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실수로 글을 발행한 적이 있다.
이동 중에 휴대폰으로 편집하다가 나도 모르게 발행을 눌렀던 것이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다행히 조회수가 '빵(0)'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회수는 모르겠지만 좋아요가 4~5개나 달려 있었다.
글을 지우는 와중에도 쓰다만 글에 달린 '좋아요'를 보며,
"'좋아요'는 누가 눌렀을까?" 아니 그것보다 "왜 눌렀을까?"
이런 생각을 잠깐 동안 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깜짝 놀라 글을 지운 이유는 이 글이 완성된 글이 아니어서이기도
했지만 다룬 콘텐츠가 브런치에는 어울리지 않는 장르였기 때문이었다.
글쓰기를 좋아하다 보니 가끔 공개하지 못하는 글을 쓰곤 한다.
아무 생각 없이 타이핑을 하다 보면 가끔(사실은 자주) 게시할 수 없는 글이 만들어진다.
이런 글은 성인 콘텐츠에 관한 글이거나 사적인 내용일 때가 많다.
이번에 지운 글도 성인 콘텐츠 게시판에 올려볼까 해서 쓴 칼럼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 발행 취소된 글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어렵게 글을 찾아 다시 읽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글을 올린 게 이렇게 놀라고 당황할 일이었나?"
"과연 내가 그렇게 까지 놀란 것이 글이 완성되지 않아서였을까?"
솔직히 그건 스스로를 속임으로써 맘 편해지려는 이중적인 행동이었다.
사실은 글을 발행하면 듣게 될지도 모를 이런 말이 두려웠던 것이다.
"저 자식 변태 아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런 글을 쓰다니."
"저 녀석 고상한 척은 혼자 하더니 뒤에서 이런 거나 보고 다니는 놈이었군."
"어쩐지 하는 행동이 변태스럽다 했어."
나는 한국을 '유교 탈레반' 국가라 부른다.
이 단어는 '팟캐스트-이이제이'를 성공시키고 지금은 유튜버가 된 '이작가'가 만든 말이다.
"유교 탈레반"은 엄숙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대한민국 사회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아주 멋진 단어이다.
종교 국가를 제외하면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허용되고 있는 성인 콘텐츠를 막고 있는
한국을 '탈레반'이 지배하는 종교 국가와 비슷하다는 의미로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나도 이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다 보니 성인 콘텐츠에 대한 생각을 글이나 대화로 풀어내 본
적이 없다. 고작 단편 소설을 흉내 낸 글이나 몇 편 써 본 정도이다.
내가 썼다 취소한 이 글은 수년 전 필리핀 거리에서 마주친 사진을 보고 쓴 글이었다.
내겐 꽤 기억에 남는 반가운 사진이어서 꼭 그 느낌을 남기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이 마무리가 잘 되지 않았다.
게시 못할 글이니 굳이 완성할 필요가 없다는 무의식이 작동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글을 취소시킨 며칠 뒤 자주 가는 게시판에 평소처럼 접속을 했는데 그날따라 프로필 하나가
확 꽂히듯이 눈에 들어왔다. 이전에도 그 프로필을 볼 때면 가슴이 많이 아렸는데 그날은
지운 글 때문인지 왠지 더 가슴에 와닿았다.
그 회원은 본인의 프로필란에 어떤 시인의 사진과 시를 올려놓고 있는데 그 시는 이거다.
- 한국에 살기 -
한국에 살기는 너무나 힘들어
뭘 해도 안 되고 뭘 안 해도 안돼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어
그저 눈치 보며 살아야, 기회주의자가 돼야
근근이 목숨을 보존해
변신을 잘해야 변절도 잘해야
근근이 버텨갈 수 있어
너무 앞서가서도 안 되고
너무 뒤서가도 안돼
너무 섹시해도 안 되고
너무 안 섹시해도 안돼
너무 튀어도 안 되고
너무 안 튀어도 안 돼
한국에서 살기는 너무나 힘들어
(마광수 作)
이 시를 읽고 '마광수 교수 구속 사건'에 대한 일을 다시 검색해 봤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냥 올리자 내 글이 뭐 대단하다고..."
"오버도 정도껏 해야지..... "
덧) 글은 곧 손봐서 올릴 예정이다.
마광수 교수, 1992년 10월 29일 소설 "즐거운 사라"를 썼다는 이유로 검찰에 긴급 체포 됨. (딴지 회원 프로필 사진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