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이야기] 오토바이를 샀음.

살다 보면 되풀이되는 것이 있다.

by 벼랑끝

[제주도 이야기, Since 2021] ### 오토바이를 샀음.

(Hope is good thing.)


오토바이를 샀다... 정확히는 '스쿠터'.

오토바이를 마지막으로 탔던 것이 5년도 더 된 거 같은데,

핸들을 잡으니 어제 탔던 것 처럼 편하다.


살다 보면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다. 내겐 오토바이가 그런 존재다.

그렇다고 내게 오토바이에 대한 나쁜 기억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솔직히 좋은 기억이 더 많다.


오토바이 덕에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벼랑 끝까지 몰렸을 때 기사회생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처음 오토바이를 탄 건 군대를 전역하고 돌아왔을 때였다.

5개월 후에 복학을 해야 하는데 우리 집은 내 학비를 낼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일자리를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내가 살던 시골 동네에는 젊은이가 할만한 아르바이트가

거의 없었다. 집에서 빈둥대는 날이 길어지자 아버지가 동네 '가스 가게'에서

배달을 구하는 거 같으니 한 번 가보라고 했다.


다음날 나는 동네 이장을 겸하고 있던 가스가게 사장을 만나서 면접을 봤다.


사장: "차는 내가 쓰니까 자네는 오토바이로 배달하면 되네."

나 : "오토바이 타 본 적이 없습니다."

사장: "면허 있지?"

나 : "네"


사장: "자전거 타지?"

나 : "네"


사장: "그럼 됐어. 이게 클러치고, 이게 기어야. 한 바퀴 돌아봐."

나 : "네"


대화를 마치고 오토바이로 동네 한 바퀴를 돌고는 오후부터 가스 배달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 동네는 도로에 차가 별로 없었다. 학생들은 기차로 부산으로 통학을

했고 시외버스도 한 시간에 한 대가 있을까 말까 한 시절이었다. (나도 기차 통학을 했었다.)


도로에 차가 많지 않으니 오토바이를 배우기는 좋았다.

국도로 이름 붙여진 시멘트 도로가 논과 논 사이 마을을 연결하고 있어서 가스 배달을

하려면 오토바이 외에는 대안도 없었다. 나는 이 일로 복학할 학비를 벌었다.


이렇게 맺은 오토바이와의 인연은 10년쯤 지나 서울에서 다시 이어졌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나락으로 떨어져 헤매고 있을 때 누가 말했다.


"오토바이라도 한 번 타보지?"


며칠 후 나는 서울에서 10여 년 만에 다시 오토바이에 올랐다.

매일 200킬로 이상 메타를 찍었고 가장 많이 탄 날은 하루 380킬로를 찍은 날도

있었다. 이 날은 잊히지도 않는다. 새벽부터 아주 미친 듯이 엑셀을 감고 다녔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가 약 180킬로 안팎인걸 감안해 보면 125cc 오토바이로

서울 대전을 하루 동안 왕복한 거리였다. 서울 근교를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정도

거리를 오토바이로 찍는 건 당시로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승차감이 좋은 자동차로도

힘든 일을 돈이 된다는 생각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했었다.이렇게 죽기살기로 일한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가까스로 넘길 수 있었다.


필리핀으로 갈 결정을 하고 세부로 떠나기 전 오토바이로 전국일주를 했다.

한국에서 마지막일 것이라는 생각에 의미 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여행 중 급한 일이 생겨 중간에 돌아와야 했지만 꽤 긴 기간 동안 오토바이로

전국을 돌아다녔다.


여행을 끝내고 서울로 돌라와 5년간 날 지켜줬던 오토바이를 팔았다.

킬로수가 14만이 넘은 오토바이를 돈까지 받고 팔았으니 오토바이는 마지막까지 날

도와준 셈이다.


한국을 떠나 필리핀 세부로 이주했을 때도 나의 첫 차는 'Honda XRM125' 오토바이였다.

세부의 직장에서는 가이드들이 오토바이 타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품위 유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사실은 동료 중 한 명이 오토바이 사고를 크게 내서 내려진 조치였다.

오토바이는 위험하다. 그걸 누가 모르나? 하지만 대안이 없는데 어떡하나.


나는 세부에서 1년이 넘게 오토바이를 몰래 타고 다녔다. 당장 오토바이를 타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1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서울 생활을 시작했을 때, 오토바이에

대한 필요성을 그리 못 느꼈다. 서울에는 '따릉이'라는 아주 좋은 교통수단이 있었고 서울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외국에서 살다온 사람의 눈에는 정말 환상이었다.


서울에서 두 달쯤 지났을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는 이제 차나 오토바이가 필요 없겠다."


이렇게 편하게 서울 생활을 하다가 1년여 만에 제주도로 거처를 옮겼다.

처음 제주로 넘어왔을 때 제주시에도 '공공 자전거'가 있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뻤다.


서울에서 '따릉이'를 손발처럼 이용했던 나로서는 제주의 공공자전거도 무척 기대가 됐다.

그런데 제주시의 공공자전거는 내 예상과 많이 달랐다. 일단 눈에 잘 띄지가 않았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물으니, "제주도에 그런 게 있나?" 이런 반응이었다. 제주 사람들은 제주시에

공공자전거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도청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공공자전거의 사용법을 익히려고 찾아보니 너무 오래

전에 업데이트가 멈춰 있어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주민센터에 물었더니

담당자도 머뭇거리며 정확히 설명해 주지 못 했다. 내 눈에 뭔가 매우 곤란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그냥 물러서기가 아쉬워 도청과 시청의 공무원들과 몇 번 통화를 해 봤다. 그러고 나서

결론 내렸다.

"전시용이었구나. 우리나라가 다 서울 같지는 않았어..."


제주시의 공공자전거 이용이 어려운 걸 알고는 당근 마켓에서 자전거를 구입했다.

건강도 지키고 제주시의 길도 익힐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 같은 초보 자전거꾼이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타기에 제주시는 도로 여건이

안 좋았다. 일단 제주 도심에는 언덕이 너무 많았다.


서울에서 비교적 높은 지역에 살았음에도 나는 '따릉이'를 이용하는데 그리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제주시는 서울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도시 자체에 언덕이 너무 많았고 자전거 도로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몇 달을 자전거에 적응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제 내게 남은 대안은 하나밖에 없었다.

차는 살 돈이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분명해졌다.


오토바이는 한국인이 선택하는 마지막 교통수단이다.

가성비가 좋고 유지비가 적게 들기 때문이다.

아!! 물론 좋은 오토바이로 취미생활을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우스개 소리지만 마니아들이 타는 좋은 이륜차는 오토바이라 부르지 않는다.

'바이크'나 '할리'라 부른다. '바이크'나 '할리'는 오토바이와 모양은 비슷하지만

근본이 다른 이동수단이다.


※ 바이크: 모터바이크(Motorbike)의 한국형 애칭, 고속 주행이 가능한 경기용 형태의 이륜차.

※ 할리: 할리 데이비슨(Harley-Davidson), 아메리칸 스타일 이륜차의 대표 메이커.


내가 오토바이에 나쁜 감정이 없는 것은 오토바이 생활의 뒤끝이 좋았기 때문이다.

오토바이 덕에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고, 어려운 시절에 빚을 갚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마음이 허 할 때 돈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여행을 즐길 수 있었으며, 외국 생활도 겁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이런 오토바이를 내가 싫어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언제나 오토바이에 두려움을 느낀다. 자동차보다는 몇 배로 위험하기도 하지만

오토바이는 사람의 뿌리를 자극하는 묘한 중독적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핸들을 잡으면 속도계의 끝을 보고 싶은 그 누를 수 없는 욕망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겪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럴 때면 등골이 서늘하다.


제주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오토바이를 타게 될지 모르겠다.

짧을 수도 있고 긴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살다 보면 되풀이되는 과거가 있다.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이 되풀이되기도 하지만 좋았던 일도 되풀이된다.

오토바이는 좋은 방향으로 날 도왔던 물건이다.

어렵던 시절 날 건져올려줬던 것처럼 제주에서도 그런 일이 반복되기를 바란다.


오토바이를 팔 즈음에 이 글을 보면서,
"역시, 오토바이는 탁월한 선택이었어!"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앞서 나의 애마들을 보낼 때처럼 이번 오토바이도 제주에서의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 한다.



(JJ220513)





Hope is a good thing.

Maybe the best of things. and no good thing ever dies.

(by Shawshank Redemption,1994. Andy's Lines)


희망은 좋은 거예요.

아마 가장 좋은 것일 거예요. 그리고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쇼생크 탈출. 1994, 앤디의 대사 중)


쇼생크탈출1994 마지막 장면.jpg (쇼생크 탈출, 1994. 마지막 장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제주도 이야기] '섭지코지'를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