이 그것을 맛볼 수만 있다면 충분했다.


그러나 오늘 나는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주지 못한 그저 비대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말을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아무도 모르더라.


또 하나 웃긴 점은 내가 상대를 그리 높여줬을 때 나를 만만하게 보지 않거나 나를 떠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기이하게도 아직 온 마음 다하지 않는 상대만이 내게 남아있는다. 나에게도 그 온정을 베풀어달라고 나는 보답할 수 있다고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내가 최악이 되어 높여주면 그들도 떠난다.


결국 최악이 된 나만 남겨진다. 그래도 괜찮은 것은 떠나도 나는 여전히 나고, 변할 만큼의 임팩트는 없다는 것. 시리기는 해도 내가 부서지는 일은 없다는 거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내 사람들이 나를 응원해주고 있기에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이거면 됐다고 생각하면서 아무도 들어오지 않겠지만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이 공간에 글로 남긴다. 내가 최악의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어서 이 허황된 마음을 어떻게든 남겨 스스로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서.


아직 나는 넓고 큰 마음을 가지기에는 부족한가 보다.

또 나의 이 행동이 그릇된 것이라 부작용만 남겼다면 그들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싶다. 나는 이제 말이 되려 어려워져서 이런 식으로 꾹꾹 눌러 담은 것들을 저런 식으로 표현하곤 한다. 그게 당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유감이다.


종종 쓸데없는 말만 많이 하게 되는 요즘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미라를 감싼 천 마냥 꽁꽁 싸매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한다. 말의 무게가 무섭고 무거워서 단전에 숨겨 놓고는 그냥 최악으로 행동해 버린다 이게 옳은 건지 그른 건지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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