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뷰

언젠가 같이 살고 싶을 사람에게 띄우는 글

김하나 x 황선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by 효신

가족을 제외한 타인과 함께 산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다. 끽해야 대학 때 2인 1실, 3인 1실의 기숙사 정도. 동거의 경험이 별로 없음에도, 있는 동거의 경험도 꽤나 즐거운 경험임에도 나는 혼자 사는 것을 바라곤 했다. 외동으로 어릴 때부터 독립된 방 하나를 부여받으며 살아온 내가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좀 어렵긴 하다. 그러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집값과 그에 대조되는 나의 처참한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수입을 고려하면 과연 내가 혼자 살 수 있긴 할까 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이런 생각이 드는 와중에 읽은 이 책은 나에게 한 줄기 희망 같았달까. '아, 충분히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를 알려준.



동거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서로 라이프 스타일이 맞느냐 안 맞느냐보다, 공동 생활을 위해 노력할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을 것 같다. 그래야 갈등이 생겨도 봉합할 수 있다. (김, 테팔 대첩과 생일상 p.119)
서로 굳건하게 다르다고 생각했던 차이의 테두리는 함께 살면서 부딪쳐 깎여나가기도 하고 서로를 침범하며 약간은 형질 변화가 일어난다. 다른 사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같이 생활하는 일은 여러모로 가르침을 준다. 세상에는 나와 아주 다른 성향과 선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내던 나의 성격과 특질의 도드라진 부분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큰 배움은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도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황, 두 종류의 사람 p.35-36)


아무래도 내가 누군가와 같이 살기를 꺼렸던 것은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이 살면서 생길 수밖에 없는 생활의 잡음들을 마주하기 싫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주로 혼자 여행을 가는 건, 물론 혼자 여행 그 자체로도 너무 좋지만, 친구와 여행을 같이 가면 싸울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같이 산다는 건 같이 여행을 가는 것과는 수준이 다른 결정이고 어쩌면 둘의 관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대단히 신중한 결정이어야 하고 아무래도 삶의 방식이나 취향들이 나와 어느 정도 잘 맞는, 그래서 동거인으로서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사람이 동거인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과 황은 달랐다. 이들은 몇십 년 동안 알고 지낸 지독한 우정의 친구들도 아니고 그저 트위터로 우연히 만났을 뿐이며 함께 살면서 맞춰가야 할 부분이 훨씬 많은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각자 40년 넘게 혼자 살아온 경험이 있으니 타인과 삶의 공간을 공유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분명 함께 살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다.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하고 굳건히 쌓아 올린 내 생각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나와 다른 너의 모습에서 그동안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또 그 차이를 존중하며 그 과정에서 늘 너에게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얼마나 성숙하고 멋진 자세인가. 싸우는 게 싫어 싸움 자체를 피하기만 했던 나보다는 관계에 대해 훨씬 건강한 가치관을 가진 이들임에 분명하다.



내가 이제야 배운 싸움의 기술은 이런 것이다. 진심을 담아 빠르게 사과하기,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내 입으로 확인해서 정확하게 말하기,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려 어떨지 언급하고 공감하기. 누군가와 같이 살아보는 경험을 거치고서야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황, 싸움의 기술 p.114-115)
집안에 존경할 만한 사람이 사는 건 잔소리쟁이가 사는 것보다 천배는 동기 부여가 된다. 그렇게 동거인 눈치가 보여 꾸역꾸역 뭔가를 하더라도 결과는 모두 내 것으로 쌓인다. 더 나아진 체력, 더 많은 성과가 나에게 더 큰 뿌듯함과 동력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나는 종종 나에게 본보기가 되는 동거인의 존재 자체가 고맙다.(김, 같이 살길 잘했다 p.252)


오래 살면 살수록 내가 편하게 살아왔던 대로 굳어지기 쉬운데 같이 살면서 이들은 변화에 거리낌이 없었다. 같이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갈등 앞에서 싸움을 망설이지 않았고 단순한 싸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하면 더 함께 잘 살 수 있을지 끊임없이 배웠다. 책 내용 전반에 걸쳐 이들이 말하는 것은 우리는 함께 삶이 정말 잘 맞았다, 탈 없다의 나열이 아니라 어떻게 치고받고 살았는지 그 속에서 이 둘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현실감 있게 다루고 있었다. 함께 사는 동거인을 나의 본보기로 여기며 그를 통해 나를 비춰보고 배우며 그의 존재에 감사해 하는 삶이 되었을 때, 그때 진정으로 '아 나는 저 사람 아니면 다른 사람과는 살 수 없겠다'를 느끼지 않을까. 말 그대로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하는 사람. 게다가 소제목은 '같이 살길 잘했다'이다. 동거인과 네 번의 계절을 거친 후에 느낀 소회가 같이 살길 잘했다는 것이라면 앞으로도 그렇게 같이 살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대가족이 되면서 일이란 생기게 마련이고 우리는 그것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거기서 오는 안정감이야말로 가족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가족의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말이다. 우리는 서로 기대어, 또 종종 두 배로 기뻐하며 삶의 굴곡을 지날 것이다. (김, 대가족이 되었다 p.148-149)


사실 이들이 같이 삶으로써 장점으로 이야기하는 것들 중 하나는 '며느리로서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동거인의 가족에게 반찬이나 선물을 받아도 며느리가 아니니 이에 대해 어떠한 보답의 의무나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이들은 참으로 자유로워 보였다.


그러나 내가 더 부러웠던 것은 이렇게 함께 살 '친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혹은 누군가에게 그러한 친구가 되었다는 것. 며느리의 삶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이렇게 함께 살 친구가 있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능력이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 나를 선택했다는 것은 나 역시 좋은 사람이라는 의미일 테니까. 그 좋은 친구를 동거인으로 둘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게다가 어쩌면 피를 나눈 가족도 해줄 수 없을 삶의 안정감까지 서로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함께 살고 있는 '남'이기에 서로 조심하는 것들이 그들을 더욱 단단한 '가족'으로 묶어주고 있었다. 여러모로 부러운 인생이다. 직업적 성취나 삶의 안정까지 모두. 심지어 고양이도 네 마리나 있다.



잘 통하는 친구가 한 동네에 살 때 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다면, 그 친구가 아예 같은 집에 산다는 건 부담이 거의 0에 수렴하는 일이다. (황, 술꾼 도시 처녀들 p.191)


이 두 능력자들은 공통점이 꽤나 많고 그중에서도 둘 다 술을 좋아한다는 가장 큰 공통점이 있다. 세상에,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나만큼이나 술을 좋아하고 또 그렇게 술을 좋아하는 나와 함께 언제나 술을 먹을 술친구와 같은 집에 살고 있다는 것. 오바 쪼금 보태서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동거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는 것의 이점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 하나는 내가 책에 비밀스럽게 부여한 나의 감상을 책에 간직한 채 누군가에게 그 책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책을 읽으면서 김과 황처럼 같이 살 누군가가 생긴 내 미래의 어느 날을 상상하곤 했다. 남자 사람이라면 요원한 꿈이지만 여자 사람 친구와는 충분히 가능성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만 해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두어 명 있으니까. 언젠가 그와 함께 살고 싶을 때 조용히, 비밀스럽게 이 책을 건네야지. 같이 살자는 말을 하기는 좀 부끄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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