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은,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임신과 출산이라는 경험에 관한 여성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수록, 더 많은 여성이 선택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를 떠올릴 수 있는 것 같다. (p.41, 임신과 출산은 가족 드라마가 아니다)
지난번 우아영의 '아기 말고 내 몸이 궁금해서'를 읽었을 때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던 문장은 '임신이 완전히 주체적인 선택이 되기 위해서는 임신에 대하여 다각적인 정보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책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고르게 되었다. 세상에는 결혼 후에 아이를 낳아 기르는 부부에 관한 이야기만 너무 많다. 결혼 후에 출산을 하는 것이 이토록 당연한 나라에서 비출산 결정이 탄탄하고 굳건한 논리에서 내려진 결정임을 주장할 만한, 그에 인용될 만한 사례를 접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비출산을 말하는 것은 모두가 '네'를 외칠 때 혼자 '아니요'를 외치는 것만큼이나 외롭고 쓸쓸하기만 하다.
20대에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지만 절대로 낳지 말자는 생각까지는 하지 말자,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라는 태도로 살았어요. 그 후로도 저는 계속 '낳음'에 대해 두리번거렸어요. 정말 괜찮은 건가, 저게 내 것이 되었을 땐 어떨까. 하지만 점점 드는 확신은, 내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아이를 낳음으로써 불행해질 거라 생각하지 않고, 저기에 행복이 있을 수 있지만 그 행복은 내 것이 아니라는 거죠. (p.27 흔들림을 두려워하지 말 것, 인터뷰이 '도윤')
비출산 여성인 이 책의 저자 최지은 또한 외롭고 쓸쓸한 주장 속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여성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혼란 속에서 저자는 "'낳음'에 대해 두리번거렸다"라는 말에 그동안 명명되지 않았던 자신의 상태를 단박에 정리한다. 우리는 출산을 단호히 뿌리치지 못한 채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언젠가는 닿게 될 영역쯤으로 여기는 걸까. 내 몸의 결정권은 나에게 있는 건데 왜 비출산 여성은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거나 혹은 비출산을 선언한 여성은 왜 국가에 대한 의무를 져버리는 여성으로 평가받아야 하는지.
인터뷰이 도윤이 말한 것처럼 결혼과 출산이 가져다주는 행복이 분명 있지만 그것이 내 것으로 여겨지지 않을 수 있다. 이때 비출산 결정은 무한히 자유로워야 하며 한없이 존중받아야 한다. 가임기 여성 지도가 그려지는 대한민국에서 언제쯤 여성은 당당하고 떳떳하게 비출산을 외칠 수 있을까. "오늘 점심은 초밥을 먹을 거예요."라고 선언하는 것 마냥 자연스럽게 비출산을 공언할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고, 미안해할 일은 없다"고 강력히 선언하는 이 글을, 임신 중지를 경험했거나 고민하는 모든 여성과 함께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p.51, 임신 중지에 대한 생각)
그러니까 임신이든 임신 중지든 혹은 결혼 자체든 그 결정을 고민하는 중심과 근거는 항상 '나'여야 한다. 결혼해서 내가 행복하다면 결혼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충분한 논의 끝에 아이를 낳는 것이 행복하다면 임신과 출산에 따르는 그 모든 과정과 결과가 내게 가져다줄 행복의 합이 낳지 않음으로 인한 행복의 합보다 크다면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 누군가를 위해서 혹은 어떤 것을 위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임신과 출산에 이른 근거가 나로부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유발된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나 자신을, 내 몸과 마음을 내던지는 꼴이 될 것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그의 삶과 인생은 온전히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내 행복에 최선을 다하는 결정에 합리화는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엄마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내가 낳아 키우더라도 타인일 수밖에 없는 아이가 나의 희생을 바탕으로 자라며 내 바람과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나는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일까? (p.61, 엄마가 된다는 두려움)
우리 엄마는 내가 엄마 속을 썩일 때마다 "나중에 결혼해서 꼭 너 같은 딸 낳아라."라고 했고 어쩌면 그 말은 내가 비출산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요인 중에 하나지 싶다. 나는 나니까 나를 사랑할 수 있지만, 나같이 구는 타인을 무한히 수용하고 용납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내 자식이라면? 낳은 부모로서의 의무로 그 아이를 사랑하며 돌봐야 한다면? 게다가 그 애가 그냥 자라는 것도 아니고 자라는데 상당 부분, 어쩌면 내 인생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희생을 요한다면? 답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해도, 뒤집어 생각해도 답은 바뀌지 않는다. 낳지 않는다.
한 명의 생명체를 낳아 사회화된 사람으로 길러내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숭고한 일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어려운 일이고 책임감을 갖고 접근해야 하며 단순히 먹이고 입히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실 나는 내가 누구를 인간으로 키울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 모르겠다. 나 자신의 인생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는 내가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는 그야말로 핏덩어리를, 나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의지할 구석이 없는 존재를 나는 지켜낼 자신이 없다. 만약 누군가 아이를 낳는다면 부모가 될 이는 아이를 키워낼 경제적 여유뿐만 아니라 아이에게 사회적, 물리적, 심리적으로 안전지대를 제공할 만큼 성숙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그 정도로 성숙한 인간이 아니기에 이런 내가 아이를 낳는 것은 나에게도, 그리고 태어날 자식에게도 불행이 될 뿐이다. 절레절레.
출산과 육아로 2년 쉰다면 수입이 없어진다는 문제도 있지만, 그 시간 동안 일하면서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그것과 맞바꿀 가치가 있는지, 제가 한국 사회로부터 설득당하지 못했어요. (p.220, 비출산과 커리어의 상관관계, 인터뷰이 '재경')
출산은 단순히 출산으로 그치지 않는다. 출산과 육아를 선택함으로써 여성이 잃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모든 것을 '엄마'라는 피상적이고 공감할 수 없는 숭고함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 여성의 정체성은 엄마 하나뿐일 수 없으며 무수히 많은 그의 정체성 속에 엄마가 존재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엄마가 되지 않아도 여성은 그가 바라는 어떠한 모습이든 될 수 있으며 되어야만 한다. 가족을 꾸리는 것보다 개인이 그리는 자신의 이상향에 다가가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으며, 이상향을 성취하는 것에 저해될 수 있는 요인은 미리 걸러낼 수 있는 자유와 권리, 책임이 있다.
많은 인터뷰이들이 비출산을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로 스스로의 커리어를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을 언급했다. 나 역시 출산과 육아가 가져다줄 막연한 행복과 그로 인한 벅차오름의 순간들보다는 내가 맡은 일을 척척해내며 능력치를 키우며 성장하고 싶다. 아이를 키워내는 것도 멋진 일이고 박수받아 마땅하지만 나는 내 인생을 내가 아닌 타인을 길러내는 것에 바치기보다는 어제보다 발전한 오늘의 내가 되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 한국 사회가 부모, 혹은 엄마로서 나의 성장과 아이의 성장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면 당연히, 일말의 고민 없이 나를 선택할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순수하게 경제적인 관점에서, 혼자 버는 것보단 둘이 버는 게 낫기에 결혼은 이득일 수 있다. 하지만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부부의 노동이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될 때, 가족 부양을 위해 그지같은 회사 생활이더라도 내던져 버릴 수 없을 때 내 어깨에 짊어진 생계라는 짐은 불행이 될 뿐이다. 비출산의 삶을 살고 있는 인터뷰이들은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나름대로 넉넉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이는 두 사람이 벌어들이는 수입을 두 사람의 삶에만, 혹은 자신의 이상향을 성취하는 데에만 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자 최지은이 말한 것처럼, 나 또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돈 때문에 하지는 않아도 된다'라고 말할 수 있는 파트너이고 싶다. 돈을 벌어야만 하는 삶이 아니라 돈을 벌 수도 안 벌 수도 있는, 그런 선택지가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괜찮지 않습니다' 이후로 최지은의 책은 두 번째다. 여러모로 쉽지 않은 삶이지만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저자에게 감사하며 멀리서나마 응원을 보낸다. '비출산'이라는 결론에는 공감대가 있었지만 그 삶을 살아보지 않는 나에게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나눠준 17명의 인터뷰이들에게도 이 글을 통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이가 있어야 이혼하지 않고 잘 산다'라는 말은 아이를 수단으로 생각할 뿐이라는 말이 맴돈다. 늘 느끼지만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아직도 배울 점이 많고 그래서 타인의 시선과 관점을 갈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참 고마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