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어떻게 보면 될까? 자신의 느낌대로 즐기면 된다는 답변은 정중히 사양한다. 예술을 대하는 자유롭고 열린 자세일 수 있지만, 어쩌면 무지를 있어 보이게 포장한 말일지도 모른다. 느낌적인 느낌이 전부라면 어째서 어떤 작품은 국제적인 상을 받고, 유명한 화가의 작품은 몇 억의 현금과 교환되겠는가. 복잡한 세상을 설명하는 수학 공식이나 경제 법칙이 있듯이 그림을 읽는 데에도 어떤 기준 혹은 방법이 있다. 미술에 관심이 있어 전시회를 다니지만 어떻게 감상해야 될지 심경이 복잡해지면서 흐음.. 하는 미적지근한 감탄사만 내뱉었던 분들에게 <단숨에 읽는 그림 보는 법>을 소개한다.
<단숨에 읽는 그림 보는 법>은 대영 미술관에서 예술사를 가르치는 수전 우드포드가 쓴 책이다. 원제는 art essentials이고 부제는 '시공을 초월해 예술적 시각을 넓혀가는 주제별 작품 감상법'이다. 저자는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면에 대해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1) 소재와 소재를 다루는 방법들, 2) 기술적 문제와 그것을 어떻게 해결 혹은 초월했는지, 그리고 3) 그림에 숨겨진 숨겨진 뜻과 암시적 요소를 다룬다. 이를 통해 우리는 특정 그림이 어떤 이유로 만족감 혹은 불쾌감을 주는지 색채와 형태의 조합을 분석하며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저 그림을 보는 방법을 알아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저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림을 설명하는 단어를 찾고 그림을 분석하는 것은 수동적인 그림 감상에서 벗어나 능동적이고 주관적인 감상을 할 줄 알고 더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p.17
능동적으로 이야기하며 감상하자는 취지처럼 여러 사례를 풍부한 설명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서 그려진 작품들을 주제 별로 풀어주는데 각 장의 테마는 '대지와 바다, 사람을 그리는 초상, 일상 속 풍경, 역사와 신화, 기독교 세계, 평면의 무늬, 전통에서 배우기, 디자인과 구성, 공간 묘사, 형식 분석, 숨은 의미, 질적 수준'이다. 수록된 그림들을 자세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원리를 직접 적용할 수 있다. 어떤 식으로 풀어주는지 본문 13쪽에 나오는 '시간과 사랑의 알레고리' 작품 소개를 예시로 소개하겠다.
16세기 화가 브론치노가 세련된 붓놀림으로 그린 유화를 보자. 그는 그리스 신화 속 사랑의 여신 비너스가 날개 달린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의 아들, 큐피드에게 관능적인 모습으로 안겨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이 중심인물들의 오른쪽에는 발랄한 소년이 있는데 한 연구가에 따르면, 이는 기쁨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의 뒤로 녹색 옷을 입은 이상한 소녀가 있는데 이 소녀의 몸은 기괴하게도 드레스 아래로는 똬리를 튼 뱀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는 분명 질투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흉측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으며, 이는 사랑에 흔히 동반되는 감정이다. 중심인물의 왼쪽으로는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는 노파가 보인다. 그는 질투로, 부러움과 절망이 뒤섞인 이 감정 역시 자주 사랑과 함께 존재한다. 그림 윗부분에는 이 장면을 가리고 있는 듯한 커튼을 든 사람이 있다. 이 남자는 시간의 할아버지로, 날개가 달려 있고 어깨에는 그를 상징하는 모래시계가 얹혀있다. 이 그림이 보여주고 있는 사랑에 내재된 탐욕스러운 요소들로 인한 큰 괴로움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시간이다. 그의 왼쪽 맞은편에 있는 여인은 진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녀는 비너스의 선물인 사랑과 뗄 수 없는 관계인 기쁨과 두려움의 불편한 동거를 들춰낸다. p.12
그림을 보는 첫 번째 방법은 작품이 그려진 목적을 생각하는 것이다. 위 그림의 목적은 교육 수준이 높고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소수 엘리트 계층을 자극하는 유희와 정신적 고양을 위함이다. 의인화와 관련된 모호하고 복잡한 풍자를 통해 도덕적 교훈, 즉 사랑에는 기쁨만큼이나 질투와 기만이 함께 한다는 이야기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는 두 번째 방법은 문화적 맥락을 살피는 것이다. 우화적인 그림을 보고, 지적으로 세련된 혹은 지식에 싫증이 났을지도 모르는 우아한 계층이 수수께끼와 퍼즐을 좋아했으며 교양 넘치는 놀이로써 예술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방법은 그림이 얼마나 현실과 유사한지 보는 것이다. 브론치노는 인물들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그렸지만, 잭슨 폴록의 추상화처럼 자연과 유사하지 않게 그리는 경우도 있다.
네 번째 방법은 디자인과 구조를 보는 것이다. 형태와 색채가 패턴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보면, 주요 인물 그룹인 비너스와 큐피드는 밝은 생상으로 L자를 형성한다. L자 그룹과 균형을 이루도록 기쁨을 나타내는 소년과 시간의 할아버지가 거꾸로 된 L자 형태이다. 이 두 개의 형태 그룹은 프레임처럼 사각형을 이루며 안정감을 갖게 한다. 공간을 인물로 가득 채운 복잡한 배치는 작품 주제와도 연관 있다.
어떤가. 책 내용 일부이지만 미술관에서 전문적인 강의를 듣는 기분이다. 제목처럼 단숨에 읽히지는 않지만 말이다. 나아가 챕터마다 핵심 질문을 5개씩 던지는 점이 인상 깊다. '이미지는 항상 목적을 가지는가?, 예술은 작품이 태어난 시대의 문화를 반드시 반영하는가? 작품을 더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예술가는 형태와 색채를 어떻게 배열하고 있는가?' 등. 단지 읽기를 넘어서 질문에 답해보고 다른 사람들과 토의하고 싶어진다. 다만, 아쉬운 부분은 동양화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서양화가 90%이상, 기독교 그림 이야기가 1/3은 된다. 서양화 위주인 것은 대부분의 교양 미술서도 마찬가지인데, 인기 있는 입문서들은 주로 화가들의 일생을 넓고 얕고 가볍고 재밌게 다룬다. 작품 자체를 해석하는 법에 갈증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고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