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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by 효선


산업혁명이
노동자 계급을 창조했다면
우리가 목도할 과학혁명은
'쓸모없는 계급'을 창조할 것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전작 <사피엔스> 내용에 이어 최신작 <호모 데우스>에서 인류의 미래를 예측한다. ‘호모 Homo’는 사람을, ‘데우스 Deus’는 '신 god'을 뜻한다. 인류가 신이 된다는 자극적인 제목은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다음 본문에서 호모 데우스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인류는 지금까지 이룩한 성취를 딛고 더 과감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전례 없는 수준의 번영, 건강, 평화를 얻은 인류의 다음 목표는,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가치들을 고려할 때, 불멸, 행복, 신성이 될 것이다. 굶주림, 질병,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인 다음에 할 일은 노화와 죽음 그 자체를 극복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극도의 비참함에서 구한 다음에 할 일은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짐승 수준의 생존투쟁에서 인류를 건져 올린 다음 할 일은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바꾸는 것이다. /p.39


책 1부(호모 사피엔스 세계를 정복하다)는 인간이 누구이며 동물과 어떻게 다른지, 2부(호모 사피엔스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다)는 인본주의가 어떻게 지배적인 이념이 되었는지 말한다. 3부(호모 사피엔스 지배력을 잃다)는 생명공학과 인공지능이 어떤 위협이 될지 얘기한다. 아래에서 3부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자유 의지는 없다?


자유를 관 속에 넣고 못을 박은 것은 진화론이다. 진화는 불멸의 영혼과 아귀가 맞지 않는 것처럼, 자유의지라는 개념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자연선택이 인간의 모습을 바꿀 수 있었겠는가? (...) 내가 특정한 소망을 느끼는 것은 내 뇌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 과정들이 그런 느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들은 결정론적이거나 무작위적일 뿐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다. (...)

호모 사피엔스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들은 인간 역시 쥐처럼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 뇌의 적소를 자극해 사랑, 분노, 두려움, 우울 같은 복잡한 감정들을 일으키거나 없앨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근 미국 육군은 사람들의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하는 실험을 시작했는데, 이 방법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는 병사들을 치료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p.386-394


오늘날 시스템은 자유주의이다. 개인의 선택과 자유가 기반이다. 하지만 과학이 이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든다. 진화론은 인간이 유전자의 생존 기계일 뿐이고, 생각은 생화학 작용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게다가 기술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유의지가 없다면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어떤 사람이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알고리즘?


21세기의 기술로는 '인류를 해킹해' 나보다 나를 훨씬 더 잘 아는 외부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개인주의에 대한 믿음은 붕괴할 것이고, 권한은 개인들에서 그물망처럼 얽힌 알고리즘들로 옮겨갈 것이다. 앞으로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기 소망에 따라 인생을 운영하는 자율적인 존재로 보는 대신, 네트워크로 얽힌 전자 알고리즘들의 관리와 인도를 받는 생화학적 기제들의 집합으로 보는 데 점점 익숙해질 것이다. /p.451-463


위키백과에 따르면, 알고리즘이란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동작들의 모임이다. 입력되는 정보에 따라 다른 출력이 나온다. 예를 들면 브런치는 "이런 글 어때요?"라며 독자 취향에 따라 다른 글을 추천해준다. 페이스북은 유저의 신상 정보와 관심사에 따라 다른 광고를 보여준다. 미래에는 결혼 상대를 고민할 때 구글이 조언해줄지도 모른다. "고객님과 상대 후보들의 데이터와 통계로 분석한 결과, A후보와 함께 할 때 만족할 확률이 87%입니다." 지금처럼 하나씩 작은 선택권을 내어주다 보면 나중에 얼마나 자율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신흥 종교는 데이터교?


기술 인본주의는 해결이 불가능한 딜레마에 봉착한다. 인본주의는 인간의 의지를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므로, 의지를 제어하고 재설계할 수 있는 기술을 어서 개발하라고 우리를 독촉한다. (...) 하지만 막상 그런 통제력을 갖게 되면 기술 인본주의는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 알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신성한 의지가 또 하나의 맞춤 제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지와 경험이 권위와 의미의 궁극적 원천이라고 믿는 한, 우리는 그런 기술들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

따라서 더 과감한 기술 종교는 인본주의의 탯줄을 아예 끊으려고 한다. 기술 종교는 인간의 욕망과 경험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세계를 예견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욕망과 경험 대신 의미와 권위의 원천이 될까? 현재 역사의 대기실에 앉아 면접을 기다리고 있는 후보는 단 하나, 바로 정보이다. 가장 흥미로운 신흥 종교는 데이터 교이다. 이 종교는 신도 인간도 우러러보지 않는다. 이 종교는 데이터를 숭배한다. /p.502


기술로 인류의 발전을 추구하다 보면 오히려 인본주의 이념과 부딪힐 수 있다. 사람의 감정, 생각, 의지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려면 그보다 중요한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데이터가 될 것이다. 이미 사람보다 데이터가 신뢰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나를 속이고 돈을 더 받을 수도 있는 택시 아저씨의 말보다 객관적으로 최단 거리를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에 안심되지 않는가. '데이터교'라고 부를 만큼 데이터를 가장 믿는 세상. 그리 먼 미래가 아니다.






비관적이고 씁쓸하게 들릴 수 있으나, 변화는 피할 수 없으며 나쁜 게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의 주장은 하나의 가설일 뿐, 역사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고민하고 준비해야 된다. 책 마지막에 저자가 제시한 질문들이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p.544


최근 읽은 책들 중에 가장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었다. 진화론이라는 전제부터 의견이 달라서, 전개되는 논지가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생명 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체 합성으로 과연 인간이 신이 될 수 있을까. 인류의 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싶다면 <호모 데우스> 완독을 추천한다.




참고 영상

https://youtu.be/wtdtU4mqqig

책그림 영상: 인간VS기계

https://youtu.be/i_qXgIicieY

씨리얼 영상: [제 4차 산업혁명] 나는 그렇게 쓸모없는 인간이 된다? 데이터 VS 인간 (feat.유발 하라리)





다음 책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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