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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시 Nov 02. 2021

내일은 내일의 내가 어떻게든 하겠지.

미래의 나여, 잘 부탁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일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에 어린이들 셋 차례로 시간차 등교/등원시킨 뒤

집에 와서 또 남편 밥 차려주고 뒷정리+설거지.

애들 관련 병원 두 군데 가서 대기했다가 상담하고

집까지 걸어와서 바로 유치원 하원 버스 픽업.


집에 와서는 막내 간식 먹이고 공부 봐주고 놀고

고양이 응가 전용 쓰레기통 비닐봉지 터져서

난리 난 거 수습하고 쓰레기통 구석구석 씻고 닦고…

고양이 빗질하고 나서 털이랑 모래 튄 거 다 청소.


그러고 나서 건조기 돌아간 옷들 개키고 걸고 정리.

너무 피곤해서 쓰러지듯 잠깐 잠들었다.

병원 전화받고 후다닥 깨서 애들 밥 챙겨주고,

새로 주문한 핫팩이랑 마스크 포장 다 뜯어서

하나씩 빼서 쓰기 좋도록 신발장 안에 세팅해두었다.

내가 이런 수고하는 것 아무도 몰라주고

마스크도 핫팩도 항상 원래 그 자리에

당연히 있는 거라고 생각하겠지.

짧은 우울감이 스쳐 지나갔다.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현관 싹 쓸고 신발 정리했다.

안 쓰는 아기 변기 포함해서 쓰레기 분리배출하고서

버리려고 맘먹었던 책꽂이랑 원목 장난감 몇 개도

카트에 낑낑대며 싣고 날라 옮겼다.


그러고 집에 왔는데 씻어서 말리고 있는 쓰레기통에

비닐도 없이 고양이 배설물 덩어리를 투척해놨네?

겨우 씻어놓은 휴지통 구석구석 요철들에

또다시 잔뜩 낀 녹아 붙어 덩어리진 모래들

치워도 치워도 끝없는 게 집안일이라지만,

굳이 안 해도 되는 일거리를

일부러 만들어 낼 필요는 없잖아.


휴지통 다시 청소하고 방 한 번 더 닦고,

뭔가 이상해서 보니 고양이 궁디털에

무른 변이 뭉개져 잔뜩 묻어있다.

할퀴고 물려가며 수습하고 나와서 내 몸 씻고,

세탁기 돌리고, 막내 재우려는데

중딩이가 방에 모기 있다며 뛰쳐나왔다.

중딩이에게 막내를 잠시 맡기고 전기 파리채 들고

방에 들어가서 대기 타고 살펴봐도 낌새가 없어서

부엌에 쓰던 포충기 분해해서 털고 씻어

중딩이 방에 넣어주니 그제야 안심하고 눕는다.


모기장 안에 누워 엄마 기다리던 막내를 재우고

거실로 나와 술 마시고 들어와서 목마를 남편이

마실 물을 식탁 위에 준비해 두고서

이제 끝나가는 세탁기를 기다리며 글을 쓰고 있다.

세탁기가 다 돌아가면 건조기로 옮겨야지.

건조기가 다 돌아갈 때까지 내가 깨있을 수 있을까?


대충 생각나는 것만 주절주절 적었는데 이 정도이다.


피곤하고 지치지만, 제일 힘든 건 내가 편하게

집에서 놀고먹는다고 생각하는 남편이다.


오늘 같은 날은 평소보다 좀 더 살기가 싫어진다.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라고 썼는데 00:30 남편이 왔고

당신은 사는 게 좆같을 땐 어쩌냐고 물어봤더니

(평소엔 욕 비슷한 말도 전혀 안 하고 지냄)

뭔가 심상찮은 낌새를 느꼈는지,

안 해도 될 말을 한 바가지 늘어놓는데……


괜히 말 꺼냈다.

결국 수습도 안 되고 2시 반이 넘어서야 끝났다.

기상 알람은 5시. 내일의 내가 하드캐리하는 인생.

언제까지 미래 기대수명을 끌어다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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