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이야기, Since 2021 ###
[제주도 이야기, Since 2021] ### '글 쓰기 연습...
키보드에서 손을 놓은 지 꽤 됐다.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마우스만으로도 불편함이 없으니 키보드를 쳐다볼 이유가 없어졌다.
"글은 영감이 떠올라서 쓰는 것이 아니다.
쓰다 보면 영감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러니 매일 쓰는 게 중요하다."
많은 글쓰기 책에 나오는 공통적인 조언이다. 나도 몇 번 시도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솔직히 며칠 하지도 못 했다. 전업 작가가 아닌 사람이 이걸 실천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작가나 학자로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람이다. 나는 아니었다.
돈을 받고 글을 쓴 적이 몇 번 있었다.
돈 맛이 솔솔 해서 처음에는 자료도 찾고 관련 글도 챙겨보며 모든 시각을 글쓰기에
맞춰서 세상을 바라보곤 했다. 그런데 그건 금방 시들해졌다.
노동력에 비해서 얻는 것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렵게 마무리한 글이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비난을 받으면 그건 정말 힘들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면 글을 쓸 때 자기도 모르게 검열을 하게 된다.
내가 뭐라고 별거 아닌 글에도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키보드를 멀리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아니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정확히 콕 집을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야 그게 뭔지 알게 됐다.
제주도로 이사를 준비할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살림 정리를 위해서 헌책방에 책을 팔러 갔을 때였다.
나 : "이 책들 팔 수 있을까요?" (책은 약 30권쯤 됐다.)
점원: "제가 한 번 볼게요."
나 : "네"
점원: "죄송한데 이 책들은 저희가 살 수는 없을 거 같아요."
나 : "다시 가져가긴 어려운데 어떡하면 좋을까요?"
점원: "원하시면 저희가 처리해 드릴 수는 있어요."
나 : "네, 그럼 그렇게 해 주세요."
점원: "네~~."
대화가 끝나자 점원은 내가 보는 앞에서 책을 북북 찢기 시작했다.
"아니! 책을 왜, 찢어요?!"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 말은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책장을 구경하며 책 찢기가 끝나길 기다렸다.
책장에는 처음 보는 작가들의 찢기지 않은 많은 책이 살아남아 있었다.
검은 머리띠가 잘 어울리던 어린 점원은 30권 가까이 되는 책의 표지를
순식간에 찢고는 미소 지으며 내게 현금 2천 원을 줬다.
쓸만한 책이 한두 권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폐지 값이었을 수도 있다.
돈을 받아 서점을 나오는데 갑자기 배가 무척 고팠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배고픔이었다. 솔직히 그게 진짜 허기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속이 쓰리고 배가 고팠다. 나는 그 고통을 참을 수 없어 길 건너의 국밥집으로
냅다 달려갔다.
길 건너 탑골 공원 뒷쪽에는 송해 선생 얼굴이 그려져 있는 국밥집이 있다.
낙원상가 입구에 있는 이 국밥 집은 서울에서 2천 원으로 배를 불릴 수 있는
흔치 않은 식당 중 하나다. 허옇게 맛없어 보이는 깍두기가 의외로 맛있는 그
국밥집에는 2천 원짜리 우거지국밥을 판다. 메뉴는 딱 하나 우거지국밥 뿐이다.
나는 책 30권과 바꾼 돈 2천 원으로 허연 깍두기와 우거지국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며칠 뒤 제주도로 거처를 옮겼다.
숙소는 서울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나는 글을 거의 쓰지 못했다.
사실 글을 안 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예전에 인터넷에 썼던 글들을 지우기는 일을 했다.
인터넷 여기저기에 뿌려져 있던 내 글을 찾아 없애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디지털 세상이라 완전히 지울 수는 없겠지만 검색 잡히는 것들은 내 눈앞에서 없앨 수는 있었다.
글을 찾아 지우는 일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이유는 설명할 수는 없는데 묘한 쾌감이 일었다.
이렇게 글 지우기를 하면서 몇 가지 알게된 것이 있다.
첫째, 돈을 받고 쓴 글은 내 마음대로 지울 수가 없다.
일단 내 손에 돈이 들어온 글은 내 것이 아니었다.
소유권인지 저작권인지 모르겠지만 돈거래가 이루어진 글은 내 맘대로 지울 수가 없었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이 글들은 지금도 볼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둘째, 내 글 중에도 가끔 재밌는 글도 있다.
시간이 꽤 지난 글인데도 재밌는 글이 가끔 눈에 띄었다.
이런 글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시시덕거리며 기분이 좋아졌다.
"정녕 내가 이 글을 썼단 말입니까?" 따위 소리를 하며 혼자 웃곤 하는 것이다.
이런 이상한 일을 하다가 전에 없던 버릇이 하나 생겼는데, 그건 글을 수정하는 일이었다.
오래된 블로그나 카페 같은데서 글을 찾으면 일단 고칠 건 고치고, 첨가할 건 첨가하고,
맞춤법 교정까지 끝낸다. 그리고 마지막엔 글을 다 읽고 지웠다.
가끔 수정을 많이 하다 시간이 늦어지면 글을 못 지울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이 글은 다음에 지우자." 이러며 슬쩍 넘어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꽤 고민을 했지만 시원한 답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서울을 떠나기 전 헌책방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
"젠장,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었구나!"
평소 나의 내면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야 알게 됐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글은 좀 쓰잖아."
"남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게 뭔지 잘 캐치만 하면 글빨로 어떻게 안 되겠어?"
"사람들 입맛에 맞게 잘 엮으면 돈이 될지도 몰라."
"돈 받고 글 쓴 적도 몇 번 있잖아. 내겐 소질이 있다고!!"
겉으로는 아닌 척했지만 이런 생각이 무의식 속에 있었던 것 깉다.
그런데 눈앞에서 내가 좋아서 읽었던 책들이 갈가리 찢기는 걸 본 것이다.
아마도 그때 책을 찢는 소리가 내 무의식에 이런 말로 들렸던 것 같다.
"꿈 깨!!!,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한 줄 알아?"
그날 나는 글 써서 돈 버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지 싶다.
그때 생긴 실망과 허탈이 당시의 배고픔이 되었던 것 같고,
시간이 지나 '글 지우기'라는 과격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 생각한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일단 글 지우기를 멈췄다.
그리고 글에 관한 모든 걸 잊고 일상에 집중했다. 솔직히 생활이 많이 힘들었다.
객지를 꽤 떠돈 편인데도 제주도라는 지역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제주도에는 타지인들만이 느끼는 묘한 이질감이 있다.
제주살이를 포기하고 떠나는 사람들은 이걸 '텃새'라 불렀다.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텃새냐 하겠지만 여기는 표현하기 힘든 무엇이 분명히 있다.
금전적 문제와 더불어 사람 간의 문제는 삶을 극도로 지치게 만든다.
여하튼 한동안 먹고사는 일에 집중하며 생존에 치중하다 보니 글에 대한 생각은
잠시 묻혔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지나면서 생활이 조금씩 안정됐다.
여유가 생기자 버릇처럼 글쓰기 쪽으로 생각이 흘렀다.
"정말 나는 처음부터 돈벌이를 위해서 글을 썼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꽤 많은 글을 지웠지만 또한 많은 글을 남기기도 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썼던 글, 삶이 고난에 빠졌을 때 썼던 글,
행복할 때 썼던 글, 뭔가로부터 감동받았을 때 썼던 글,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썼던 이런 글들은 문장이 투박하고 표현이
촌스러워도 지울 수 없었다.
첫 문장만 봐도 언제 어떤 마음으로 쓴 글인지가 떠오르는 글을
지울만큼 미치지는 않았던 것이다.
글 지우는 것에 대한 쾌감도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시들해졌다.
글을 지울때 보다 차라리 수정할 때가 훨씬 기분이 좋고 재밌었던 것이다.
글은 고칠수록 과거의 흔적은 뚜렷해졌고 내용도 명료해졌다.
이런 것을 느끼기 시작하고 부터 글 지우기는 완전히 멈추고 '글수정'으로 태세를 전환했다.
오래된 블로그나 카페 같은 곳 이제는 거의 퇴화버린 사이트 같은 곳에 있던 글에 찾아가
읽고 수정하고 간단한 감상 댓글을 남기고 다시 덮었다.
좋게 말하면 뭔가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내 허탈을 메운 것이다.
이제 글쓰기를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글쓰기는 과거를 만드는 일이다.
나는 글로 과거를 만들고 미래를 준비 한다.
지금의 내가 예전에 내가 쓴 글을 보며 즐거워했던 것처럼
미래의 나도 지금 내가 쓴 글을 보며 분명 행복해 할 것이다."
이제 나는 '글 지우기'를 더이상 하지 않는다.
글을 지우면 안 되는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남겨 놓은 글을 훗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볼 수 있다면
그것 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편안한 소파에 앉아 내가 쓴 글이나 사진을 보면서
내가 이때는 어땠고, 그때는 그래서 매우 힘들었고, 그렇지만 행복했었고... 어쩌고
하면서 그 사람의 눈을 보며 설명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나는 지금 제주도에 살고 있다. 이곳에 얼마나 더 머물지 모른다.
미래의 내가 나의 제주살이를 쉽게 추억할 수 있도록 기록을 남길 생각이다.
미래의 나는 그 글을 보며,
제주의 겨울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봄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게 될 것이고,
여름의 바다는 얼마나 시원하며 가을의 한라산은 얼마나 화려한지를 기억해 낼 것이다.
내가 제주에서의 첫겨울을 얼마나 힘들게 보냈는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고,
그 덕에 봄을 얼마나 감동하며 맞았는지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글이 지워지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어 천만다행이다.
남길 것이 많은 삶은 아니지만 기억나는 것이 많은 삶을 살고 싶다.
그 일은 지금 내가 쓰는 글에 의해서 만들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어설프지만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아직 포기하지 않고 세상을 살고 있어 다행이다.
희망을 꺽지 않고 살고 있는 내 자신에게 감사한다.
모든 것에 감사한다.
(JJ220407, JJ22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