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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시 Jun 30. 2021

소똥 냄새의 슬픈 추억

알기 싫었던 인체의 신비



막내를 임신했을 때의 일이다. 매년 여름휴가는 시댁 방문 기간이라는 슬픈 불문율 탓에 임신 3개월 차에 접어든 그해도 찌는듯한 8월에 에어컨도 없는 시댁으로 향했다.


시댁이 멀어서 자주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번 가면 기본이 2박 3일이요, 2일 차 저녁 혹은 3일 차 아침부터 ‘왜 벌써 가냐’, ‘더 있다 가라’ 어택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남편이 알아서 잘 컷트해 주면 좋으련만, 기어이 내 눈에서 레이저빔이 나올 지경으로 남편을 째려보아야만 마지못해 자기 부모님께 완곡한 거절의 표시를 하곤 한다(그나마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


축산업에 종사하시는 시부모님 댁에 도착을 해서 차 문을 여는 순간, 학창 시절 과학실에서 실험할 때나 맡았을 법한 순도 100%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찢을 정도로 심하게 들이닥쳤다. 너무 따가워서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다. 그전까지 딱히 심한 입덧도 없었던지라 방심하고 있었는데, 짜잔, 없던 입덧이 갑자기 생겼습니다. 그 길로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뱃속에 있던 것들을 모조리 게워내었다. 콧구멍이 암모니아에 절여진 듯한 상황에서 도저히 이삼일 버틸 재간이 없었지만 이게 웬걸, 남편과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단다. 그냥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은은한 시골 소똥 냄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시부모님도 너는 왜 그리 별나게 구냐는 식으로 취급하셨다. 그때 깨달았다. 아, 임신 때문에 후각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이렇구나. 평소 부드럽게 눕혀져 있던 고슴도치 가시가 천적을 만나서 바짝 곤두선 듯한 느낌이랄까? 현대 의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신비한 현상이 왜 하필 나에게 닥친 건지. 그렇게 고통의 2박 3일을 채우고 나서야 눈물의 귀가를 할 수 있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시댁을 여러 차례 계속 방문했지만 그때처럼 강렬한 암모니아 냄새는 느낄 수가 없었다. 임신이 경험시켜준, 두 번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인체의 신비. 내 인생에 있어서 그때만큼 후각이 벼려지는 상황은 그 이전에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영영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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