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선생님, 평안하시죠?"
삶은 질문들로 넘쳐난다.
어리석은 사람에게 삶은 해답으로 넘쳐 난다.
영리한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고,
보통 사람은 경험을 통해서 배우고,
어리석은 사람은 이미 모든 답을 가지고 있다.
(소크라테스)
어젯밤 3시간 정도 전화 통화를 했다.
꽤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이었다.
평소에는 대화를 하다 말이 꼬이면 화제를 바꾸거나 그냥 참고 넘어가는데
어제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말의 연속이었다.(정치적 문제는 아님)
결국, 내 쪽에서 폭발(?) 했고 내 나름의 논리로 대응을 했다.
그는 나의 말을 수긍하지 못하고 이상한 논리로 반박했다.
"원래, 다들 그러고 살아요."로 시작하는 현실 합리화를 말한다.
팽팽한 평행선의 대화를 두 시간이 넘게 이어갔고 목청도 꽤 높였다.
새벽 2시가 넘어 전화를 끊고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정치적인 견해 차이였다면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대화는 살아가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했던 핵심 질문은 "네가 생각하는 '은퇴'가 뭐냐?"였고,
그 친구의 대답은 "위선 떨지 마라."는 거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친구가 술이 취했던 게 아니었던가 싶다.
심한 말을 슬슬 비꼬는 투로 했기 때문이다.
평소 매너가 좋은 친구였기에 난 어제의 그 상황에 적잖게 놀랐다.
'대화'와 '잡담'의 차이는 주제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대화'는 때로 '말싸움(논쟁, 論爭)'이 되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일관된 주제로 이야기하다 보면 자신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될 때도 있고,
미처 생각 못했던 부분을 인식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대화'는 사람을 진지하게 만들어 '지적 유희'를 경험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나는 잡담을 좋아하지만 잡담 중에 대화가 끼어들면 지루함이 사라져 기분이 좋아진다.
이래서 사람과의 만남에는 푸념과 함께 진지한 대화도 꼭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살다보면 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세상을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렇다 보니 이들은 타인의 삶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충고한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이들과 대화를 하고 나면 온몸이 무력감으로 가득 차서 힘이 빠진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에는 '대화법'으로 사람들을 교화하던
'소크라테스' 선생님의 말이 무척 깊이 와닿았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평안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