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어학연수 최적의 시기는...(2부)

"그렇다고 돌아갈 수는 없잖아."

by 벼랑끝

#10 어학연수 최적의 시기는... (2부)


금요일 오전이었다.

학원 로비에 나이가 감이 안 잡히는 단발머리 여학생이 얼쩡거리는 걸 봤다.

다른 여학생들처럼 짧은 반바지 차림이 아닌 긴 바지의 체육복을 입은 낯선 얼굴의 아가씨였다.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왠지 어학원 학생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뭐지?”하며 방으로 올라갔는데, 그날 저녁 입학식 때 그 학생이 나타났다.

열아홉 살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소개를 하고 이름은 ‘레이나’라고 했다.


“어째, 옷차림이 세련되지 못하더라니” 하는 생각과 함께 궁금증도 생겼다.

“고 3이 어떻게 여길 왔지?”


나는 학원에서 나이 든 학생 몇 외에는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없다.

사교성에 문제가 있기도 하거니와 젊은 학생들과는 어색해서 본능적으로 피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특히 여학생들 하고는 대화할 생각도 하지 않았고 궁금한 점도 없었다.

그런데 왠지 레이나에게는 호기심이 많이 생겼다.


55992479.jpg


일요일 아침식사 때 알렉스, 레이와 함께 아침밥을 먹는데 레이나가 식당에 들어왔다.


-나 : (작은 목소리로) 레이나는 여기 어떻게 왔을까?

-알렉스 : 직접 물어봐요. 뭐가 그리 궁금한데?


하더니 알렉스가 옆 테이블에 있던 ‘레이나’ 자리로 가더니 레이나를 데리고 왔다.

알렉스는 아무 하고나 참 잘 지낸다.

거기서 학원의 아저씨 세 명(나, 레이, 알렉스)의 레이나 취조가 시작됐다.


-아저씨들 : 나이?

-레이나 : 19세요. 곧 20세 돼요.

-아저씨들 : 직업?

-레이나 :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학생인데요? 고 3이에요.

-아저씨들 : 주소...

-레이나 : 네?????

-아저씨들 : 그건 됐고....ㅋㅋㅋㅋ

-레이나 : ㅎㅎㅎㅎ


-아저씨들 : 고 3이 학교에 안 있고 왜 여기 있어? 학교 잘렸냐?

-레이나 : ㅎㅎㅎ, 저 수능 끝났어요.

학교에 공부하러 간다고 하고 왔어요.

-아저씨들 : 너 대학 안 가냐?

-레이나 : 당연 가야죠.

-아저씨들 : 너 공부 잘해?

-레이나 : 못해요.

-아저씨들 : 그럼 너 고등학교 졸업 안 할 거니?

-레이나 : 해야죠. 근데 졸업식을 갈지는 모르겠어요.

-아저씨들 : 여기 얼마나 있을 건데?

-레이나 : 원래는 2개월 정도 있으려고 했는데 졸업식 빠지고

대학 입학식에 맞춰서 가려고 생각 중이에요.


-아저씨들 : 근데 어떻게 여기 올 생각을 했니?

-레이나 : 제가 아빠한테 보내 달라고 했어요.

-아저씨들 : 왜?

-레이나 : 수능 끝나고 방학 동안에 집에 있어 봐야 할 일도 없잖아요.

제가 아빠한테 보내 달라고 졸랐어요.

-아저씨들 : 근데 아빠가 보내주셨어?

-레이나 : 원래 아빠가 필리핀 쪽에 회사일로 자주 오세요. 제가 어학연수

하고 싶다고 하니까 겨울 방학 동안 집에서 노느니 가는 게 낫겠다면서 보내주셨어요.


55084435.JPG


-아저씨들 : 너 영어 잘해?

-레이나 : 점수는 잘 안 나오는데 영어 공부는 좋아해요.

-아저씨들 : 고등학교 졸업식 참가 못하면 섭섭하지 않겠니?

-레이나 : 졸업식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대학은 합격할 거 같으니까 대학교 수업 시작할 때 가야죠.

-아저씨들 : 알았어. 공부 열심히 해라...

-레이나 : 네~~~ ㅎㅎㅎ


레이나를 보내고 아저씨 세 명이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알렉스 : 왜 나는 저 나이 때 저런 생각 못했을까?

-나 : 무슨 생각?

-알렉스 : 외국 나가서 공부할 생각.

-나 : 일찍 나온다고 좋은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알렉스 : 형은 레이나가 일찍 나온 거 같아 보여?

-나 : 글쎄, 생각 안 해 봤는데.

-알렉스 : 내 보기에 가장 적절할 때 나온 거 같아.

-나 : 왜?

-알렉스 : 형은 영어 공부할 때 뭐가 제일 아쉬워?

-나 : 나야 모든 게 다 아쉽지.

-알렉스 : 나는 단어야. 발음이야 뭐 지금은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그런데 단어는 하면 될 거 같은데 잘 안된단 말이야.

형은 우리나라 고 3들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하는지 모를 거야.

-나 : 알지, 자살할 정도로 많이 하잖아.

-알렉스 : 맞아, 우리나라 고3들 영어단어 몇 개나 외울 거 같아?

-나 : 글쎄?

-알렉스 : 아마 고 3이면 기본 암기 단어가 5천 개는 넘을 걸?

형, 우리가 일상 회화에서 단어 몇 개나 쓸 것 같아?

-나 : 몰라. 몇 천 개 되나?

-알렉스 : 한 500개 정도면 일상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데.

다 그거 가지고 돌려쓰는 거야. 그런데 글 쓰고 디테일한

표현하려면 2~3천 개 정도는 알아야겠지.

그런데 5000개 단어가 머리에 있다고 생각해봐.

그럼 영어 끝나는 거지, 한국 고 3들은 이미 영어 끝나 있는 거야.

물론 포기한 애들이야 모르겠지만.

-나 : 포기했다고 해도 최소 단어 1~2천 개는 남아 있다는 거네?

-알렉스 :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보다 훨씬 나은 거지.

그럴 때 회화로 확 밀면 귀 뚫리고, 입 터지고 금방 될 텐데,

우리는 왜 고 3 때 저런 생각 못했을까?


-나 : 우리 고 3 때 이런 어학연수가 있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알렉스 : 대학 들어가기 전에 좋잖아. 한 3~4개월 바짝 하면 적어도 영어가 뭔지

충분히 맥은 잡을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쟤들은 문법도 다 끝나 있다고.

기초 공사가 끝난 거라고.... 진짜 부럽네....

-나 : 음.........


방으로 돌아오는데 입맛이 썼다.

"난, 고 3 때나 지금이나 똑같아. 그때도 영어는 빵 점이었으니까.

그래도 그 나이 때 외국에서 한 번 부딪혀 봤으면 지금 보다는 훨씬 나았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뭔가 영화 대사 같은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는 없잖아."


(끝)

이전 09화#09. 어학연수 최적의 시기는..(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