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희낙락으로 시작해보자
모두가 작심삼일하는 신년
세상 가장 불성실하고 일희일비하는 나도 역시나 3시간짜리 ‘나를 위한 글쓰기’ 작심을 해본다.
(안양예고 문창과, 단국대 문창과, 졸업을 앞두고 시작한 방송작가 17-18년 째로
평생 활자와 생을 함께 했음에도 글쓰기는 나에게 ‘작심’이다.)
주변 수많은 성실러들 사이에서 살아남기에는
항상 업을 마치고 어디론가 달려갈 준비부터하는 내가 글쓰기의 구역을 전전하고 있는 건
은혜이자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글쓰기 작심을 하면서 부디 실패로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 세운 법칙이 있다.
제발!! 한 자 한 자 의미부여하지 말자! 반전을 계획하지 말자! 시시콜콜해지자! 무언가 남기려고 하지 말자!
그래서 평소라면 이렇게 오프닝을 펼치는데만 몇날며칠 걸렸을 일을
거름망 최대한 헐겁게 하고 끄적여 보고 있다.
오늘부터 시작될 나의 이야기는
불성실하고 일희일비하는 삶에 대한 것이며
이제부터 펼쳐질 인생 그래프는 어떤 모양을 나타낼지 나조차도 모른다.
(지난 삶을 돌이켜 보자면 나름 긍정주의자라 작은 것에 일희되어 상승곡선을 유지하다
한 번씩 나락으로 떨어지기 마련이었는데
지난 해를 돌이며 보면 일희를 지배하는 일비들의 맹활약으로 굉장한 하락 곡선을 보였던 해였다.
지난 해 하반기 주식과 부동산 경제 흐름과도 비슷한 듯….)
다행히 지금 내가 기록하고 싶은 건 일희의 기억이다.
<트렌드 코리아 2024>의 글을 빌려 말하자면 영락없는 ‘도파밍’족 = 도파민(dopamine) + 파밍(farming)을 결합한 말로
플레이어가 농작물 수확하 듯 아이템을 모으 듯 도파민이 분출될 수 있는 행동을 모으려는 이들‘인 방송쟁이들.
새로운 것을 탐험, 탐색하며 발빠르게 먹고 입고 즐겨보려는 직업병을 가진
일명 ‘방송국 놈들’의 모임 장소는 웬만하면 실패가 없다.
물론 대체적으로 인색한 편은 아니어서 감탄사가 좀 잦긴하지만
정말 별로인 것에는 냉정하게 등을 돌리는 나름의 기준또한 가지고 있다.
2011년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만나 오랜 시간 연을 이어오고 있는 한 모임의 이번 장소는
망원도에 있는 스페인 비스트로 <베 우노>였다.
망원시장, 망리단길이 핫플이 된지는 꽤 되었지만
이런 느낌의 스페인 음식점은 또 처음이었다.
처음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확 여기다 싶어지는 온도와 조도!
(소개팅 하면 성공할 것만같으며, 와인 한 모금만 먹어도 헤벌쭉 해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적당한 음식 냄새와 와인 향이 배 식욕을 한 껏 끌어올려주는 풍미의 무드까지
난 스페인에 가본 적은 없지만 그냥 여기가 딱 스페인이다 싶고
실로 모임의 멤버 중 스페인에 가본 작가 언니가 인정한 망원 속 찐 스페인이다.
<베 우노>는 스페인어 <B-UNO>로
영어 B가 스페인어 발은으로는 베, UNO는 스페인어로 하나를 의미인데
<베 우노>는 합성어가 아닌 “안녕하세요~를 뜻한다고 한다.
찾아보니 <베 우노>는 예전 <보라초>라는 곳이 리뉴얼 된 레스토랑으로
보라초 시절부터 유러피안을 꿈꾸는 술꾼들에게 사랑받던 공간이라고.
<베 우노> 맞이 하는 글
- 안녕하세요. B Uno 입니다.
예전 ‘보라초’였던 이곳 요리사들이
새로이 만든 공간 ‘B Uno(베 우노)’ 라고 합니다.
스페인을 포함 경계없는 유러피안 퀴진을 하는 공간입니다.
음식에 어울리는 컨벤셔널 와인과 내추럴와인도 준비되어있으니
서버나 셰프들에게 문의해주세요!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
<베우노>의 메뉴들도 스페인어로 되어 있어 (다행스럽게도 한글판 스페인어)
뭔가 스페인 느낌 물씬 느끼며 외국어 몇 개 득템하는 느낌도 든다.
4구의 달걀 박스 같은 곳에 나오는
하몽, 버섯 크림이 들어간 크로캣 = 크로게따
새우의 풍미를 한껏 담은 홍새우 비스큐 스파게티니
대왕 홍새우가 머리째로 들어가 있는 감바스 알 아히요
(감바스는 요즘 집에서도 곧 잘 해먹어 안 시키려고 했는데
안 먹었으면 대후회 할 뻔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유럽 스타일 감바스)
바삭하게 구운 깜뺘뉴 위에 마늘 콩피와 토마토를 얹은
별미 중의 별미 빤 콘 토마떼
그리고 내 마음속 1순위 메뉴였던
초리소와 튀긴 알감자
이름 그대로 초리소와 튀긴 알감자가 나오는데
초리소는 탱글탱글 꽉찬 육즙에 알감자는 정말 달고 포슬포슬한데
겉바속촉이기까지 하다.
맛집을 소개하려던 것 아닌데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의 그 맛, 분위기, 감성에 젖어드는 걸 보니
이만한 희가 어디 있을까.
그리고 불성실한 나도 그 자리 그 순간 만큼은 누구보다 성실했다.
당신도 자연스레 성실해 지는 그 자리 (집이어도 밖이어도 생각이어도 행위여도 좋다)에서 자연스레 성실해 지길 권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