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스쿠버 다이빙

by 벼랑끝

[마흔 살에 떠나는 필리핀(Cebu) 어학연수 이야기]

#16. 스쿠버 다이빙


"세부는 바다가 예쁜 곳이에요.

세부 와서 다이빙 못해보면 평생 후회하게 될 겁니다.

스쿠버 다이빙은 인간이 죽기 전에 해봐야 하는 열 가지 중 하나라고 하잖아요.”


“세부에는 [발리카삭, BALICASAG]이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이곳을 세계

4대 다이빙 포인트 중의 한 곳이라고들 하지요. 뭐 물론 공인된 건 아니지만

그만큼 좋다는 뜻이에요.”


“예전에는 세부 근처 섬들은 모두 유명 다이빙 포인트였습니다.

지금은 많이 훼손되기는 했어도 아직도 아주 아름다운 곳이 많아요."


- 스쿠버 다이빙 교육 중 강사의 멘트




연휴로 일주일 넘게 수업이 중단됐다.

선생들은 모두 고향으로 갔고 학생들도 대부분 여행을 떠났다.

휴가가 2일쯤 지날 무렵 알렉스가 찾아와서 “스쿠버 다이빙”을 해보자고 한다.


-알렉스: 형님, 수영 좋아하세요?

-나 : 수영 좋아하지, 내 인생에 제일 후회 안 하는 게 수영 배운 건데.

-알렉스: 내일 레이하고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 따러 갈 건데 같이 갈래요?

세부까지 와서 만날 학원에만 있어서 되겠어요?

-나 : 그거 얼만데?

-알렉스: 얼마 안 비싸요. 이 기회에 자격증 따놓으면 좋잖아요.

자격증 있으면 스쿠버 다이빙 싸게 할 수 있데요.


처음 세부로 어학연수를 결정할 때 나는 세부가 우리나라 해운대나 경포대 같은 바닷가인 줄 알았다.

그래서 창문만 열면 바다가 보이고 주말에는 바닷가에서 칵테일이나 마시면서 수영하고, 뭐 그런

영화 속의 장면을 꿈꿨었다. 그런데 막상 세부에 와 보니 바다는 공항에서 학원 들어올 때 다리

건너면서 본 게 전부였다.


'세부 섬'은 길이가 250km 정도 되는 큰 섬이고 '세부(CEBU CITY)'는 세부 지역의 중심 도시에

불과했다. 때문에 흔히 ‘세부’라고 부르는 '세부 시티'에서는 바다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세부'는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처럼 아주 큰 항구 도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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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는 알렉스, 레이와 함께 “막탄” 섬에 있는 다이빙 샵으로 [PADI, OPEN-WATER]

자격증을 따러 갔다. 막탄은 세부에 붙어있는 섬으로 관광지가 밀집되어 있고 국제공항이 있는

곳이다. 한국에 알려져 있는 관광지 '세부'는 결국 '막탄' 섬을 말한다. 막탄 섬은 강화도처럼

큰 다리로 본섬과 붙어있는 섬이고 관광에 특화된 곳이다.


택시로 1시간 가까이 이동해서 막탄 섬에 들어섰다. 꼭 여행을 가는 기분이다.

막탄 섬의 다이빙 샵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열대의 바다를 보았다.

청록의 바다와 구름이 마치 풍경화 같았다.


강사로부터 주의 사항을 듣고 스쿠버 다이빙 교육에 들어갔다.

교육은 3일간 이루어지는데 강사들 말로는 [PADI]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쿠버 다이빙 단체이고

이곳에서 발행하는 자격증은 전 세계에 다 통용되는 공인 자격증이라고 했다. 스쿠버 다이빙도

단체가 여럿 있는 것 같았다. 평소에 관심이 없던 분야라 그러려니 했다.


처음 이론 강의를 할 때만 해도 대충 사흘 날짜만 때우면 주는 그런 자격증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실습이 시작되니 이건 뭐, 그리 만만히 보고 시작할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수영강습을 3개월 정도 받은 적이 있다. 여건이 허락지 않아 교육을 더 받지는

못했지만 주말 오전에 서울 인근 50m 풀을 찾아다니면서 수영을 즐기는 것은 나의 비밀스러운

놀이 중 하나였다. 어학연수 장소를 정할 때도 수영은 중요한 조건 중 하나였다. 나는 세부에 가면

아무 때나 바다에서 수영을 실컷 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했고 이런 상상은 세부를 어학연수지로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학원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야 얼마나 허황된 꿈인지 알게

됐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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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꽤 하고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첫날 스쿠버다이빙 교육이 끝나고 초주검이 되어 학원으로 돌아왔다.

별거 아닌 자격증 돈 주고 사는 걸로 생각하고 갔다가 큰코다친 것이다. 세부에는 “체험 다이빙”이라는

관광 프로그램이 있다. 일반인이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전문 다이버들이 바닷속 구경을 시켜주는

여행상품이다.


체험다이빙을 해본 학원 학생들에게 스쿠버 다이빙 별거 아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지라 크게 힘들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실제 “다이버 교육”은 "체험 다이빙"과는 차원이 달랐다.

재미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고 강사들은 규정에 어긋나는 일은 조금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교육과 관광이 다를 것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첫날 교육을 마치고 다이빙 샵을 나서는데 강사들이 “내일 꼭 오세요!” 한다.

왜 그렇게 인사하냐고 물으니, 첫날 교육받고 포기하는 교육생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환불이 안되는데도 많은 사람이 첫날이 지나면 포기한다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쾡 한 눈으로 식당에서 알렉스와 레이를 만났다. 알렉스는 수영을 10년 정도

했다는데도 나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아침 식사 후 우리는 택시를 타고 다이빙 샵으로

출발했다. 모두 “이틀만 버티면 된다.”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는 듯했다. 아니 나만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둘째 날은 더 죽을 맛이었다. 세부는 바닷물의 농도가 우리나라보다 2~3배는 더 짜다.

느낌이 그런 것이 아니라 강사들 말이 원래 염도가 높다고 했다. 그날은 바닷물을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정말 실신할 지경이었다. 점심 식사 후 휴식 시간에 얼굴들을 보니 모두 인간의 몰골이

아니었다.


“내가 왜, 돈 내고 이 짓을 하고 있나?,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이 쓸데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죽을 둥 살 둥 고생 끝에 겨우 이틀 째 교육을 끝냈다. 다이빙 샵을 나서는데 강사들이 다음 날

필기시험에 관련된 인쇄물을 준다. 몸도 피곤해 죽겠는데 돌아가서 공부까지 해야 할 판이다.

정말 죽을 맛이었다.


마지막 날 일정은 오전에는 실기 교육, 오후에는 필기 및 실기 평가가 있었다.

교재와 함께 출제 규정을 알려줬지만 내게 쉽지만은 않은 시험이었다.

다이버의 생명과 연관되는 다이빙 수칙들이니 당연히 쉬울 리가 없었다.

다이버들은 잠수 시간 계산이 목숨처럼 중요한데 필기시험에서 이걸 계산하는 게 내게는

무척 어려웠다. 밤에 공부를 했지만 계산법이 이해가 안 됐다. 한글로 된 교재인데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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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지막 날. 오전에 마무리 수업을 하고 실기시험과 필기시험을 치렀다.

시험은 참가만 하면 대부분 합격이지만 과락이 있을 경우 다음 날 또 다음 날 식으로 계속 시험을

치러야 한다. 결코 호락호락 쉽게 주는 자격증이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든 하루 만에 끝내려고 죽기 살기로 시험에 임했고 우리는 모두 한 번에 테스트에 합격했다.

시험이 끝나고 강사들과 저녁 식사와 함께 축하 술을 한 잔 마신 뒤 막탄 섬의 바다를 뒤로하고 학원으로

돌아왔다.


그 뒤 알렉스와 레이는 주말마다 다이빙을 하러 다니는 것 같았다. 자격증이 있으면 거의 공짜로

스쿠버 다이빙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나는 자격증 시험이 끝나고 다시는 그쪽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바다가 꼴도 보기 싫었다.


시간이 지나면 어떨지 몰라도 당분간은 스쿠버 다이빙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건 다이빙 교육 때 너무 힘들어 그런 것도 있었지만 영어 공부에 대한 압박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지나는데 실력은 늘지 않으니 쉬는 날 마음 편히 지낼 수가 없었다.

주말에도 뭔가 영어 공부에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젠장, 영어도 안 되는데 스쿠버 다이빙이라니....”

이런 혼잣말을 하면서 [PADI-OPEN WATER] 자격증을 서랍 속에 던져 넣었다.


시간이 지나면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 딴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을 안다.

이 정도면 황금 같은 휴가를 꽤 생산적으로 보낸 게 맞을 것이다.

모르던 많은 것을 배웠고 아름다운 세부 바다를 원 없이 볼 수 있었다.

설사 이 자격증이 아무런 소용이 없을지라도 나는 적어도 “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하는 일”이라고

떠들어대는 것 중 하나를 해 본 셈이다. 이것만 해도 큰 성과가 아니겠는가.

한 가지도 못해보는 사람도 많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죽기 전에 꼭 해야 하는 일' 같은 건 누가 정한 걸까?

누가 책을 팔려고 상업적 메커니즘을 이용해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이 자격증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월이 지나면 잊히는 것도 많겠지만 기억나는 것도 많게 마련이다.

이 자격증은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중 하나가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생각하며 좋은 추억거리를 떠올릴 수 있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의미가 있다.


이런 생각마저 하지 않는다면 지금 하고 있는 나의 행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테니까.


"추억(기억할 거리)'은 만들어 가는 것"

"내가 만들고 있는 현재는 미래의 내게 하는 선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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