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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선 Jun 16. 2019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자살 유가족에 대하여

 1999년 4월 20일,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는 총과 폭탄으로 무장하고 콜럼바인고등학교에 갔다. 두 사람은 학생 열두 명과 교사 한 명을 살해하고 스물네 명에게 부상을 입힌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역사상 최악의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딜런 클리볼드는 내 아들이다. p.20

 

 독서모임에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책을 함께 읽었다.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 가해자 어머니가 쓴 실제 이야기이다. 1인칭 시점으로 생생하게 전해지는 슬픔을 들으니 마음이 무겁고 복잡해서 감정적으로 버거웠다. 동시에 저자가 강인한 사람이라고 존경하게 된 것은 거센 비판으로 힘들었을 텐데도 직접 사람들 앞에 나와 목소리 냈기 때문이다. 


딜런이 종이접기 하는 모습을 보던 일을 종종 생각한다. (...) 정사각형 종이를 개구리나 곰이나 가재로 만드는 걸 보면 신기했다. 종잇장처럼 평범한 것이 몇 번 접는 것만으로 어떻게 저렇게 다른 모양이 되는지, 어떻게 한순간에 새로운 의미를 띄게 되는지 보면서 나는 늘 경탄했다. 또 완성된 형태를 보면서, 나는 알 수 없는 감춰진 복잡한 주름들에 탄복했다. 이 경험이 콜럼바인 이후에 내가 겪은 일들과 여러모로 닮았다. 나는 나 자신, 내 아들, 내 가족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뒤집어, 아이가 괴물이 되고, 다시 아이가 되는 것을 보아야 했다. /p.444~445



 나는 이 책을 자살 유가족의 회고록으로 읽었고, 저자 덕분에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유가족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맘으로 책 구절과 정보를 기록한다인용하는 양을 줄여보려고 했으나, 나누고 싶은 부분이 많아서 그대로 남긴다. 


 

 콜럼바인 이전의 우리 삶이 너무 평범하다는 점이 사람들에게는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일 것 같다. (...)

 무엇보다도 아들이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아 보일 수 있다는 사실만 알았더라면 하는 소망이 가장 강하다. (...)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거다. 나는 딜런을 무한히 사랑했지만 (...) 딜런이 심리적으로 악화되어가는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고, 만약 내가 제대로 보았다면 딜런이나 딜런에게 희생된 사람들이 그 길을 가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 내 친구들과 동료들도 내 이야기를 알고 육아 방식을 바꾸었다. 부모가 제때 개입해서 엄청난 변화를 이룬 일도 있었다. 살짝 내성적으로 변한 듯한 열세 살 짜리 딸의 상태를 알아차린 전 직장동료가 (...) 딜런 생각을 하며 캐물었다. 결국 딸이 무너지듯 울음을 터뜨리더니 친구를 만나러 몰래 나갔다가 강간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아이는 극도의 우울과 수치와 두려움에 빠져 있었고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다.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고 끈질기게 물었기 때문에 아이를 구할 수 있었다. /p.20-24 책을 펴내며



 공부를 할수록 딜런에게 어떻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것들을 배워간다. 설교하는 대신 귀를 더 많이 기울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할 말이 없을 때 내 생각과 말로 빈 공간을 채우는 대신 말없이 같이 앉아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딜런의 감정을 달래려고 하는 대신 인정해주었더라면, 뭔가 느껴질 때에 '피곤해요. 숙제가 있어요.' 같은 핑계로 대화를 피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어둠 속에 딜런과 같이 앉아서 딜런이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걱정이 된다고 끈덕지게 말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p.419





뇌 건강 문제에 대하여



 단 하나의 대답은 있을 법하지 않지만, 나에게는 어떤 조각 하나가 전체 그림을 조망하는 데 다른 어떤 조각보다 큰 역할을 했다. 딜런이 우울이나 다른 뇌 건강 문제를 겪고 있어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려는 욕망을 품게 되었고, 딜런의 죽음에 대한 욕망이 딜런이 학살에 참여하게 된 본질적 요인이었다는 사실이다. /248~249



 뇌질환이 면죄부는 아니다. 딜런이 저지른 범죄는 딜런의 책임이다. (...) 그렇지만 우울증과 뇌의 이상이 폭력을 저지르겠다는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는 폭력을 예방하는 데 전력을 기울일 수 없을 것이다. 매우 위험한 발언인 것은 안다. 뇌 장애가 있는 사람이 위험하다는 것은 오늘날 가장 흔하면서도 파괴적인, 옳지 않은 믿음 가운데 하나다. 뇌 이상이 있는 사람 대부분은 폭력적이지 않다. 아주 일부가 그러할 뿐이다. 뇌 건강과 폭력이 교차하는 지점을 편견 없이 터놓고 논할 방법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일단 사회의 낙인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 나도 불안장애를 겪으면서 내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낼 때의 위험과 수치심을 알게 되었다. (...) 내 불안장애를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게 되어 수렁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자 뇌 건강 문제는 심장병이나 인대가 끊긴 것이나 다름없는 건강문제라는 사실이 갑자기 한낮처럼 또렷하게 떠올랐다. 이런 건강 문제와 다를 바 없이 치료할 수 있다는 것도. 하지만 먼저 병을 깨닫고 진단을 받아야 한다. 오늘날에는 유방 엑스선 검사와 촉진으로 50년 전에는 놓쳤을 암을 조기 발견해 치료한다. 덕분에 나도 암을 이겨낼 수 있었다. 언젠가는 뇌 건강 문제에 대해서도 그만큼 효과적인 진단과 개입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p.435-437



원인을 지나치게 쉽게 짚어 단순하게 결론을 내려버리는 일만 삼가도 큰 진전이다. 학교 총기 사건 범인들은 폭력적 비디오 게임이나 테크노 음악 '때문에' 사람들을 죽인 것이 아니고, 사람들은 해고당했거나 애인에게 차였다고 자살하지 않는다. (...) 자살의 원인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은 실연이나 해고가 자살을 고려할 이유가 된다고 암시하는 위험천만한 일이 된다. (...) 살인범의 삶을 보도하고 혼란스러운 페이스북 글을 긁어오고 동기를 추측해보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그런 악랄한 행동이 마치 어떤 면에서는 정당화되는 듯한 인상을 부추길 수 있습니다. p.236-237



전문가를 만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물었다. 부정적 인식을 높이지 않으면서 뇌 장애 혹은 정신병과 폭력의 연관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켄트 키엘 박사는 이렇게 깔끔하게 요약했다. "정신 건강 문제가 있는 사람이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몰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폭력적인 면을 드러내지 않게끔 이들을 돕는 겁니다." (...) "정신건강 관련 지원이 많아질수록 폭력이 줄어든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p.438, 440



자살은 병의 결과물인데, 마치 좌절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바라보게끔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 뇌 건강 문제는 '그들 대 우리'의 상황이 아니다. 누구나 이 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한 번은 그런 일을 겪는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치아관리, 영양 균형, 용돈 관리의 중요성 등을 가르친다. 아이들에게 자기 뇌의 건강을 잘 살피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기 뇌 건강을 건사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는 몰랐다. 내 삶에서 가장 큰 후회는 딜런에게 그걸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p.441  



대부분 사람들이 자살은 선택이고, 폭력도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인력으로 다룰 수 있는 일이라고. 하지만 자살 시도에서 살아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가 완전히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의사결정 능력이 변화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자이자 자살 연구가 매슈 녹 박사는 '의사결정 기능장애'라는 내 마음에 쏙 드는 표현을 썼다. 자살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겨진다면, 그게 진정한 자유의지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까? p.434



 자살에 대해 내가 알던 것 전부가 틀렸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 그 까닭이 뭔지 나는 안다고 생각했다. 이기적이거나 비겁해서 자기 문제를 마주하지 못하는 사람, 혹은 순간적 충동에 휩싸이는 사람들이라고 믿었다. (...) 쉽사리 판단하는 정확하지 않은 생각들이었다.

 자살을 생각하는 것은 병의 증상이고 무언가 이상이 있다는 징후다. 대부분의 자살은 한순간에 충동적인 결정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자살은 대부분 고장 난 사고와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싸워오다가 마침에 그 싸움에서 패배했을 때 일어난다. (...)

 조이너 박사는 사람이 두 가지 심리적 상태를 꽤 오랫동안 겪으며 살았을 때 자살로 죽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난다고 한다. 첫째는 좌절된 소속감("나는 혼자야.")이고 둘째는 스스로를 짐이 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내가 없으면 세상이 더 나아질 거야.")이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보존 본능을 넘어서는 단계에 들어선다면("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위험이 임박했으며 자살을 저지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죽고자 하는 욕망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심리 상태에서 나온다. 자살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세 번째 요인에서 나온다. /p.258





C.S. 루이스는 아내가 죽은 뒤에 쓴 아름다운 사색록 <헤아려 본 슬픔>의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한다. "슬픔이 공포와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이 말이 얼마나 견고한 진실인가를 절절하게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특히 아이의 죽음은 사람의 토대를 뿌리부터 흔들어놓는다. 자살로 아들을 잃은 아이리스 볼턴은 이렇게 썼다. "내 죽음이나 내 아이들이나 가족의 죽음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비극은 다른 사람에게만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p.188-189


딜런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어야 해요. 친구나 동지가 옆에 있어줬어야 했는데. 분노와 우울을 부추기는 게 아니라 달래줄 친구요. 이건 아셔야 해요. 부모님은 그 친구가 되어줄 수 없다는 걸요. 형 바이런도 마찬가지고요. 성장과 분리 과정에 있기 때문에 감추어왔던 고통스러운 문제를 부모나 형제자매에게 털어놓기는 극히 힘듭니다. /p.182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그러한 친구가 되기를 바라며, 내가 누군가의 옆에서 위로가 되길 바라며 이만 줄인다. 



책 관련 자료


저자의 ted 강연

https://youtu.be/BXlnrFpCu0c

ebs 지식채널

https://youtu.be/MMG4QzgJNiU


콜럼바인 사건을 다룬 영화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5178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7555



유가족 관련 자료


영상


씨리얼 left behind

https://youtu.be/KvYIKElhFPE

pran

https://youtu.be/bEH16XyqJTI

ebs 너무 이른 작별

https://youtu.be/b_5KUmDDYgg


https://youtu.be/XndvQb8ufaU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58202370&orderClick=LAG&Kc=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8634617



모임, 심리상담 지원


유가족 자조모임 자작나무

http://blog.daum.net/suicide-postvention


사별자 자조모임 워크숍

https://forms.gle/pWmgZ3KMefL1gq1Z6


유가족 대상 심리상담 지원 (140만원)

http://www.psyauto.or.kr/sub/notice_view.asp?mode=&page=1&direction=&idx=&bbsid=biNotice&editIdx=637&SearchKey=ALL&SearchS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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