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 are you happy?"
[마흔 살에 떠나는 필리핀(Cebu) 어학연수 이야기]
#12. Koreans are rich, so are you happy?
“수업 끝나고 로비에서 만나요”
1:4 수업이 끝날 때 알렉스가 ‘로벨린’ 선생에게 저녁을 같이 하자고 한다.
물론 우리끼리는 수업 전에 다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수업을 한 달 정도 같이하면
담당 선생과 회식을 하는 것은 관례다. 그럴 때면 선생들은 친한 선생들과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밥값은 당연히 학생들이 낸다.
학원 생활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니 잡다한 것들이 궁금해진다.
선생들은 결혼했을까? 나이는 얼마나 됐을까? 전공은 뭘까? 월급은 얼마나 받을까? 등등
자주 볼 수록 궁금증은 커진다.
수업 시간에 물어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묻기 힘든 질문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의문은 회식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놓게 된다. 선생들 역시 회식 때 수업 중에 말 못 했던
것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학원 규정상 선생들은 회식 중에도 학생과 술을 못 먹게 되어 있다.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니 알아서 할 일이지만 선생들 입장에서도 나쁜 소문이 돌면 좋을 일이
없으니 많이 조심하는 것 같았다.
알렉스와 레이 그리고 나 이렇게 학생 세 명과 로벨린 선생과 동료 선생 한 명이 저녁식사를 했다.
필리핀 사람들은 한국음식을 좋아한다. 선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한식당에서 즐거운 저녁
시간을 가졌다. 대화를 이끄는 건 알렉스였지만 나도 이제 이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어서 꿀 먹은
벙어리로 앉아있진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의사소통은 표정과 느낌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1:1 수업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익힌 덕에 자세히 알아듣지 못해도 대화에 낄 수는 있게 됐다.
소주 두어 잔과 함께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선생들과 헤어졌다.
택시를 태워 보내려고 하니 굳이 자기들이 알아서 가겠다고 해서 식당 앞에서 인사를 나눴다.
알렉스 왈 “택시비 받기 싫어서 저러는 거예요.”라고 한다.
나는 기숙사로 돌아오고 알렉스와 레이는 2차를 간다며 시내 쪽으로 나갔다.
오늘은 금요일이라 새벽 2시까지만 복귀하면 되니 불금을 즐기러 간 것이다.
혼자서 택시를 타고 학원으로 돌아오면서 창밖을 본다. 대로변의 큰 건물을 보면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런데 택시가 신호등에 멈출 때마다 창밖에서 열 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
창문을 두드린다. 씻지 않은 얼굴, 지저분한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이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 하나를 펴서 창문 안쪽으로 보여 준다.
“원 달러, 원 달러”, “헬로 썰, 아임 헝그리”
애 엄마라고 하기는 너무나 어려 보이는 10대 소녀가 아기를 안고 애처로운 표정으로 손을 펴 보인다.
눈은 왜 그렇게 큰지 얼굴의 절반이 눈인 것 같다. 눈을 마주치는 것이 두렵다. 처음 겪을 때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섞인 묘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거리의 아이들을 볼 때면 아픈 마음이 더 크다.
차가 움직일 때까지 정면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가 차가 출발하면 고개를 돌린다.
“도대체 저 애들은 뭘 먹고, 어디서 잠을 잘까?”
학원이 있는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서자 거리 구멍가게 앞에서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철망이 처져있는 구멍가게 앞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술을 마신다.
녹슨 양철지붕과 페인트칠이 벗겨진 담벼락 앞에서 즐거운 금요일 밤을 보내고 있다.
백열등 밑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방금 전 거리에서 본 장면과 괴리 때문에 마음이 복잡하다.
택시가 학원 앞에 서고 택시비 200페소를 주니 기사가 거스름돈이 없다고 한다.
기사를 한참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학원으로 들어왔다.
오늘 우리 다섯 명이 먹은 밥값은 약 3000페소 한국 돈 7만 5천 원가량이다.
세 명이서 나누어 냈으니 인당 1000페소 정도 씩 냈다.
우리 돈으로 약 25,000원씩 낸 셈이다.
선생들의 한 달 급료는 약 12,000페소가량이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30만 원 정도이다.
선생들은 정규대학을 졸업했고, 절반 정도는 대학원을 졸업했거나 수료한 사람들이다.
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도 많다.
인기가 있어 엑스트라 수업까지 하는 유명 선생들은 월급이 20,000페소가량 되지만
이런 사람은 거의 없다. 2만 페소라고 해 봐야 우리 돈으로 50만 원이 안 되는 돈이다.
나는 오늘 한 달에 30만 원 월급 받는 사람들과 한 끼 7만 오천 원 짜리 밥을 먹었다.
한국 학생들은 한 달에 선생들 월급의 4배가 넘는 학원비를 내고 자기들 넉 달치
월급보다 비싼 노트북을 쓰고, 석 달치 월급보다 비싼 핸드폰을 사용한다.
매주 주말이면 여행을 가거나 외식을 하고 평일에도 클럽이나 술집에서 돈을 쓰고
와서는 수업을 펑크 내거나 어젯밤의 영웅담을 자랑질한다.
가끔은 기숙사 방 앞에서 선생이 학생 이름을 부르며 노크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학생이 수업에 빠지면 선생이 학생 방으로 데리러 가는 것이다. 그룹 수업이면 학생들이
찾으러 가지만 1:1 수업인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선생이 가야 한다. 잘난 영어 공부한답시고
천릿길 와서는 술병이 나서 골골대거나, 여자들 꽁무니 따라다니다가 학원에 못 돌아와 징계를
먹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선생들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수업 시간에 물어봤더니 선생들은 솔직히 별 생각이 없단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선생이 내게 이런 질문을 했던 기억은 난다.
"Koreans are rich. So, are you happy?"
난 선뜻 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렇게 물을 때 “I'm so happy."라고 답 할 수 있는 한국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행복하다"는 느낌을 마지막으로 받아 본 것이 언제쯤일까?
그런 적이 있기는 했을까?
물질적 풍요도, 정신적 풍요도, 감정적 풍요도 느껴 본 적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도대체 여기 지금 왜 와 있는 것일까?
답 할 수 없는 질문이 많이 떠오르는 건 아마도 술 때문인 듯하다.
"젠장,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