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도 안 쓰면 금방 잊어먹어요."
#07. 어학연수 최적의 시기는... 1부, 2부
[마흔 살에 떠나는 필리핀(Cebu) 어학연수 이야기]
#09. 어학연수 최적의 시기는... (1부)
학원에 두 명의 어린 학생이 있다.
한 명은 중학교 3학년 남자아이 ‘티미’이고 나머지 하나는 고 3짜리 여자아이 ‘레이나’이다.
티미는 자주 내 방에 놀러 오곤 했다. 한 번은 내가 없을 때 방에 들어와서 책상을 뒤지는
바람에 혼내 준 적이 있다. 티미는 1:1 수업을 내 옆방에서 한다.
1:1 수업 교실은 책상 하나에 걸상 하나 들어가면 딱 맞을 정도로 공간이 작고 옆 방과는
유리벽으로 칸막이가 되어 있다. 그래서 수업 중에 큰 소리를 내면 방을 넘어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하루는 티미가 내 방에 와서 이런 소리를 한다.
-티미 : "아저씨 떠들지 좀 마요.", “공부를 왜 그렇게 시끄럽게 해요?”
-나 : 내가 언제 떠들었다고 그래.
-티미 : 1:1 수업 때 왜 그렇게 떠들면서 공부를 해요? 시끄러워 죽겠어요.
-나 : 말하기 공부하는데 떠드는 게 당연하지. 내 목소리가 크냐?
-티미 : 아저씨 목소리 엄청 커요. 그런데 그렇게 떠들면서 공부는 언제 해요?
-나 : 야! 그럼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티미 : 선생님 말하는 거 받아 적고, 숙제해 가고 책 읽고 그렇게 하는 거죠.
-나 : 너는 그렇게 공부하니?
-티미 : 네. 그러니까 옆방에서 아저씨 떠드는 소리 때문에 공부를 못하겠어요.
-나 : 너는 1:1 수업 때 선생님하고 말 많이 안 하니?
-티미 : 말 많이 안 해요. 아빠가 공부는 조용히 하는 거랬어요.
-나 : 알았어. 미안해. 난 네가 내 옆방에서 수업받는 줄도 몰랐어.
나는 티미를 보내고 나서 피식 웃고 말았다.
내가 하는 방식이 옳은지 확실치 않으니 누구에게 가타부타하고 싶지는 않았다.
티미는 필리핀 생활이 2년째라고 했다.
중 1 때 한국에서 학교를 그만두고 엄마하고 필리핀에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마닐라에서 학교를 다녔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세부로 옮겨왔다.
고등학교 입학 전에 몇 달 시간이 남아서 지금은 어학원에서 숙식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이미 한국으로 돌아갔고 학교 입학할 때 맞춰서 다시 온다고 한다.
입학 전까지는 아이 혼자 있기는 안전한 어학원이 부모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필리핀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2년이 넘었다는데 티미의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어로 말을 안 하니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가끔 이 녀석이 한국 말을 이상하게 할 때가 있다.
어떤 때는 내게 말할 때도 친구들한테 말하듯이 한다.
한 번은 옆에서 듣고 있던 매니저가,
“너 아빠하고 말할 때도 그렇게 하니?” 하고 묻자
“내 말이 뭐가 어때서요?” 한다.
티미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뭔가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이상한 점이 있다.
하루는 매니저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매니저 : 외국 사는 한국 애들 저런 애들 많아요.
-나 : 어떤 애들?
-매니저 : 티미하고 말하면 뭔가 좀 이상하죠.
-나 : 어려서 그렇지 뭐.
-매니저 : 그것도 그런데 한국말을 까먹어서 그래요.
-나 : 그건 무슨 소리?
-매니저 : 필리핀 온 지 벌써 2년도 더 됐잖아요. 전화 통화하고 만나는 애들이래야
지 또래 친구들일 거고 그나마도 점점 없어지지 않았겠어요. 학원에 형이나
누나들도 얼마나 놀아주겠어요? 드라마도 수준이 안 맞으니 못 보고
뉴스 볼 일도 없죠. 그렇다고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요.
-나 : 엄마하고 있으면 교회나 한인 모임이나 뭐 그런데 갈 거 아냐?
-매니저 : 교회나 한인들 모임에서 만나는 애들은 영어, 필리핀 말, 한국말 편한 데로
섞어서 해요. 한국어 어휘가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부족해지는 거예요.
딱 중 1 수준에 멈춰 있는 거라고 할까요?
-나 : 그럼 한국어 공부를 따로 해야 한다는 건가?
-매니저 : 한국어 공부를 어떻게 따로 해요. 제일 좋은 건 엄마, 아빠하고 많이 놀고,
친구들하고 수다 떨고 하는 건데 여기선 그게 안 되잖아요. 계속 이렇게
가다 보면 한국말은 중1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울 거예요. 그러다가 조금씩
한국말을 잊어먹겠죠.
-나 : 설마..?
-매니저 : 학원에만 계셔서 잘 몰라서 그래요. 나가보면 그런 애들 많아요.
영어라도 잘하면 되는데 티미 또래 애들은 영어도 잘 못해요.
저러다 여기서 대학이라도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러다 집에 문제 생겨서 돌아가기라도 하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거죠.
-나 : 그런 애들이 많아?
-매니저 : 많아요.
-나 : 한국에서 크는 애들 중에도 한국말 제대로 못하는 애들 많아.
-매니저 : 그래도 한국에서야 학교도 다니고 영화나 드라마도 보고 하니까
한국말 어휘가 줄지는 않을 거잖아요. 모국어는 안 잊어버릴 거 같죠?
한국말도 안 쓰면 금방 잊어먹어요.
-나 : (모국어도 잊어먹는다?) 정말?..
-매니저 : “한국말을 잘해야 외국어도 잘할 수 있다.”는 말 빈 말 아니에요.
-나 : (그런가?) 정말?
방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안 쓰면 모국어도 잃어버리게 될까?”
이 말이 맞다면 2차로 배운 언어는 더 빨리 잊어먹는다는 말이다.
더 쓸 일이 없을 테니까.
그럼 외국어 공부는 왜 하고 있는 거야?
금방 잊어 먹을 텐데.
젠장!!! 혼자서 묻고 답하고의 연속이다.
지금 내가 할 걱정이 아니니 지금은 일단 접기로 한다.
그래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는 하다.
시간이 지나면 답을 알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는 한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