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이거 해 볼 걸"
[마흔 살에 떠나는 필리핀(Cebu) 어학연수 이야기]
#28. 제임스 티처
학원에 나이 종결자가 나타났다. 65세의 제임스 선생님이다.
입학식에 나타난 그는 본인을 소개할 때, "제임스, 제임스 김..."라고 소개했다.
007 영화의 ‘제임스 본드’를 흉내 낸 소개였다. 제임스 선생님은 현재 만 65세,
우리 나이로 예순여섯 살 된 어르신이다. 영어 공부가 하고 싶어 필리핀에 왔다고 한다.
입학식에서 유창하지는 않지만 또박또박(?)한 영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나이 탓인지 교직 생활을 오래 해서인지 사람들 앞에 서는데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제임스 선생님은 중학교 교감으로 정년퇴임을 했다고 한다. 퇴임 후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고
했지만 썩 마음에 드는 일이 없었는데 우연히 시작한 영어 공부에 재미를 붙여 지금은 필리핀에
어학연수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제임스 선생님이 본격적으로 학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학생들 사이에는 약간 곤란한 문제가 생겼다.
학원에서는 영어 이름을 쓴다. 영어에는 알다시피 존칭이 없다. 선생들은 자연스럽게 제임스(James)라고 이름을 불렀지만 어린 학생들은 할아버지 뻘인 교감 선생님을 "하이, 제임스"하고 부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프랭크 선생은 제임스 선생님을 ‘써, 제임스(Sir. James)’라고 불렀다. 프랭크는 센스가 있다.
학생들은 서양식으로 ‘제임스’라고 이름만 부르기도 그렇고, 영어 이름 뒤에 한국말로
‘제임스 선생님’이라 하기도 어색해했다. 하여튼 우리 정서로는 여러모로 곤란한 일이었다.
이런 불편한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상대를 본능적으로 피하게 된다.
굳이 이런 사람과 가까이 지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슬슬 피하는데도 불구하고 ‘제임스 선생님’은 학원 생활을 잘했다.
선생들과 회식도 자주 했고 어린 학생들과도 잘 지냈다.
1:4 넬리아 수업 때 내가 호칭 문제를 주제로 꺼냈다. 넬리아 선생에게 한국의 존칭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 했는데, 멤버들 4명이 모두 각양각색으로 예를 들어 설명했고 넬리아는 필리핀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며 재밌게 수업이 진행됐다. 수업 말미에 내가 다른 멤버들에게 물었다.
“Anyway, how can we call to James teacher?” (“그나저나, 우리 제임스 선생님 어떻게
호칭하냐?”)라고 하자, 넬리아가 “What?” 한다. 그러면서 “제임스 티쳐”는 틀린 말이
라고 한다. ‘teacher James’ 나 ‘Sir. James’라고 해야 한다고 고쳐준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우리말로는 ‘제임스 티처(선생님)’ 맞아요.” 그랬더니 옆에서 듣고 있던
스캇이 “앞으로 ‘제임스 티처’라고 부르면 되겠네!” 그런다. 그 말을 듣고 멤버들 모두가
“야, 좋다.” 하고 이구동성으로 소리를 쳤다. 넬리아 선생만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고 쀼루퉁한다.
그리고 큰소리로 말한다. “Teacher James!!!! is Right!!".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이럴 때 넬리아는 정말 귀엽다.
넬리아 선생은 막내 맥스보다도 네 살이나 어리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도 그녀를 무시하지 않는다.
우리는 수업이나 아닐 때나 항상 그녀에게 예의를 갖추고 그녀의 교육 방침을 잘 따른다.
존경까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그녀를 선생님으로서 존중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저녁 식사시간에 식당에서 제임스 선생님을 만났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앉아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식사가 끝날 즈음 “앞으로 선생님은 ‘제임스 티쳐’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써 제임스’ 보다는 났지 않죠?” 했더니, 웃으며 “그냥, ‘제임스’라고 불러도 돼” 한다.
나는 "그냥 '제임스 티처'라고 부를게요." 했다.
그 뒤 한국말로 이야기할 때는 ‘선생님’이라고 호칭했지만 3인칭으로 이야기하거나 영어로 이야기할 때는
나는 항상 ‘teacher James’가 아니라 ‘제임스 티처’라고 불렀다. 선생들은 문법에 맞지 않아 싫어했지만 나는 "제임스 티쳐"라는 말이 "제임스 본드" 만큼 멋있게 들렸다.
그는 나와 20년도 넘게 나이 차이가 난다.
나는 25년 후 그의 나이가 됐을 때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처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현실에 안주하면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시간이 흘러 그의 나이가 됐을 때 나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분명한 것은 내가 어떻게 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그때가 되었을 때 "그때 이거 해 볼 걸?" 하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거다.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을 때 해보지 않은 일을 후회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자유 정도는 누리며 살고 싶다.
적어도 지금 생각은 그렇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