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이야기] 스치기만 해도 기억에 남는...

줄어드는 것은 줄어들지만 늘어나는 것은 늘어난다.

by 벼랑끝

[제주도 이야기, Since 2021] ### 스치기만 해도 기억에 남는...


길바닥에 시를 쓰는 친구가 있었다.
가로수 밑동에 철재 보호막이 없던 때 이야기다.
한 번은 그 친구(H)가 가로수 앞에 쭈그리고 앉아 뭔가를 쓰고 있기에 물었다.

"뭐 해?"
"글 써요."
"길바닥에 무슨 글을 써?"
"갑자기 시구가 떠올라서요."
"그거 금방 사라지잖아."
"사라지면 어때요, 그냥 생각날 때 써 보는 거죠."
"차라리 메모지를 가지고 다니지."
"있어요. 그런데 그거 꺼내는 동안 잊어버려서요...(웃음)"
"헐~~"

'H'는 정규 교육 과정을 마치지 않은 친구였다.
이유는 모른다. 중학교를 중퇴했다고 들었다.
보통은 이런 경우 검정을 치는데 이 친구는 검정도 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군대도 가지 못했다고 했다.
직장을 구하기 힘들었을 텐데 겉보기에는 먹고사는데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이 친구와는 체육관에서 알게 됐는데 나 보다 몇 살 아래여서 날 보면 깍듯이 인사를 했다.

오늘, 아주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이 친구가 갑자기 생각났다.
아마도 얼마 전 찍은 사진 때문이었을 것이다.

난 손재주가 없는 편이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없어서 손으로 하는 것 중에 잘하는 게 거의 없다.
어려서부터 글씨, 그림, 악기 등은 완전 젬병이었고 공작이나 요리도 손만 대면 문제가 생겼다.
특히 탁구, 테니스, 야구 같은 기구로 하는 운동은 남들이 한 시간이면 숙달하는 걸 10시간은
해야 비슷하게 하는 정도였다.

다행히 손으로 하는 것 중 제대로 하는 게 하나는 있는데 그건 '젓가락 질'이다.
난 젓가락으로 콩도 집을 수 있고 쌀알도 집을 수 있다. (이건 남들도 다 하던가??)

손재주 없는 게 집안 내력이면 모르겠는데 희한하게 우리 집안에서 나만 이렇다.
아버지는 손 감각이 좋아서 젊은 시절 저울 대신 손으로 계량을 할 정도였고,
필체가 좋아서 회사에서 봉투 쓰는 일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털실로 겨울옷을 많이 짰는데 이걸 짜면 가족이 입어보기도 전에 수제품
가게에서 앞다투어 사가곤 했다. 어릴 때는 내 옷은 물론이고 모시나 삼베로 할머니와
아버지 옷을 짓는 건 흔한 일이었다. 얼마 전까지 우리 집에는 어머니가 쓰던
'싱가 미싱(재봉틀)이' 있었다.

형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양반은 손재주로 내 인생을 바꾼 사람이다.
내가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사실 형 때문이다.
형은 그림을 잘 그렸다. 나를 옆에 앉혀놓고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장난처럼
쓱쓱 하면 그림이 됐다. 미술을 전공하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로
미대 문턱에서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결국 삼수 끝에 이과계열 학과를 갔고
이후 아버지와 형은 평생 좁아지지 않는 거리를 두고 살았다.

나는 형이 그리는 그림이 무척 좋았다. 예술적 가치가 있고 없고 가 아니라 손으로
무언가 자신의 창작물을 창조해내는 행위가 부러웠다. 나도 그런 창작물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항상 가지고 있었지만 뭐 하나 제대로 만들어내지를 못하니 형의 그림은 동경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이런 욕망들이 묻힐 즈음 서울에서 우연히 '사진전'을 보게 됐다.
전시회의 사진 구경을 하는데 뜬금없이 형이 그리던 그림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맞아! 그림은 손재주가 없어 못 하지만 사진은 그냥 셔터만 누르면 되잖아."
셔터 누르는 일은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게 아니니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부터 나는 카메라를 사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됐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물건은 구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무엇을 얼마나 희생하느냐 일뿐이다. 난 몇 달간 무진장 궁상을 떤 끝에
드디어 '펜탁스' 필름 카메라를 구입했다. 카메라를 처음 받던 날 얼마나 기쁘던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사진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셔터만 누른다고 사진이 되지는 않았다.
조리개나 셔터스피드를 아무리 외워서 찍어도 구도나 타이밍을 잡거나 빛을 보는
감각이 없으면 사진은 제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결국, 이것도 예술적 감각이나 손재주는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어야 했다.

인터넷에서는 많이 찍다 보면 된다고들 했지만 내게는 그 소리가 그저 잘 찍는 사람들이
하는 자기 자랑으로 들렸다.

게다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건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결과물이 좋았다면 돈이 들어도 어떻게든 계속했을 텐데 내 사진은 그렇지가 못했다.

이러다 보니 나는 포기의 이유를 찾아야 했다.
처음에는 배움이 부족한 탓을 하다가, 다음엔 시간 탓을 하다가, 다음은 장비 탓을 하다가
결국 재능이 없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내 카메라는 깊숙한 장롱 속 그늘로
사라져 갔다.

카메라 생활이 소홀해졌을 무렵 다니던 체육관에 야유회를 간다는 공지가 붙었다.
내게도 꼭 참석해 달라는 연락이 있어서 오랜만에 카메라를 꺼내 들고 양수리로 체육관
사람들과 야유회를 갔다.

내가 길바닥에 시를 쓰던 'H'를 기억하는 건 그때 찍은 사진 때문이다.
나는 이 야유회 때 사진을 많이 찍었다. 오랜만에 카메라를 꺼내서 셔터를 마구 눌렀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찍힌 사진 중에 묘한 사진이 한 장 나왔다.
관장이 투망을 강에 던지는 장면이었는데 역광이 들어 빛이 애매해지면서 사진이 멋지게 찍힌 것이다.
나는 사진을 액자에 넣어 체육관에 선물했고 관장은 그걸 사무실 벽에 걸었다.
누가 봐도 예쁜 사진이었다.

어느 날 체육관에서 'H'를 만났는데 이런 말을 했다.
"형님, 사진 좋던데요."
"멋있지? 나도 어떻게 찍었는지 몰라. 그냥 하다 보니 얻어걸렸어."
"원래 처음엔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죠 뭐."
"응? 사진에 대해서 잘 아나 보내."
"ㅎㅎㅎ"
'H'는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며칠 뒤 체육관을 갔더니 후배 한 명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형, 어제 난리 났었어요."
"왜?"
"형이 찍은 사진 있잖아요."
"그게 왜?"
"그것 때문에 H 하고 김 교수님하고 대판 했어요."
"잉?? 그게 뭔 소리야?"

"형, 김 교수님 미학 전공인 거 아시죠?"
"몰랐어, 근데 왜?"
"김 교수님이 운동 끝나고 차 마시다가 사진을 보면서
'사진은 저런 식으로 찍으면 안 돼.' 라고 비꼬는 투로 말을 하는 거예요."
"그래?"
"그때 옆에 있던 H가 뭔가 말을 했거든요.
근데 갑자기 김 교수 말이 많아지며 목소리가 커지더니...."
"관장님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김 교수는 40대 중반의 서울 모 대학의 강사였다.

"H가 사진에 조애가 깊나 보내?"
"형, 몰랐어요? 스튜디오 촬영 실장이에요."
"잉~~ 그래?"

그 뒤로 나는 딱 한 번 'H'와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내게 카메라 잡는 법과 촬영 자세 몇 가지를 가르쳐줬다.
그리고 본인은 지방으로 가게 될 거 같다며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나와 같은 날 양수리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 지금도 16년 전에 봤던 그 사진을 생생히 기억한다.
단풍이 가득한 나무 앞 벤치에 H가 고개는 옆으로 돌린 체 앉아 있는 사진이었다.
색감이 너무 좋았고 옆얼굴의 미소가 보일 듯 말듯한 멋진 사진이었다.

"이거 어떻게 찍었어?"
"그날 삼각대 가져가서 찍은 거죠."
"음~~, 사진 참 좋다."
"형님, 사진 잘 찍었다고 하지 않고, '좋다'라고 하시네요."
"응? 그랬나?"

"'잘 찍었다'라고 하면 찍은 사람에 대한 칭찬이지만,
'사진이 좋다' 하면 사진의 퀄리티가 높다는 뜻이잖아요.
찍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높여지는 거고."
"그런가? 그런 거 생각하고 말하나....(ㅎㅎㅎ)"

"그렇긴 하죠,
저는 스토리가 느껴지는 사진이 좋아요.
그래서 웨딩 촬영도 꼭 스토리를 짜서 찍거든요.
형님 사진은 이야기가 있는 거 같아서 좋았어요.
많은 사진 중에 그걸 골라낸 거니까 그건 형님의 이야기인 거죠."

"그런가? 난 그냥 쨍~ 한 사진 찍고 싶은데..."
"ㅎㅎㅎ... 쨍한 사진이야 누구나 찍고 싶죠.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하지만 그런 사진은 엽서나 달력에서 많이 볼 수 있잖아요.

저는 쨍하기만 한 사진은 추억이 되지 않는 거 같아서 별로예요.
핀이 좀 나가고 색감이 어색해도 스토리가 느껴지는 사진이 좋아요.
제목을 붙일 수 있는 뭐 그런 거 있잖아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제목을 붙일 수 있는 그런 사진요.
형님이 지난번에 찍은 사진 같은 거...."

"음~~ 그래?"

"그러니까 사진 쨍하게 안 나온다고 아쉬워하지 말고 자주 찍으러 다니세요.
그러고 형님 눈에 들어오는 사진을 고르면 되는 거죠.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찍지 말고 내 맘에 드는 사진을 찍으면 돼요.
취미생활이 원래 그런 거 아니에요?
살면서 취미생활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 좋잖아요"

"헐~~ 카메라 접으려고 했더니..."

"에이~~ 접긴 뭘 접어요 저희처럼 밥벌이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옆에 두고 생각날 때 한 번씩 찍어주세요.
여유되면 인화해서 앨범도 만드시고요.
그거 되게 좋아요. 내 손으로 만든 앨범은 나중에 큰 추억이 돼요.

같이 볼 사람이 있으면 더 좋고요."

"알았어."

이게 그와 나눈 사진에 관한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였다.
그 후 몇 번 더 마주친 적이 있지만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다.
16년도 더 전에 있었던 일이다.

지난달에 제주도에서 두 번째 여행을 떠났다.
당일치기로 간 것이니 여행이라기보다 나들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오토바이로 제주도 서쪽 해안도로를 타고 '신창리'라는 곳까지 가서
바닷가 해안에서 떨어지는 해를 보며 잠깐 시간을 보내고 왔다.
휴대폰으로 일몰을 찍고,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상에 파묻혀 며칠을 보내다가 쉬는 날 휴대폰을 열어 봤다.
제목을 붙이고 싶은 사진 몇 장이 보였다.

"생각보다 사진이 괜찮네.... 앨범을 한 번 만들어 볼까?"
생각을 하며 사진을 보다가 가로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H'가 떠올랐다.

살다 보면 스치기만 해도 평생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고 매일 봐도 돌아서면
잊히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내 기억에서 제발 사라져 줬으면 하는 사람도 있다.

'H'는 내게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다루면 되는지를 알려준 사람이다.
장롱 속에서 녹아버릴 카메라를 다시 꺼내게 해 줬고, 내게 취미생활은 무겁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줬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잊을 수 없는 인물이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의 숫자가 점점 줄어든다.

시간이 쌓일수록 휴대폰 주소록에 저장되는 이름은 늘어나는데,

가슴속에 남는 사람의 숫자는 줄어드는 것이다.

사는 게 원래 그런 거라며 자위하지만 기억 속 사람이 줄어드는 건 우울한 일이다.


이번 주말에는 '신창리'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며 취미생활을 좀 해야겠다.
줄어드는 것은 줄어드는 것이지만 사진과 함께 늘어나는 것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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