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안 해보면 나중에 더 후회할 거 같아"
[마흔 살에 떠나는 필리핀(Cebu) 어학연수 이야기]
#13. 왜, 떠나세요?
이혼 한 지 5년이 지났다. 늦게 결혼해서, 짧게 살고, 쉽게 헤어졌다.
원래 혼자 생활에는 익숙했기에 홀로 살면서도 외로움이나 허전함 같은 건 없었다.
토요일 새벽에는 청계산을 오르거나 서울 근교 50m 수영장에 수영을 하러 간다.
아침 일찍 수영장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1등으로 들어가 아무도 없는 50m 레인을
헤엄쳐 본 적이 있는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말을 말라. 겨울에는 특히 좋다.
오후에는 피자에 맥주를 준비해서 책이나 영화를 본다. 그러다가 가끔 오토바이를 타고
강남으로 심야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한다. 홀로 하는 자유는 고독이 주는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
불현듯 월요일이 찾아오면 새벽 6시부터 또 일상에 쫓기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일하고, 밥 먹고, 잠을 잔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면, 금요일의 자유는 삶의 환희다.
“너무 좋다. 혼자 사는 거” 이런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온다.
가끔 주말에 일이 들어오면 학교 동문들과 친구들을 만난다.
반가운 표정으로 만나서 주접을 떤다. 그렇게 보내는 주말도 괜찮다.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주말에 일하는 걸 싫어하지만 나는 좋아라고 달려간다.
가기만 하면 밥도 주고 돈도 준다. 게다가 사람들과 수다도 떨 수 있다.
일주일 내도록 입을 닫고 있을 때가 입을 열 때 보다 더 많다.
사람 만나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다. 단지, 만날 사람이 없을 뿐이다.
손님이나 거래처 사람은 그냥 ‘손님’이고 ‘거래처 사람’ 일뿐이니 따로 만날 일이 없다.
자식이 없으니 돈이 많이 들어갈 일도 없다.
박봉이지만 혼자 먹고살기에 아쉽지는 않다.
혼자인 것이 행복하다.
어느 날 사무실 내부 공사로 본의 아닌 강제 휴가를 떠나게 됐다.
주저 없이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오토바이를 빌려서 바닷바람 맞으며 해안도로를 달렸다.
용머리 바위에서 일몰을 찍고, 근처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미로 공원도 가보고, 도깨비 도로에서
사진도 찍었다. 섭지코지를 헤매기도 하고 성산 일출봉에서 일출 사진도 찍고, 한라산도 올랐다.
혼자서 사흘간 제주도를 떠돌다 부산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양산의 부모님 집에서 하루 쉬었다가 서울로 갈 생각이었다.
서울에 가면 날 기다리는 내 방이 있다. 내 방에 빨리 가고 싶지만 제주도까지 내려와서 본가를
안 들르고 갈 순 없었다. 제주에서 부산까지는 페리호로 약 12시간이 걸린다. 저녁 7시에
제주항을 출발하면 아침 7시에 부산에 도착한다. 시간만 잘 맞추면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다.
주말여행을 온 여행객들이 많아 배 안이 소란하다. 재잘재잘 조잘조잘 떠드는 학생들이 갑판 한 가득이다.
나는 3등 칸 구석에 혼자 등을 기대고 우두커니 사람 구경을 했다. 3등 칸은 넓은 찜질방 로비처럼 생겼다.
3등 칸은 불편하지만 사람 사는 맛을 느낄 수 있어 나쁘지 않았다.
벽에 기대 사람 구경을 하는데 한쪽 구석에 외국인이 눈에 띄었다. 여자 한 명 남자 두 명이다.
여자는 금발머리에 푸른색 눈동자를 가졌다. 꼭 인형 같다. 잘은 모르지만 영화에서나 보던 북유럽
사람처럼 보인다. 남자 한 명은 라틴계처럼 보인다. 검은 머리칼에 피부색이 짙고 눈동자도 검다.
나머지 한 명은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얀 민머리 청년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들 사이에 여자 스님이 끼어 있었다. 웃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스님의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이 특이한 조합의 여행객들을 지켜봤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도대체 뭐가 저리 재밌을까?,
“저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말로 대화를 하고 있을까?”
여자 스님이 행랑에서 사진을 꺼내 보여주자 외국인들은 스님의 말을 메모하기도 하고 되묻기도 하며
뭔가 진지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들에게도 호기심이 생기고 스님에게도 호기심이 생겼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불편함에 잠이 깨 보니 주위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해가 벌써 떠 있었다.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보고 싶었는데 너무 늦게 잠에서 깼다.
무리하게 한라산 등반을 해서인지 몸이 말이 아니었다.
해풍을 받으며 갑판을 걷는데 재잘재잘 떠드는 여학생들의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 여럿이 어젯밤 그 외국인 청년들을 둘러싸고 사진을
찍으며 재잘되는 소리였다. 웃음소리는 큰데 제대로 말을 이어 붙이는 학생은 없어 보였다.
잠시 후 배가 부산항에 도착했고 나는 짐을 들고 배에서 내렸다.
몇 걸음쯤 앞에 그 외국인들이 걸어간다. 비구니 스님은 안 보였다.
함께 사진을 찍던 학생들도 안 보였다.
어린아이 키만큼 큰 배낭을 멘 외국인들이 저 멀리 인파 속으로 사라져 갔다.
사라져 가는 그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같은 공간에 12시간이나 함께 있었는데 말 한마디 못 붙여 보는구나,
궁금한 게 많았는데 참 아쉽다.”
연안부두를 터덜터덜 걸어 나오면서 얼마 전 일본에서 친구들이 비행기를
놓쳤을 때 생각이 났다. “영어로 말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01 프롤로그 참조)
세부로 떠나기 전날 서울 살림살이들을 맡기려고 후배 A를 만났다.
이런저런 부탁을 하고 돌아서는데 A가 묻는다.
-A : 형, 진짜 왜 가는데?
-나 : 가고 싶어서...
-A : 돈도 없잖아. 어쩌려고 그래?
-나 : 거기 가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다 해줘.
-A : 미쳤어? 영어 못해서 뭐 불편한 거 있어?
-나 : 없어.
-A : 그런데 왜, 가?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
-나 : 그러게... 그래도, 영어 잘하면 좋잖아.
-A : 그게 도대체 왜 하고 싶은 건데? 정말 이해가 안 되네....
-나 :......... (그러게 나도 지금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런데 지금 안 하면 나중에 더 후회할 거 같아.)
다음 날 나는 세부 행 비행기를 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