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연 산문 11
나를 책망하는 일
이미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나는 늘 무언가에 목마른 사람처럼 갈증을 느껴요. 시간을 밥공기 누르듯 꽉 채워 살지 못하면 그날은 열심히 산 날이 아니라며 내가 나를 채찍질하고, 몰아세워요. 그럼 어떻게든 결과물이 만들어지니까 그게 내가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인 것만 같아서 저는 저를 계속 책망하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발전만을 요하는 사회는 더 이상 구성원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고 쓴 저지만 발전만을 요하는 저는 나도 개인도 아닌 개체가 되어버립니다.
개체가 되어버린 저는 무색무취의 어떤 것이 되어가고, 회색빛 도시에 스며들어요. 지금의 심정으로야 회색빛 도시에서 날 받아준다면 기꺼이 내 한 몸 던질 수 있을 것 같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반사회적 기질이 그 소망을 가로막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 역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야 해’라면서 요.
오늘도 쉬지 못하고 하루를 가득 채웠습니다. 조금이라도 쉴 시간이 생기면 부채감이 저를 좇아와 꾸짖습니다. 어서 빨리 너의 하루를 가득 채우라면서요. 나도 내가 쉬어야 굴러갈 수 있다는 것을 아는데 저는 쉬지 않아도 잘만 굴러가는 것 같아요. 오히려 더 정신이 말짱한 기분도 듭니다. 이곳은 나의 공간이면서 나의 공간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모든 걸 남겨둘 순 없지만 이미 많이 무리했다는 사실을 저도 알고 남도 압니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는 것은 완전히 꺼져버릴까 봐 무서워서 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사회에서 도태될까 봐요. 잠시 쉬어가면 엔진이 꺼질 것만 같아 계속해서 나를 채근해 산물을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이 내게는 쉬는 시간 전부예요.
오늘은 할 일이 없어서 괜히 내 실력에 맞지 않은 레퍼런스를 하나 가져와 한 달이 걸리든 일 년이 걸리든 완성시키겠다는 집념으로 삼각형을 하나, 둘씩, 열개씩 그룹으로 만들어 그리드를 만듭니다.
평일날 저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이 왜 그렇게 열심히 사는 거냐고 물으셨어요. 근데 말문이 턱 막혀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쉬면 멈출 것 같아 쉬지 못하겠다고 말씀드렸죠. 근데 이 말을 뱉고도 어딘가 석연찮고 시원찮은 게 진짜 이유는 아니었나 봅니다. 그럼 저는 왜 쉬지 못할까요?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는데 이번에는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어떻게든 왜 그런 것인가에 대해 파고드는 제가 도저히 무엇 때문에 열심히 사는지 잘 모르겠어요. 굳이 쉬어야 할까 싶기도 하고 책망과 채근이라는 단어가 과격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다 다시 몰려오는 부채감에 그리드를 이어 만들기 시작했는데요. 그리드는 삼각형을 모아 틀을 만드는 작업이에요. 3D나 2D 캐릭터 같은 걸 만들기 위해 기반을 다지는 것과 같습니다. 아 설명은 일단 각설하고 그리드를 만들다가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선생님에게 알리는 게 좋을까? 아이소 메트릭을 만들면서 부족하다고 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나는 남들보다 배로 노력하고 있다고 증명해서 나에게 기회를 더 달라고, 더 많은 걸 알려달라고 해볼까?라는 욕심이 났어요.
때마침 듣고 있던 노래는 아이유의 shopper였고, 이 노래도 욕심에 관한 노래인지라 증명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저는 증명해야 한다는 것에 좇기고 있었던 거예요. 불현듯 떠오른 거지만 제 쓸모를 증명해야만 필요한 사람인 것 같아서 증명하기 위해 쉬지 않고 달리는 거였어요.
한 2년여 전부터 새로 생겼던 꿈이 있는데요. 그 꿈은 바로 대체불가능한 인재가 돼서 내가 무언가를 만들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아 이건 걔 작품이네’라고 알 수 있게 도장을 콱 찍어버리는 그런 걸 담는 사람으로 각인되는 거였어요. 오퍼레이터가 아니라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었던 걸까요?
사실은 오퍼레이터라도 기깔나게 잘 만지는 오퍼레이터가 되면 상관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AI가 많이 나오니까요. 그냥 오퍼레이터는 대체되기 쉽겠죠? 그래서 오퍼레이터이자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요. 새로운 꿈이 정의된 것 같아요. 갑자기 없던 체력이 샘솟네요 오늘도 밤늦게까지 작업을 해야겠어요.
27살의 내가 꾸는 꿈은 오퍼레이터이자 크리에이터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오퍼레이터가 아니라 크리에이터가 됩시다 여러분이라는 말을 일부분 인용한 거지만 아무렴 어떤가요? 이 글은 쓰자마자 바로 올리고 싶어요. 퇴고 없이 쓴 글이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독자분들은 제가 사고하는 과정을 함께 했어요. 저는 이렇게 결론을 도출해 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궁금하네요 제 글을 누군가 제대로 잘 읽어줄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읽는다면 궁금해요 당신들도 이렇게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원인을 찾고 결론에 도달하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