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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Oct 25. 2021

시골이 뭐가 좋아서 즐거움엔 끝이 없다.

놀기 위해 태어난 아이들


 주로 놀이 소재를 제공하는 쪽은 먼저 귀촌한 친구의 딸아이다. 한글도 더듬거리는 우리 집 아이가 한자 공부를 시작한 것도 친구 딸 덕분이다. 3월의 어느 날 마당에 텐트를 치고 아이들에게 그 안에서 놀아도 된다고 했는데 아이들은 엄마들의 눈길을 아주 피할 수 있는 다른 장소를 아지트로 정했다. 윗채 친구 집 뒤쪽 어스름한 공간에서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한자 놀이를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공책 한 가득 8급 한자를 쓰고 외우는 것이다. 

 "엄마" 부르다 말고 "어미 모"를 외치거나 내가 운전하는 중에 쉴 새 없이 '우회전! 좌회전'을 남발하는 등 생활 깊숙한 곳에서도 한자 놀이를 했다. 그 영향으로 5살 된 우리 집 둘째는 부루마블 게임 중에 '콩코드 여객기'의 '콩'은 한자로 뭐냐고 묻기도 했다. 제 이름도 쓸 줄 모르는 둘째에게 한자는 놀잇감일 뿐이었다. 그 애는 어깨 넘어 한자를 익히다가 지루해지면 지천에 널려있는 애기똥풀을 꺾어 제 손톱을 노랗게 물들이고 강아지풀을 꺾어 내 다리를 간질이며 깔깔거렸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시골에 오길 잘했다."라고 백번도 더 생각했다. 흙과 풀을 벗으로 여기고 그 속에서 발견한 곤충 관찰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모습이 내 마음의 평화였다.


 신문 제작 놀이도 먼저 귀촌한 친구 딸이 유행시켰다. 윗채 2학년 오빠를 인터뷰한 내용으로 채워진 신문은 글과 그림이 제법 근사해서 엄마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나는 아이들의 신문을 보면 수채화 중인 도화지가 연상되었다. 삐뚤빼뚤하고 맞춤법이 엉망인 글자는 얼핏 탁한 물통 같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탁한 물통에서 씻겨진 결이 고운 붓처럼 보드랍고 정갈했다.  웅크리고 한참을 써 내려간 아이들의 글자는 수채화 물감을 붓끝에 살짝만 묻혀서 도화지에 칠했을 때 연하게 묻어나는 색감처럼 서정적이고 감각적이라 어미 된 보람이 끓어올랐다. 


 연극놀이 또한 수준급인데 기승전결이 분명하게 구성을 짜고 연극 중 혼선이 생기면 재빨리 노래 공연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등 도저히 1, 2학년이라 보기 힘든 수준 높은 놀이를 했다. 먼저 귀촌한 친구와 나는 동갑내기 딸을 키우고 있는데 딸아이 둘이 워낙 맘이 잘 맞아서 우린 그 애들을 '앤과 다이애나'라고 칭하고 정말 앤과 다이애나 같이 우정을 키워나가길 바랐다. 엄마들의 마음을 아는지 둘은 세상 둘도 없는 단짝이고 연극 메이트이다. 열심히 그리고 오리고 붙여서 공연장 입장권을 만들어 배포할 때는 그 아이들의 유니버스가 얼마나 아름답게 다가오는지 피터팬의 네버랜드처럼 더 이상 자라지 않고 그 순간에 박제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 맘껏 놀아라!' 

 아지트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창문 넘어 집안으로 다 들린다는 사실을 모른 채 동생들을 따돌리고 1, 2학년 세명만 놀려고 작전을 짠다던가 자기들 키만큼 자란 잡초밭에 길을 내고 개구리를 따라다니며 천방지축으로 노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나는 저녁밥 준비를 했다. 밥상에 밥을 차려놓고 마당을 향해 "밥 먹으러 와!" 소리를 치면 나는 30년의 시간을 거슬러 골목을 누비던 꼬마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대문간에 서서 밥 먹으라고 소리치던 친정엄마와 지금의 나는 닮아 있겠지. 내가 선명히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처럼 내 아이도 내 모습을 기억하겠지. 그 좁은 골목에서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친구의 이름과 얼굴은 기억이 안 나지만 쿰쿰하고 시큼한 하수구 냄새와 고등어 굽는 비린내, 뚝배기에 된장찌개 끓는 소리, 악을 쓰며 제 아이를 찾는 엄마들의 실루엣은 뼈에 세겨진 추억으로 진하게 남아있으니 8살 내 딸아이도 봄날의 선선함과 나쁘지 않은 풀 비린내, 청개구리의 미끈함, 왕개미의 간질거림을 뼈에 세기고 있을 것이다.

 여름에 가까워 갈수록 해가 길어져서 우린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논길 산책을 갈 수 있었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사과밭 넘어부터는 비교적 낮은 경사길에 넓은 계단식 논이 펼쳐져 있는데 탁 트인 논과 멀리 산 너머로 흘러 퍼지는 노을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모내기가 한창일 때 이장님이 마을 방송을 통해 '우렁이를 나눠주니 필요한 농가에서는 가져가시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덕분에 밭이랑엔 논을 빠져나온 우렁이들이 자주 출몰했다. 아이들이 길 잃은 우렁이를 잡아서 논을 향해 힘껏 던지며 "집에 가!" 외치면 멀리 축사에서 '음머'하고 답이 와서 우린 배를 잡고 웃기도 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던 시골에서의 일상인가. 시골에서의 봄은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시간은 없었다. 그러나 여름에 가까워 갈수록 나는 지치고 예민해졌다. 빨래가 산맥을 이루도록 비가 쏟아지는 시기가 있었고 비님이 지나간 마당에는 풀이 무시무시하게 자랐다. 본격적인 여름부터는 태양이 작열하게 쏟아져 마당놀이가 불가능해졌고 아이들은 에어컨을 켜놓는 집 안에서 놀 수밖에 없었다. 평소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좋아하는 나지만 나는 이번 여름이 너무 힘들었다. 나를 시골에 올 수 있게 도와준 온 우주에 감사해야지 하면서 마음을 다 잡아봐도 피로감이 자꾸만 쌓여갔다. 

 그도 그럴 것이 윗채는 10평 남짓한 집에 거실 없이 방만 2개이고 우리 집인 아랫채는 7평 남짓으로 거실 하나, 방 하나이다 보니 아이 5~6명이 몰려다니며 놀면 그 공간이 결코 넉넉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우리 집에서 놀 때 나는 부엌에 기대서서 아이들은 지켜보곤 했는데 사소한 행동, 말투가 내 신경을 곤두 세울 때가 많았다. 그 시기 아이들에게 당연한 행동과 말투도 나에게는 근심이었다. 내 그릇이 간장 종지만 하다 보니 나는 빠르게 지쳐 갔다.


우리 세 엄마들은 꽤 오래 친하게 지내왔고 뜻이 잘 맞았다. 그래서 가까이 살며 같이 아이를 키우는 부분에 있어서 기대가 컸다. 모든게 원만하고 재밌을 줄 알았다. 그러나 명목상 공동육아인 상황이 나에게는 상황상 독박 육아로 느껴져 큰 부담이고 불편이었다. 아이들이 우르르 윗채에 몰려가면 윗채 친구에게 폐 끼치는 것이 신경 쓰였고 맞벌이를 하는 먼저 귀촌한 친구 집에 가면 친구가 얼마나 피곤할까 걱정되었다. 아이들이 우리 집에 있을 때는 되도록 아이들에게 신경을 안 쓰고 싶었지만 따로 피할 곳이 없어 지켜보고 있자니 인내심에 바닥이 드러났다. 


 윗채 친구와 얘기 중에 나는 나의 지침을 고백하게 되었고 마을 규칙을 다시 정해 보기로 했다. 두 번째 규칙도 돌담이나 나무에 올라가면 안 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지만 큰 변화가 있었다. 방과 후 매일매일 놀던 평소와 다르게 앞으로는 일주일에 3번, 월, 수, 금만 같이 놀고 월, 수요일엔 평소보다 1시간 정도 일찍 헤어지기로 했다. 아이들도 무난하게 규칙을 받아들였다. 사실 그 무렵 여름방학으로 인해 아이들 일과에 변화가 많아서 규칙과 상관없이 노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아이들의 불만이 없었던 거 같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우린 정말 진하게 놀았다. 



다음 편도 꼭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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