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에 떠나는 필리핀(Cebu) 어학연수 이야기]
#23. 지금 할 수 있는 것..
학원 지하에는 아주 조잡한 수준의 헬스장이 있다. 원래는 지하 주차장 용도였는데 학원에
차가 없다 보니 빈 공간에 낡은 운동기구 몇 개와 탁구대를 갖다 놓고는 헬스장이라고 써
붙여놨다. 그런데 그 공간의 구석에는 합판으로 칸막이가 쳐진 도우미들의 숙소가 있다.
지하실 구석을 개조해서 방을 만든 것이다. 이 숙소에는 여자가 5명 남자가 2명이 산다.
나는 처음부터 학원의 도우미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게 잘 되지를 않았다.
그들은 복도나 식당에서 마주치면 옆으로 비켜서서 고개를 숙이고 학생들이 지나기를 기다린다.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여자들인데 부끄럼이 많은
건지 그렇게 훈련된 건지 하여튼 모두 그림자처럼 행동했다.
매주 화요일은 방청소를 하는 날이다.
오전에 수업을 다녀오면 방이 그림처럼 깨끗하게 변해 있다.
책상 위의 지저분한 메모지나 노트들까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침대 시트는 새것으로 교체되어
있으며 침대 밑까지 손걸레로 닦아서 척 봐도 매우 정성껏 청소가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솔직히 너무 깨끗해서 놀라울 정도였다.
혼자 살이를 오래 한 나로서는 이런 서비스가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자 이런 일들이 무덤덤해졌다.
익숙해지는 것은 참 무섭다.
하루는 알렉스가 내게 물어본다.
- 알렉스 : 형, 방청소할 때 팁 줘요?
- 나 : 아니 안 주는데?
- 알렉스 : 에이~~ 나이도 있으신 분이 왜 그러세요?
- 나 : 왜, 원래 주는 건가?
- 알렉스 : 원래 주는 건 아니지만 청소 끝나고 방 못 보셨어요?
장난 아니잖아요. 저는 청소 날 50페소씩 침대 위에 두고 나와요.
- 나 : 그래?....
나는 그런 생각은 못했었다. 그래서 그다음 주부터 매주 화요일 오전에 수업 갈 때는
50페소(약 1,200원) 지폐를 침대 위에 놓고 나왔다. 좀 더 일찍 그 생각을 못했던 것이
자못 미안했다.
내 방은 ‘마이마이’라는 도우미가 청소하고 있었다.
하루는 식당 입구에서 그녀를 마주쳐서 이렇게 물어봤다.
“Did you see on my bed?” 그랬더니,
환하게 웃으며 “Thanks you, Sir."라고 한다.
묻고 나니 괜히 머쓱했다. 겸연쩍게 그걸 왜 물었을까?
돌아서서 "야이 멍청한 놈!!"이라고 몇 번을 곱씹었다.
도우미들은 숙식이 제공되고, 한 달에 약 4000페소(=100,000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
우리에게 50페소는 별거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의미 있는 금액이다. 빵 한 개와 콜라
한 병을 살 수 있는 돈이며 현지 식당에서 가벼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돈이기도 하다.
하루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옥상에서 거리를 보고 있는데 마이마이가 선생들이 입는 듯한 깨끗한
유니폼을 입고 학원을 나가는 장면이 보였다. “어, 저거 뭐지?”하는데 빠른 걸음으로 골목길로
사라졌다. 어리둥절했다.
학원에는 “제니퍼”라는 마이마이의 여동생도 함께 도우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오후에 기회를 봐서 제니퍼에게 물어봤다.
- 나 : 마이마이, 아침에 어디 가는 거야?
- 제니퍼 : 언니 학교 가는 거예요. 언니는 UC(University of Cebu) 학생이에요.
하는 거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필리핀은 대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다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마이마이에 대한 궁금증이 몽글몽글 솟아났다.
그 주 토요일, 동네 구멍가게에서 과자와 음료수를 사들고 지하에 있는 도우미들의 숙소로 내려갔다.
제니퍼와 마이마이 외에 여직원 두 명과 고양이 한 마리가 함께 방에서 노닥거리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자 열린 방문으로 날 보고는 그녀들이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내가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보자 방이 작아서 자리가 없다며 문밖에 의자를 마련해 줬다.
마이마이는 구석 탁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UC(University of Cebu) 3학년이라고 했다.
2년이나 늦게 대학을 들어가서 학우들보다 나이가 많아서 졸업하고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다. 그런데 졸업 후 취직을 하게 되면 여기를 나가야 해서 사실 그게 더 큰 문제라는
말도 했다.
그녀는 학교 때문에 생기는 학원 일의 공백을 주말과 오전 또는 밤에 자투리 일을 많이 하는 걸로 대체하고
있었다. 평일에는 아침과 저녁 식사 준비를 돕고 주말에는 학생들의 빨래를 도맡아서 하며, 화요일에는
학교 수업이 없어서 방 청소도 한다고 했다. 화요일은 내 방 청소를 하는 날이다. 도우미들이 역할 분담을
해줘서 학교를 다닐 수 있다고도 했다.
학비는 어떻게 내냐고 물으니 학원 초창기 때부터 가까이 지냈던 원장 부인이 지원해 준다고 했다.
학원을 처음 시작할 때 도우미 2명이 학원의 모든 허드레 일을 다 했는데 마 아마이는 학원의 창립
멤버(?)로 지금까지 일한 것이다.
학원이 자리를 잡고 나자 마이마이를 좋게 봤던 원장 부인이 학교에 보내줬다고 했다.
학비는 원장 부인이 내 주지만 생활비나 책값 등은 본인이 벌어야 해서 학원에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방학이 되면 남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가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더 나은 일을 하게 될지는 알 수가 없다.
필리핀의 현실을 조금만 알아도 얼마나 비관적인지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마이마이는 밝고 명랑했다. 그녀는 미래가 밝아 보이지 않음에도 별로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았다.
왜냐고 물으니 그것은 미래의 걱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지금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할 뿐이라고, 뒷일은 신(GOD)의 영역이니
그건 그다음에 생각할 일이라고 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고 하자 마이마이가
“여기 학생이 오면 안 되는 곳이에요. 원장님이 아시면 큰일 나요.” 한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돌아섰다. 등 뒤에서 그녀들이 ‘까르르’ 웃었고 다.
소녀들의 발랄한 웃음소리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방으로 돌아와 보니 거의 한 시간은 있다 온 것 같았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현지인 대학생과 이야기를 해봤다. 수업과는 많이 달랐다.
교실에서의 뜬구름 잡는 주제나, 술집 아가씨들과 하는 쓸데없는 농담과도 달랐다.
마이마이는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고 내가 틀리게 말하는 것은 고쳐주기도 했다.
학생들이 학원을 나가 살기를 원하는 것이 꼭 유흥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하, 이런 느낌이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방에 와서 책상에 앉으니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왜 이렇게 걱정이 많을까?
왜 매일 똑같은 걱정을 하며 살고 있을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배워서 그럴까?
그렇게 생겨먹은 것일까?"
그날 밤 기타를 잡고 꽤 오랫동안 연습을 했다.
나는 영어공부 덕분에 10년 만에 기타를 잡고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을 연습하고 있다.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솔직히 따라 읽을 수도 없다. 그렇지만 열심히 하고 있다.
이 노래를 끝까지 부르기로 작심했으니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이 노래를 끝까지 부르는 일이다.
이 노래를 다 부를 수 있게 된 후 뭐가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다.
그건 신(GOD)의 영역이다.
지금은 내 영역이 아닌 남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은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뒷 일은 뒤에 생각하자,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이거,
'이놈의 노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