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는 써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싸구려는 써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내가 살던 곳(물금읍)에는 지금도 5일 장이라는 게 열린다.
이제 도시화가 많이 되어 예전만 못하지만,
아직도 장날과 장날이 아닌 날의 시장통은 그 분위기가 다르다.
예전 학교 다닐 때는 우리 집 바로 밑에 장이 열렸다.
밑이라 표현하는 것은 내가 살던 집이 산등성이 양계장 터였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면 산굽이를 좀 내려가야 장이 서는 큰 길이 나왔다.
도시에 살다 시골로 들어간 나는 시골 장터가 신기해서 자주 구경을 다녔다.
특히, 내 눈에 신기해 보였던 것은 잡동사니를 팔고 있는 노점상이었다.
오래된 구형 지포(Zippo) 라이터와 라이터 기름, 여인들이 쓰는 대나무 참 빚,
가짜스러운 벌꿀, 낫, 삼지창 같은 농기구, 박상(강냉이의 경상도 말)이라 불리는 뻥튀기,
할아버지 등 긁게 효자손, 철사로 된 쥐덫, 각종 소쿠리와 빨랫방망이,
성분 모를 개미, 바퀴벌레, 모기 등 해충 퇴치제, 라벨이 없는 무좀약 및 만병통치약(?),
이상하게 생긴 반짇고리, 모기향을 안전하게 하는 안전망 등등..
장터 노점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물건을 팔았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희한한 물건들이었다.
내가 가끔 이런 물건 중 하나를 사 오면,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야야! 그딴 거 사지 말라 카이... 싼기 비지 떡이다."
(아들아! 그런 거 사지 말라니까, 싼 건 비지떡이야!!)
그래도 나는 가끔 장터 물건을 사곤 했다.
그 물건들은 대부분 가격이 매우 쌌다.
게다가 그걸 파는 사람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여서 물건 구경을 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그냥 돌아서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잡동사니들을 하나둘 사다 보면
싸구려 중에도 가끔 쓸만한 물건을 만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장터 물건은
아무리 좋아도 세월이 조금만 지나면 금방 못쓰게 된다.
역시, 싸구려는 써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장터의 싸구려 물건을 떠올리다가 "과연 '싸구려'의 반대말은 뭘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언뜻 떠오르는 말로 "명품"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명품"이라는 단어를 일상에서 많이 쓰기 시작했다.
내가 어릴 때는 잘 쓰지 않던 단어다.
나는 사람들이 이 단어를 대화에 쓰는 걸 처음 들었을 때 좀 갸웃했었다.
"명품"이라 하면 쉽게 보기 힘든 귀하고 좋은 물건을 뜻하는 거 아닌가?
"명품"은 그 성능이나 내구성이 탁월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싸구려"처럼
쉬이 망가지거나 변색되면 안 된다. 진짜 명품은 그래야 한다.
그런데 요즘 내가 본 몇몇 "명품"이라 불리는 물건은 싸구려 모조품에
포장만 그럴듯하게 씌워 놓은 것이 많았던 것 같다.
쉽게 말해 "명품"이라 불리지만 딱 봐도 비지떡인 게 많았다는 이야기다.
나는 포장지나 화장술로 "명품"의 지위를 얻는 것은 일종의 사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껍데기를 만드는 기술이 좋아져서 명품인 척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이런 물건들은 시간이 지나면 장터 노점상의 물건처럼 싸구려인 게 탄로가 나는데
외모를 화장으로 잘 감추어서 사람들이 오랫동안 속는 일이 생긴다.
일부 정의로운 전문가들이 본질을 파악해서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하지만,
"명품"의 포장지와 교활한 화장술에 빠지면 사람들은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까지 악다구니를 쓰면서 대들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겉으로는 순수한 척
하지만 사실은 그 물건의 판매와 이권에 연결됐거나, 명품 주변 사람들에게 포섭됐을
가능성이 크다.
가짜 명품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죽을 때까지 싸구려의 본색을 감추며 산다.
여기서 말하는 "특별한 일"이란 가끔 곤충들이 명품들의 포장을 뜯어먹어 버리는 경우를 말한다.
흔치 않은 일이지만 이런 일이 생기면 명품은 허울이 벗겨진다.
아쉬운 것은 인간을 돕는 이런 곤충이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곤충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스스로 명품의 본색을 알아내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 큰 문제점 중 하나다.
참고로, 가짜 명품의 포장을 뜯어먹어 본체를 드러나게 하는 곤충 중에 유명한 것으로
"사면발이"가 있다. "사면발이(사면발니, 프티루스 푸비스(Phthirus pubis)"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곤충의 일종이다.
군대에서 "사면발이(사면발니)"라는 생물이 있다는 걸 처음 듣고 매우 놀랐었는데,
현실에서 "직접" 보니 참으로 신기했다. 이런 곤충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인간의 피를 빨아 생존을 유지하는데 주로 음모(陰毛)에 기생한다.
인간의 다른 부위의 털이나 다른 동물의 털에는 기생이 어렵다고 하니 참으로 해괴한 곤충이다.
이 곤충이 인간의 음모(陰毛)에 기생하듯 싸구려 가짜 명품에도 기생한다고 하니
일견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앞으로 명품을 구분할 때
'사면 발의(赦免 發議)'를 풀어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싸구려 가짜 명품 따위를 찾기 위해 이렇게 징그러운 방법까지 써야 할까?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끝으로 명품과 싸구려를 구분하는 쉬운 방법을 한 가지 추천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명품"이라 불리는 것의 과거 이력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것만 확인해도 큰 실수는 면할 수 있다.
이것 만큼 쉽고 확실한 방법은 없다.
또, 한 가지 방법은 겉치레에 속아서 생기는 "확증편향"을 없애는 것이다.
"확증편향"에 빠지지만 않아도 우리가 사기를 당할 위험은 크게 줄어든다.
보이는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이야말로 "명품" 광신도로
변하는 가장 쉬운 길이다.
우리가 싸구려를 골라내는 눈을 키워야 가짜 "명품"은 사라진다.
그러니 매사 눈을 크게 뜨고 싸구려를 구분해 내는 버릇을 들여야겠다.
언제까지나 당하고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곤충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두 번이다.
"싸구려는 써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라고 하지만, 안 써 보고도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현명함이 많은 이들에게 좀 생겼으면 좋겠음. 너무 피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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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1) "직접 봤다"는 것은 미디어를 통해서 봤다는 것임,
실제 사면발이는 본 적이 없으고 사진으로만 봤음;;. ^^;;
2) "인간 '음모(陰毛)'에 기생한다는 '사면발이'가 포장을 어떻게 뜯어먹냐?"는 논리 모순은 지적하지 말 것. 2021년 정초에 한국에 비슷한 일이 있었음. (오타와 한자는 괜히 있는 게 아님)
3) "확증편향(確證偏向)" 이 단어의 한국어 대체어를 찾다가 드디어 "콩깍지가 씐다."라는
좋은 말을 발견했음. "아! 참 좋은 말이야!!"라고 생각했는데, "콩깍지"를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이 말을 쓰는 건 당분가 유보하기로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