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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시 Jun 22. 2021

내가 가장 즐겁게 몰입했던 경험

몰입 (沒入)  

[명사]

1. 깊이 파고들거나 빠짐.

무언가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렸던 경험. 있다. 많다. 귀가 얇은 편이라 남들이 권하면 이것저것 손대보고 금세 빠져드는 편이다. 그 중에 가장 즐겁게 몰입했던 경험이라 하면 단연코 와우(WOW -World of Warcraft- 블리자드사에서 나온 MMORPG)일 것이다. 이것 역시 친구의 권유에 시작하게 되었다. 솔로잉 게임은 익숙했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서 협력하며 퀘스트를 풀어나가는 온라인게임은 처음 접해본지라, 한지에 물 스며들듯 순식간에 빨려들어갔다.

와우는 한 달에 이만원이 채 안 되는 이용료만 내면 딱히 과금요소 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주머니는 가볍지만 남는 게 시간인 휴학생에게 안성맞춤이었다. 현실의 태양은 만날 일이 없었지만 게임 속의 일출은 거의 매일 보았다. 밤을 샜다는 이야기다. 오타쿠 게이머의 기본은 주침야활이지만, 와우에 한창 몰입했을 당시에는 딱히 주침야활 생활조차 하지 않았다. 게임을 하다 하다 도저히 몸이 견디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서야 잠을 청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던 최장기록이 50시간을 넘긴 적도 있었다. 그러고 나서 잠이 들면 밀린 잠을 몰아서 20시간씩 자곤 했다. 이러고도 과연 내가 사람인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와우의 컨텐츠는 계속 업데이트 되고, 게임 속의 내 캐릭터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만 했으니까. 이러다간 평생 와우만 하며 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 정도였지만, 게임속 캐릭터가 강해질수록 내 본체는 점점 시들어갔다. 게임하다 죽은 사람으로 뉴스에 등장하고 싶지 않다면 더이상은 그만해야 겠다는 판단이 드는 순간이 왔고, 그때를 놓치지 않고 그만둘 수 있었음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와우는 여전히 훌륭한 게임이지만, 늙고 지친 나로서는 예전처럼 열정을 불태우다간 몸뚱이가 먼저 산화해버릴 것이다.

20대의 많은 시간을 게임하느라 보내버린, 어찌보면 한심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와우에 몰입한 덕분에 평생 가져갈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의 상자를 가지게 되었다. 웃음, 행복, 즐거움, 동료애, 뿌듯함, 성취감, 자신감, 우쭐함, 분노, 질투, 시기, 적개심, 계략, 복수 등등 온갖 감정들이 다 들어있는, 말로써 미처 다 설명할 수 없는 인생의 미니어처이다. 그저 잠시 지나치기만 했다면 이런 것들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 세계에 진심으로 몰입했기에 수많은 감정과 경험을, 그리고 사람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빠져들 수 있는 또하나의 세상을 창조해낸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 시나리오 라이터 등등 게임 개발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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