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에 떠나는 필리핀(Cebu) 어학연수 이야기]
#21. 시험..(2부)
에이스는 고려대 법학과 출신의 전주 사람이었다.
서울에서 알바를 하면서 고위직 공무원 준비를 했는데, 몇 년을 고생한 끝에 올해 드디어 시험에
합격을 했다고 한다. 얼마 후 연수원에 들어가야 해서 뭘 할까 고민을 하다가 쉬기도 하고 놀기도
할 겸해서 어학연수를 왔다고 했다. 준비 기간이 3년을 넘어가자 집에서 돈을 끊는 바람에 그동안
엄청 고생을 했다고 한다. 어쨌는 공부에 관심이 없는 건 분명했다.
맘이 푸근하고 얼굴에 착한 기운이 뚝뚝 묻어나는 전형적인 시골 청년이다.
에이스는 군대를 카투사로 다녀와서 영어를 좀 한다고 했다.
맥스 말로는 그는 미국 사람처럼 말한다고 했다.
“저도 에이스 형 하는 말은 잘 안 들려요. 발음이 하도 굴러가서 못 알아듣겠어요.” 이런다.
에이스 말로는 군대에서 친구들이 전부 흑인이라 흑인들 말을 따라 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날 웃기려고 한 말인지 진짜 그런 건지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에이스가 영어로 말할 때 보면 혀가 굴러가서 나는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프랭크는 에이스를 '블랙가이'라고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에이스는 프랭크 보다도 피부가 까맸다.
1:8 수업을 몇 번 같이 했는데, 프랭크와 에이스가 둘이 뭔가 슬랭을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꼭 영화를 보는 것처럼 가관이었다. 그런데 에이스는 한국말도 약간 웅얼거리는 스타일로 했다.
내게는 꼭 그게 미국인이 한국말하다가 발음이 꼬이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토익 870점 맥스, 미국에서 역 어학연수 온 지나, 카투사 출신 에이스, 서울대 출신 영어강사 루니 등이
내 눈엔 영어 고수(?)로 보였지만 이 이외에도 학원에는 영어를 잘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시험 한 번으로 우열을 가리기는 건 말이 안 되지만 난 누가 제일 성적이 좋을지 꽤나 궁금했다.
내 눈에는 맥스가 가장 떨어져 보이긴 했다. 맥스는 벼락치기로 토익 점수만 올린 사람이다.
그러니 고수로 인정하긴 힘들지만 바꿔 생각해 보면 시험에 가장 특화된 인물이고 가장 최근까지 점수에
목메며 산 사람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번 시험의 결과가 무척 기다려졌다.
시험은 4가지 과목으로 총 4시간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1) 토익 형태의 문제 풀기
2) 영어 독해 시험
3) 영어 에세이 작성
4) 영어 인터뷰
시험 날이 되어 내가 맥스에게 사탕을 주면서 시험 잘 치라고 했더니
맥스가 피식 웃는다. “국가고시 치는 줄 알겠네.” 하면서...
나는 시험을 열심히 치렀다. 그런데 답을 쓸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듣기 시험은 음질이 좋지 않아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솔직히 윙윙거리는 소리로 밖에 안 들렸다)
독해 시험은 아는 단어가 너무 없었다.(지문을 읽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은 뭔가를 잘도
써내는 것 같았다.
나는 열심히 시험에 임했다.
에세이 작성은 레벨테스트 때 못썼던 나에 대한 소개를 썼다.
적어도 20줄은 썼으니 10배는 성장한 셈이다. 이걸 자랑이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기억에 남는 것은 마지막에 본 인터뷰 시험이었다. 인터뷰는 프랭크 선생과 로이라는 여선생이
담당하고 있었다. 둘 다 학원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선생들이다. 시험장은 1:8 강의실이었다.
막상 시험이다 생각하니 책상을 치워 놓은 1:8 강의실이 무척 넓어서 생소하게 느껴졌다.
면접관(interviewer)으로 변해 있는 프랭크는 평소와는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웃고 있어도 거리감이 많이 느껴졌고 왠지 건조해 보였다.
로이 선생은 수업을 하지 않고 행정 업무만 보는 학원에서 가장 오래된 선생 중 한 명이고,
내게 영어 이름을 지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내게 ‘신상 털기’ 식의 질문을 많이 했다.
프랭크는 내 과거와 미래에 대한 질문을 했다.
대부분 수업 때 많이 다루었던 주제들이지만 시험이라 생각하니 말이 잘 안 나왔다.
대화가 끝나자 그동안 경험한 필리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3분 스피치가 있었다.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어쨌든 나는 3분을 넘겼고 로이 선생이 손을 들어
시간이 초과됐다는 신호를 보냈다.
마지막 인터뷰 시험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곧바로 쓰러졌다.
꽤 긴장했던 것 같다. 손에 땀이 잡혀 있었고 피로가 몰려왔다.
저녁 식사까지 2시간 가까이의 시간이 남아 있었는데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기숙사의 복도도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다른 학생들도 나처럼 피곤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 맥스가 방문을 두드리지 않았다면 나는 그날 그대로 잠들어 버렸을 것이다.
금요일에 시험이 끝나고 주말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험에 대한 생각은 모두 사라졌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학원 전체의 분위기가 그랬다.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누군가는 연애를 하고, 또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반복되는 일상이 시작됐다.
모두가 시험에 대한 생각을 잊어가고 있을 즈음에 결과가 게시됐다.
상위 2명의 이름이 게시판에 공개됐고 성적표는 개인적으로 송부됐다.
내 성적은 형편없었지만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잘했다고 생각했던 인터뷰 점수가 생각보다 별로였다. 면접관들이 점수를 짜게 준 거였다.
두 사람이 평균으로 낸 점수이니 누가 어떻게 점수를 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의외였다.
아마도 횡설수설 쓸데없는 소리만 하고 질문자의 의도에 빗나간 답변을 해서 좋은 점수를 주지 않은 것
같았다. "어허~, 영어로 3분 이상 떠들었으면 됐지 뭘 그리 짜게들 보셨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봉투에 들어 있는 성적표를 흘깃 보고는 책상 서랍 속에 던져 넣었다.
아마도 중요한 물건이 아닌 것처럼 취급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서랍 속 [PADI-Open Water] 자격증 위를 성적표가 덮었다.
서랍을 닫는데 문득,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서랍 속에 쌓여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에 수업이 시작되자 맥스가 이런 말을 한다.
“형님들 공부를 소홀히 했더니 감이 많이 떨어졌어요, 앞으로 그만 놀고 공부 좀 해야겠어요.
쉽게 생각했는데 점수가 너무 안 나오네요”라고 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스캇이
“맥스야, 오늘 저녁에 왜 네가 점수가 안 나왔는지 우리 모두 맥주를 마시면서 심도 있게 토의해 보자”
이런다. 그 말을 듣고 모두 한 바탕 웃었다.
맥스는 아직 학생이다. DNA 속에 점수에 대한 부담감이 숨 쉬고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누군들 안 그렇겠는가?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도 아직 그러지 못하는데...
참, 이번 시험의 1등은 ‘에이스’, 2등은 ‘지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