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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by 효선

불안하다. 내가 하는 수업이 가치 있을까. 내년엔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수 있을까. 난 쓸모 있는 사람일까. 의심할수록 움츠러든다.

불안한 시기에 읽어서 더 와 닿은 책,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다.



책 원제는 Status Anxiety, 지위에 대한 불안이다. 지위는 한 사람의 사회경제적 위치이자 세상의 눈으로 본 가치와 중요성으로 정의된다. 이를 토대로 작가는 지위에 대한 불안을 분석한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불안의 원인 그리고 해법이다.



불안의 원인

불안의 원인은 5가지-사랑 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이다.


"사랑 결핍"이 그중에서 가장 와 닿았다. '불확실'한 미래에 '능력' 있게 성공하길 '기대'하며 '속물'이 되어가는 근본적인 이유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부족하면 불안하고, 사랑이 충분하면 안정된다. 상대 반응이 안 좋으면 걱정되고, 날 좋아하면 자신감이 생긴다. 노력하는 이유도 따져보면 관심을 받기 위해서이다. 가진 게 없으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까 봐, 투명인간처럼 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무언가 베풀어서 사람들이 고맙다고 할 때 내 가치를 느낀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힘들게 노력을 하고 부산을 떠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 다른 사람들이 주목을 하고, 관심을 쏟고, 공감 어린 표정으로 사근사근하게 맞장구를 치면서 알은체를 해주는 것이 우리가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p.17-18


비교 기준은 주로 우리가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 준거집단이다. 엄마 친구 아들은 바리스타 대회에서 상 받고 카페를 차렸다던데.. 학교 선배는 UN에 취직하고 결혼도 했던데.. 나는 뭐지? 페이스북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그들보다 많은 걸 이루려고 기대할수록, 실망하고 상처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p.69




불안의 해법

불안의 해법은 5가지-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이다.


"철학"이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다. 철학자들은 입을 모아 내부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이성적으로 알고 있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품위는 다른 사람들의 증언에 좌우되지 않는다. (...) 칭찬을 받으면 더 나아지는가? 에메랄드가 칭찬을 받지 못한다고 더 나빠진다더냐? 금, 상아, 작은 꽃 한 송이는 어떤가?" 마르쿠스는 칭찬을 받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지 말고, 모욕을 당했다고 괴로워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하여 자신을 파악하라고 권한다. /p.148-149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자크 라캉은 말했다. 타자의 욕망을 위해 산다면 마지막에 남는 건 뭘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건 순간일 뿐. 알고 보면 다들 자기 인생 살기 바쁘다. 나부터도 그렇지 않은가.


톨스토이의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주인공은 (...) 자신의 성장, 교육, 일을 돌이켜보며, 다른 사람들 눈에 중요해 보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그 모든 일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자신의 이익과 감수성을 희생해왔는데, 이제야 그들은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p.69-272


그러므로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기준 삼으면 된다.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다양한 삶이 있다.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삶을 비평하고 세상을 이해한다. 종교인은 거대한 자연, 신 앞에서 경외감을 느끼며 사람들 사이의 작은 차이에 초연하다. 보헤미아는 영감을 주는 대화를 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시집을 쓴다. 이렇듯 하나 이상의 길이 있단 걸 알면 위로와 확신이 생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사업가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도 있고 보헤미안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철학자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p.355-357



내가 생각하는 불안의 해법은 "인정"이다. 인정을 바라는 사랑 결핍이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말을 들을수록 자신의 가치를 믿을 용기가 충전된다. 스스로 인정해주는 말을 하자. 가까운 사람들에게 인정하는 말을 하자. 오늘도 수고했다고.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마음을 담은 한마디가 '나 잘 살고 있나'하고 약해진 누군가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


(사진 출처: 알쓸신잡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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