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 화면을 보고 있다고 같은 장면을 보는 것은 아니다.
<<혐오의 시작 점>>
"쯧쯧, 꿈은 구체적으로 가져야죠. 차를 산다든가, 집을 산다든가..."
"........?"
(사례 6)
"야! 너 이거 알아? 인간은 달에 안 갔데, 그거 다 사기래?
달에서 찍은 사진 하고, 영상하고 다 할리우드에서 만든 거래, 골 때리지 않냐?"
"야! 너 지구가 평평하다는 거 알고 있었냐? 유튜브에 영상 엄청 많아. 진짠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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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것은 이런 말을 농담으로 하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한다는 거다.
덕분에 '혐오'에서 벗어나 보려고 했던 나의 노력은 큰 난관에 부딪혔다.
혐오의 시작점은 많은 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혐오가 절망이 된 순간>>
폭우로 멀쩡한 가족이 자기 집에서 자다가 세상을 떠났다.
원인은 '폭우'라는 자연 재해지만 선진국 한국의 최고 큰 도시의 중심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이건 '인재'다.
누가 봐도 자국민 보호에 소홀했던 행정부와 안전을 등한시한 지자체의 책임이다.
그런데 그 수장이라는 것들은 현장에 나타나 사진 찍어 홍보할 생각을 한다.
여기서 핵심은 그 인간(들)이 아직도 지가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는데 있다. (역겹다.)
몇 달 뒤 멀쩡한 젊은이 수백 명이 갑자기 길에서 넘어져 사망했다.
그곳은 그 전 해에도 똑같은 행사를 하던 곳이고, 그 이전에도 항상 그런 정도의 사람이 몰리던 곳이다.
그 현장에도 지난번 폭우 때 사진 찍던 놈들이 또 나타나 똑같은 짓을 한다.
사람들을 벽 쪽에 붙여놓고 심각한 척 표정을 지으며 사진과 홍보 영상을 찍고는 이딴 소릴 씨부린다.
"여기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단 말이오?"
언론은 이걸 받아서 잘한다고 자랑질이다.
경찰 담당자는 당일 이미 끝난 평화시위를 소요사태로 규정하고 그로 인한 인력 부족으로
안전 확보를 할 수 없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난 잘못한 거 없고, 전부 니들 책임이야."
이걸 맞다고 두둔하는 지식인들이 방송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행정부 수장이 공개 석상에서 타국의 정상을 욕하고, 사적 이유로 국고를 낭비하고,
죄 없는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 파멸로 보내고, 국격을 낮춰 국민의 자존감을 하락시켜도
언론은 조용하고 보수 지식인이라는 것들은 입을 닫고 있다.
현 정부를 지지했던 인간들은 고개를 슬며시 돌리고 모르는 척하며 딴 소리만 한다.
세월호 때 봤던 그 몰염치한 짓들을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애도기간 운운하며
진실 규명에 대해서 입을 열면 파렴치한 인간으로 몰고 간다. (토가 나온다.)
이번 정부는 내게 혐오의 대상이긴 했지만 절망의 대상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절망에 빠져 있다.
내 절망의 시작점은 정부나 언론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절망하는 이유는 이런 큰일이 생겨도 국민의 절반 이상이 그리고 내 주위의
90%의 사람이 위에 예를 든 "사례 1~6"과 이유를 대며 현 정부를 두둔한다는데 있다.
전 정부를 탓하고, 희생자를 탓하고, 운명을 탓한다. 그리고 이 말을 꼭 덧붙인다.
"누가 해도 똑같다. 다 나쁜 놈들이다."
여기 따라붙는 것이 있다.
"걔들 유가족이 돈을 받는데.... 지들이 잘못해서 길바닥에서 죽어도 돈을 받네,
대한민국 참 좋은 나라야!" (또라이 새끼들)
<<절망 속에서>>
'혐오'에 빠졌을 때 가장 큰 문제는 강한 선입견이 생기는 데 있다.
인간은 선입견을 가지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아니 아예 없어진다.
선입견은 사고 체계를 붕괴시켜 확증편향과 반지성의 늪으로 사람을 몰고 간다.
(※확증편향: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 ※반지성: 적극적으로 진실을 알기 거부하는 행태)
결국 선입견을 심는 것만큼 쉬운 정치는 없고, 언론만큼 쉽게 선입견을 만들 수 있는 도구는 없다.
지금 대한민국의 기득권은 혐오를 이용해 선입견을 심는 작업에 완벽히 성공했다.
반성을 모르는 언론은 이 장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니 결국 이 혐오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끝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사적으로 있기나 했을까?
진보 쪽의 어떤 지식인이 그래도 "군사 정권 때보다는 낫다."며 희망을 이야기하던데,
난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방송이나 신문이 제대로 안 알려주니까 관심 없는 사람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니 학교 다닐 대 그렇게 데모를 마이 했나?"
"나야 멋도 모르고 그냥 따라만 다닌 거죠. 뭐."
"음~~, 너거 아버지는 만날 텔레비에 나오는 말만 믿는다고 하더만,
테레비에서 저런 말 나오는 거 한 번도 못 본 거 같다."
"텔레비에서는 저런 말 안 해요. 같은 편이니까?"
"그럼 지금도 똑같이 거 가?" (지금도 똑같은 거냐?)
"지금도 거의 비슷해요. 그러니까 눈 똑바로 뜨고 살아야 돼요."
"그런데 왜 배웠다는 사람들이 저런 나쁜 짓을 하노?"
"권력이 되고 돈이 되니까요."
"음~~, 그러니까 돈 되니까 나쁜 짓을 그냥 하는 거네."
"네"
"그럼, 동네 할마이(할머니)들은 와 돈도 안 되는데 전부 그라노?
그것들은 내 보다 더 마이 배아서 아는 것도 많은데 와 이런 거 하나도 모르노?"
(그것들은 나보다 더 많이 배워서 아는 것도 많은데 왜 이런 거 하나도 모르냐?)
"........."
나는 마지막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보통 사람들은 아무리 큰일이 생겨도 그걸 모른다는 거다.
우리는 내가 아니까 남들도 알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투표권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투표 대상자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나는 민주주의에 절망하고, 시민에게 절망한다.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가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그들은 특히 이런 일은 적극적으로 알기를 회피한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살게끔 조정당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난 현시점 희망을 찾지 못하겠다. 계속 조정당하고
있는데도 조정당하는 쪽에서는 그걸 인식하지 못한다.
어쩌다 한 번 하는 승리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이미 경험했다.
지역 논리와 진영논리의 선입견에 빠져있는 사람은 사실상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걸
이제 인정해야 한다. 지난 몇 번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확인하지 않았는가.
말도 안 되는 사건이 연이어 터져도 수많은 사람들이 더러운 정부에 대한 지지를 꺽지
않는 것은 한국에는 이미 "정의와 합리적 이성"을 외면한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결론 내렸다. 이런 현상은 젊은 세대에 더 심각하다. 그래서 나는
더 절망한다.
물론, 나의 절망 역시 확증편향에 빠진 과잉된 감정일 수 있지만 내 주변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의 절망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매일 이런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살다
보면 세상이 다 그럴 것이라는 감정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나는 조선의 임금이었던 태종 이방원이 다시 나타나기를 꿈꾼다.
그 정도 인물이 나타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근본적인 변화가 어렵다고 본다.
현실에서 그런 인물을 기대할 수 없기에 나는 절망으로부터의 탈출을 포기했다.
아쉽지만 현재 상태는 그렇다.
이렇게 허탈하게 글을 끝내고 싶지 않은데 지금은 도저히 희망을 이끌어낼 만한 것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넋두리로 글을 마친다.
젠장~~.
절망에도 끝이 있으면 좋겠다.
어제 이렇게 글을 끝냈었다.
그리고 오늘 밤 글을 게시하려는데... 잉??
이걸 보게 됐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77803
눈물이 나려 했다. 아니 눈물이 났다.
"젠장~~~ 이거 뭐야? 아직 희망이 있잖아!!"
"고맙다. 이것들아..."
다행이다.
니들 때문에 조금은 더 내일을 꿈꿀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