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밤 문화...

19금 내용이 다소 포함됨. 순진무구한 사람에겐 비추

by 벼랑끝

[마흔 살에 떠나는 필리핀(Cebu) 어학연수 이야기]

#17. 밤 문화


-알렉스 : 형, 가자!

-나 : 어디 가는데?

-알렉스 : 나도 몰라 애들이 우리 좋은 구경시켜 준다고 따라오래.


오늘은 금요일 밤이다. 저녁 식사 때 남학생 몇몇이 밤에 나간다고 같이 가자고 한다.

사실 내게 그런 건 아니고 알렉스에게 한 말이었다. 나는 덕분에 알렉스와 레이를 따라

밤마실을 나가게 됐다. 로비에 나가 보니 평소와는 다르게 멋지게 차려입은 학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렉스 : 오늘 코스가 어떻게 돼?

-학생 1 : 형님들, 오늘은 특별히 구경만 하는 거니까 다음부터는 형님들끼리 다니세요.

-레이 : 알았어. 오늘 술값 내가 낼게.

-학생 2 : 감사합니다...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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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택시 2대에 나누어 타고 세부 시내의 유흥가로 향했다.

금요일 밤이라서인지 8가 지났는데도 차들이 거리를 꽉 메우고 있다.


-학생 3 : 형님들 어디부터 가 보실래요?

-알렉스 : 좋은데 가보자.

-학생 3 : 세부에 좋은 데가 어디 있어요? 다 거기서 거기죠.

일단, ‘B-Bar’부터 가보죠.

-알렉스 : 그래 좋아..


-나 : ‘B-Bar’가 뭐야?

-학생 1 : ‘비키니 바(Bikini Bar)’를 ‘B-Bar’라고 해요.

-나 : 비키니 입고 춤추는 댄가?

-학생 1 : 춤도 추고 서빙도 하고 그러죠.

-나 : 그럼 ‘스트립 바’잖아?

-학생 1 : ‘스트립 바’하고는 좀 달라요. 옷을 다 벗지는 않아요.


-알렉스 : 뭐야? 그게 다야?

-학생 3 : 형님!! 도대체 뭘 더 바라세요? 세부에서 옷 다 벗으면 불법이에요.

-알렉스 : 그래? 음...

-학생 3 : 더한 건 형님이 알아서 찾으세요. 오늘 저희는 구경만 시켜드릴게요.

뒷일은 알아서 하시는 거예요.

알렉스 : 알았어.


우리는 30분쯤 후에 꽤나 번쩍거리는 어떤 거리에서 차를 내렸다.

네온이 뿜어져 나오는 건물들 뒤로 어둡고 음란해 보이는 골목길이 엉겨있는 것 같다.

나는 한국에서도 밤 문화를 즐기지 못해 봤기에 이런 장소가 어색하다.

물론 그 말이 호기심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호기심은 내 삶의 자양분이다.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곳에서 차를 내려 골목으로 들어서니 묘한 살 떨림이 일었다.


학생들이 당당하게 반짝이로 치장된 건물로 들어가자 정문의 ‘가드(Guard)'가

반갑게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맞이한다. 꽤 친한 척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담배연기가 코를 찔렀다.


-알렉스 : 오호~, 분위기 좋은데.

-학생 1 : 여기가 세부에서 제일 오래된 ‘B-Bar’래요.

-나 : 그런 건 누구한테 들었어?

-학생 2 : 프랭크 선생요....

-나 : ㅋㅋㅋㅋ...(좋은 거 가르친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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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는 담배연기로 꽉 차 있고 구석 쪽 당구대에서는 비키니를 입은 현지인 아가씨와

서양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맥주병을 들고 당구를 치고 있었다. 뿌연 조명의 바에는

바텐더들이 주문을 받고 있었고 짧은 치마의 웨이터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손님은 외국인이 많았다. 동양인과 서양인이 고루 섞여 있는데 동양인은 학생이 많은 것

같고 서양인은 나이 든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무대 앞의 소파에 자리를 잡자 웨이터와 ‘마마상(마담)’이 다가와서 학생들과 아는 척을 한다.

학생들이 우리를 소개하자 ‘마마상’이 “헬로, 나이스 미츄”라고 인사를 한다.


학생들은 신이 나서 마마상과 뭔가를 지껄여댔다.

주문을 하고 무대를 보자 댄서가 춤을 추고 있다. 아슬아슬한 비키니 차림의 필리핀 아가씨가

무대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사실 춤이라기보다는 흐느적거리 거 같아 보였다.

알렉스와 학생들이 바쁘게 뭔가 이야기를 나누더니, 잠시 후 학생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형님 쇼업(Show Up) 한 번 하시죠? 그러자 알렉스가 "OK"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학생들 중 하나가 마마상에게 손짓을 하며 뭐라고 한참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보던 것과는 달리 자신감에 차 있다. 그런 모습이 내 눈엔 약간

오버하는 것처럼 보였다. 뭔가 신나는 일을 할 때 풍기는 수컷들의 용감함이라고 할까.


학생과 마마상의 대화가 끝나자 비키니에 번호표를 달고 있는 아가씨들 10여 명이

우르르 우리 테이블 앞으로 몰려왔다.


"형님 먼저 고르세요. 연장자 프리미엄 드립니다." 알렉스가 날 보며 말했다.


내 눈앞에 절반쯤 벗은 여자들 10여 명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긴장감으로 얼굴이 굳었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남자들은 이럴 때 본능적으로 센 척을 하게 마련이다.

대충 보는 척하다가 나는 아무 번호나 골랐다.


"음... 나는 XXX번..."


아가씨들이 한 명씩 우리들 옆에 앉았고 웨이터가 주문을 받았다.

아마도 아가씨들의 술을 한잔씩 시키는 것 같았다.


-학생 1 : 형님들, 이 아가씨들은 테이블에서 음료수 한 잔 마시면 30분간 앉아 있을

수 있어요. 30분 후에 한 잔 더 시키든지 아가씨를 바꾸든지 해야 해요.

-알렉스 : 2차 같은 건 없냐?

-학생 1 : 그건 마마 상하고 따로 이야기하셔야 해요. 형님 오늘 생각 있으세요?

-알렉스 : 아니 그냥 물어보는 거야?

-학생 1 : 오늘은 그냥 세부 밤 문화가 대충 이런 거다 구경만 하시고요.

다음에 날 잡아 나오세요. 저희하고 같이 다니면 불편하잖아요.

-학생 2 : 여기서 물 좀 보고 다른 데 또 구경 가시죠?

-알렉스 : 오케...


내 옆에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고 가슴을 살짝 가린 수영복을 입은 아가씨가 앉았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이렇게 어색할 땐 영어로 뭐라고 해야 하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건 학원에서 배운 적이 없다. 익숙지 않은 어색함에 뚫어지게 앞 만 보게 된다.

옆을 돌아보는 게 힘들었다.


아가씨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아가씨 : “웰 아유 프람? “아 유 코리안?” “아이 노 코리아 랭귀지, ‘안녕하세요’,

‘배고파’, ‘나 삼겹살 좋아해’, 나 잘 놀아..” ㅎㅎㅎ


-알렉스 : 형님 걔 한국말 잘하네, 한 잔 더 사줘요.

-나 :.....


30분이 어떻게 지났는지는 모르게 후딱 지났고 마마상이 나타나 다시 학생들과 뭔가

이야기를 했다. 알렉스가 일어나더니 “딴 데로 갑시다.” 한다. 우리는 문을 나섰다.

등 뒤에서 시끄러운 음악과 음란한 담배 연기가 내 뒤를 따라 거리로 나오는 것 같았다.


그 뒤로도 두세 곳의 비슷한 ‘B-Bar’를 돌아다녔다. 춤을 좀 색다르게 추는 곳도 있고,

칸막이가 쳐져서 옆자리가 안 보이게 된 곳도 있었다. 이런 곳에서는 좀 더 과감한 행동들이

스스럼없이 일어났다. B-BAR는 기본적으로 댄스홀이다. 아가씨들은 모두 댄서들인 것이다.

그래서 가끔 테이블 위나 무릎 위에서 요염한 춤을 추기도 했다.


아가씨들이 댄스 타임이 되어 무대로 나가면 파트너였던 손님은 무대 밑에서 춤추는

파트너에게 돈을 꽂았다. 그러면 손님들은 박수를 치며 흥겨워했다. 학생들 말로는 파트너가

춤을 추면 팁을 던지는 게 이 바닥 매너라고 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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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Bar를 나와서 클럽으로 갔다. 클럽 내부는 시끄러웠고 사람이 너무 많았다.

클럽은 한국 남학생이 손님의 절반인 것 같았다. 나머지 절반은 섹시한 복장의 현지 여자들이다.

나는 클럽 앞 주차장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았다. 알렉스와 레이도 테이블에 앉았다. 웨이터들이

주문을 받아갔고 학생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러자 알렉스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알렉스 : 애들이 B-Bar나 클럽에서 영어를 배운데요.

-나 : 무슨 소리야?

-알렉스 : 형님도 B-Bar에서 애들하고 이야기 잘 하드만.

-나 : 첫 수업 때 하는 거 하고 똑같지 뭐. 신상 털기.

-알렉스 : 선생들하고 하는 거 하고는 맛이 다르잖아요.

-나 : 걔들은 선생이 아니니까.

-알렉스 : 선생 하고는 아무래도 못할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속어도

많이 쓰고 한 번 꾀어보려고 열심히 말을 만들게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못 느꼈어요? 여자애들이 한국 사람을 좋아하잖아요.

-나 : 그게 좋아하는 건가? 그냥 손님 돈을 좋아하는 거지.


-알렉스 : 학생들이 한국에서 이런데 가보기나 했겠어요? 여기서야 7~8천 원만

주면 옆에 훌떡 벗은 아가씨 앉혀놓고 농담 따먹기 하고 슬쩍슬쩍 건들기도

하니까 얼마나 재밌겠어요. 솔직히 다 벗고 있어 봐요. 별 재미없어요.

그냥 놀기는 이런 게 더 재밌어요.

술은 싸지, 재수 좋으면 밖에서 만날 수도 있지, 젊은 애들이 안 빠지는 게 이상하죠.

-나 : 이해는 돼.


-알렉스 : 저기 클럽에 보이는 애들 있잖아요. 쟤들도 한국 학생들이 손잡고

가자고 하면 100% 따라나설 애들이에요.

-나 : 그냥?

-알렉스 : 공짜가 어딨어요? 얼마라도 줘야겠죠. 그래도 한국 보다야

훨씬 쉽지 않겠어요? 그리고 가끔 여자애들이 마음 내키면 그냥 따라오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애들이 잘 차려입고 나오는 거예요. 12시쯤 되면

아까 본 B-Bar 애들 있잖아요. 걔들도 대부분 여기로 온데요.

그럼 물이 더 좋아지는 거죠.

-나 : 그래서 애들이 통금 시간 못 맞춰 들어오고 하는 거구나.


-알렉스 : 저는 여기 좀 더 있다가 갈 거예요. 형님은 어쩌실래요?

-나 : 나는 오늘은 충분해. 다음에 또 오지 뭐.


클럽의 마당에는 30여 개의 테이블이 깔려 있었고, 대부분이 한국 남학생들과 현지 아가씨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술을 마시며 재밌게 놀고 있었다. 다들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있었다.


“나가서 배우면 훨씬 빨리 배운다.”라고 하던 학생들의 말이 이제는 이해가 됐다.

왜 학생들이 부모님에게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바깥 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지,

왜 한국에서 필리핀 어학연수한 학생들을 싫어한다고 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나는 친구들과 학생들을 클럽에 두고 혼자 택시를 탔다.

내가 뭐 성인군자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몸이 너무 피곤했다.

노는 것도 체력이 따라줘야 하고 놀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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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으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멍하니 밖을 보는데 머릿속이 복잡했다.

여자의 몸을 만져 본 게 얼마나 됐던가? 꽤나 긴 시간이 지났다.

언젠가 여기 생활이 익숙해지면 어떻게 변할지 몰라도 아직은 이런 일이 끌리지 않는다.

지금은 영어 스트레스 때문에 몸과 마음이 너무 피곤하다. 딴생각할 틈이 없다.


학원 기숙사로 돌아오니 12시가 넘어 있었다.

잠들기 전에 노트 정리를 하려고 메모장을 뒤적이는데 이런 글이 눈에 띄었다.


어떤 연설 중 발췌 ,


“자 여러분 생각해 봅시다.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20대, 30대를 지나 40대

까지 돈으로 여자(혹은 남자)를 사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부모님과 선생님

이 지키라는 윤리 규범과 사회 통념에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연애를 해도

키스 한 번 제대로 못해봤습니다. 그는 아직도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직 섹스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삶이 행복한 삶인가요?”


누구의 연설인지는 모르겠다. 언제 베낀 글인지도 모르겠고 그날 밤 왜 이 글이

눈이 띄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 노트에는 이런 메모가 무척 많다.


그런데 이 말은 이렇게 바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여러분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이혼 한지 5년이 지났습니다.

사회의 윤리 규범과 통념에 순종하라고 배웠기에 살면서 여자를 돈으로 사 본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입니다. 여자를 만나도 육체관계는 결혼 후에나 하는 거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남은 인생도 섹스에 관한 사회 규범에 순종하며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혼을 하지 않으면 그는 영원히 섹스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삶이 행복한 삶인가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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