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군청에서 지원해주신 금액은 결코 작지 않았지만 우리가 살 집을 고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고치면 된다!”라고 입을 모으던 사람들이 막상 공사가 들어가자 “생각보다 문제가 너무 많다.”며 난감해하는 것이다. 집의 허우대는 멀쩡한데 단열, 창호, 난방, 온수 등 하나부터 열까지 돈을 기다리는 공사들이 가득했다.
생각이 문제다. 잘 모르는 것은 아예 모르는 것인데 잘 모르는 분야를 ‘내 생각에는..’하고 입을 댔다가 책임을 못 지고 마는 것이다. 그동안 오갔던 여러 ‘내 생각’과 항상 틀린 확신의 말에 나는 지쳐갔다.
지원금으로는 공사가 원하는 만큼 따라오지 못하니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속상해했다. 결국 이장님께서 군청 담당자와 한판(?)하셨고 어찌어찌 추가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추가 지원금은 사용할 때는 여러 행정절차가 필요했으므로 결과적으로 공사는 더욱 늦춰졌다.
‘새 학기 시작 전에는 되겠지’
내가 애 닳아한다고 공사가 앞당겨질 리 없으니 마음을 놓고 기다리자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지만 마음의 방향은 항상 시골을 향해 있었다. 처음 시골행을 꿈꿀 때는 비 피할 공간만 있으면 된다고 폐가라도 소개해 달라고 했던 나인데 이제 너무 큰 기대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보았다.
‘멋지게 고쳐지든 실망스럽게 고쳐지든 그 집은 내 소유가 아니니 아무 권리가 없다. 싼값에 빌린 집, 1년 동안 잘 살고 나가면 그만. 공사 결과에 마음 쓰지 말고 그저 얼른 이사할 날만 기다려야지.’
시골로 향하는 마음이 잠시 차분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공사가 많이 늦어져서 3월로 넘어가면 한동안 다른 숙소에 살다가 이사하라는 연락이 왔다. 다른 숙소라는 곳은 수련회 공간으로 쓰기 좋은 곳이지 살림하는 숙소는 아니다. 어린아이 둘과 큰 방을 차지하고 지내며 급식소 같은 식당에서 밥을 해 먹어야 한다니...
그 숙소를 내어주시는 것도 ‘배려’라고 생각 회로가 돌아갔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대체 왜 그럴까? 다른 숙소 말이 나오자마자 왈칵 눈물이 날 정도로 화가 났다. 도시 정서로 말하면 이건 계약 위반이다. 계약서에 명시된 날짜는 2/25 입주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공간에서 내 아이들과 살고 싶다. 수련회장에서 피난민같이 지내고 싶지는 않았다.
시골 사정과 내 심경을 알게 된 남편은 당장에 군청과 면사무소에 전화해 ‘뭐 하자는 거냐’ 한 소리를 하고 이장님과도 통화를 했다. 그래도 뾰족한 수가 없으니 나에게 다시 주소를 부산으로 옮겨서 3월 2일에 아이들이 입학하는데 문제없게 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위험에 빠진 가족을 구하려는 수컷 사자의 으르렁 같아 보였다.
언젠가 귀촌한 친구가 “나는 왜 항상 죄스러운지 모르겠다”라고 한 적이 있었다. 우리의 시골살이를 주선해주는 역할을 하다 보니 덕 보는 것도 없이 가운데 끼여서 여기 눈치, 저기 눈치 보게 되는 친구의 사정이 확 와 닿는 말이었다. 남편의 으르렁에 나는 친구와 같은 ‘괜히 죄스러운’ 마음을 느꼈다.
‘정말 시골로 갈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을 억지로 하려니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내 욕심에 남편도 귀촌한 친구 마음도 상하고 있다는 점이 나를 괴롭게 했다.
가장 큰 괴로움은 도시와 시골의 소통방식이 너무 달랐기에 괜한 사람을 원망하게 되는 데 있었다.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교양 있다 여기는 도시인의 눈으로 목소리가 큰 사람이 주도권을 잡는 시골사람들을 보면 마치 다른 나라 사람을 만난 것만큼 생경했다. 여권 없이 갈 수 있는 외국, 언어 장벽이 없는 외국이 시골이라고 진심 어린 농담도 했다.
가끔 공사 현장을 보러 오면 날림으로 엉망으로 국민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 느껴졌지만 지연, 학연, 혈연이 노골적으로 작용하는 시골에서는 도시인이 잘난척하면 안 된다고 해서 성질대로 쏟아붓지 못하고 입을 닫아야 했다. 그럴 때마다 혈압이 올랐지만 나는 도농 갈등을 조장하고 싶지 않았기에 늘 참았다. 물론 참은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시골분들 입장에서도 도시의 별난 아줌마가 물을 흐린다고 생각하셨겠지. 나는 최대한 입을 닫고 주어진 삶에 순응하겠다고 올해 목표를 잡았기에 더 이상 불평을 말하지 않고 실바람처럼 살짝 왔다가 깃털처럼 조용히 내려앉기로 했다.
불평을 줄이자 좋은 효과는 내 마음에 나타났다.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도시 사고방식이 어쩌면 천민자본주의 찌꺼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주면 그 값을 해야 하고 호구 잡히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요구해야 하는 게 엄청 합리적인 것 같지만 꼭 그것만 옳다는 생각을 버리면 마음이 유유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믿고 맡기고 서로의 얼굴을 봐서 적당히 넘어가는 시골 방식을 보며 다양한 삶의 형태를 배웠으니 이번엔 이걸로 됐다.
정말 이사 하나만 남았다. 공사가 늦어진다 해도 3월 2일이 개학이니 무조건 이사를 간다. 이미 던져진 주사위. 어떤 어려움이 뒤통수를 쳐도 나는 순응을 배우는 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평온하고 잔잔한 마음에 시어머니가 파도를 일으키기 전에는...
다음 화도 꼭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