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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심연 Jan 03. 2023

식어버린 붕어빵

2호선 당산역에서

2호선 당산역. 버스로 환승하러 가는 길을 걷고 있자면 시리도록 청량한 늦가을의 공기 속에 낯익은 냄새가 함께 풍긴다. 불판 위에 고루 기름칠을 하고 그 위에 밀가루 반죽을 부어 노릇노릇하게 굽는 냄새. 붕어빵이다. 계속 풍겨오는 붕어빵 굽는 냄새에, 붕어빵 속에 도사린 팥 앙금의 달콤함마저 혀끝에 감도는 것만 같다. 그 냄새에 반쯤 홀린 듯 노점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흘끔, 버스 정류장의 전광판을 쳐다본다. 버스가 오기까지는 십 분 정도 남았다.


나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지갑을 만지작거렸다. 붕어빵을 사갈까, 말까. 사간다 한들 집에 도착하려면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해서 삼십 분은 족히 걸릴 테니, 다 식어서 눅눅해진 붕어빵이 되어있을 게 뻔했다. 잠시 어제의 기억을 떠올린다. 이 계절 쯤 되면 슬슬 장사를 시작할 만 한데, 퇴근길에 살펴봤을 때 우리 집 인근에는 그 어디에도 붕어빵 노점이 없었다. ‘혹시 오늘은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해본들 없던 노점이 순식간에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을 꺼내들고 붕어빵 노점 앞으로 향했다.


“붕어빵 오천 원 어치 주세요.”

“붕어빵 열 마리 주문 받았습니다.”


붕어빵 장수의 시원스러운 대답과 함께 갓 구워진 따끈한 붕어빵이 종이봉투에 담기기 시작한다. 얼마지 않아 바스락, 종이가 가볍게 구겨지는 소리와 함께 내 품에 붕어빵의 온기가 닿아온다. 그 온기에 나는 어김없이 어느 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 외할아버지가 주신 용돈으로 붕어빵을 사먹었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엄마는 “엄마 몫은 안 사왔어?”라며 크게 서운해 했다. 그 기억이 어찌된 일인지 머릿속에 박혀 떠나질 않아, 이 계절만 돌아오면 나는 질리도록 붕어빵을 사간다. 나도 모르게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고 있는 걸까.


유년 시절 나는 엄마에게 숱하게 미움 받았다. 말 잘 듣고, 조숙하고, 착한 아이라는 칭찬을 귀가 아프도록 듣고 큰 내가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다음의 세 마디였다. “내 인생이 너 때문에 망했어.” “내가 너 때문에 이러고 살아.” “너만 아니었으면 진작 승승장구하고 살았어.” 엄마는 미혼모였고, 나는 꽤 어린 나이에 이 사실을 알게 됐다. 한 때는 엄마의 말처럼 내 탄생 자체가 엄마에게 죄를 지은 거라 생각했던 적도 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엄마를 이해한다. 미혼모라는 입지로 한국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게 정말 힘들었을 거다. 마땅히 스트레스를 풀 대상조차 나밖에 없어 내게 그런 모진 말을 했던 게 아닐까. 또한 추측이지만, 엄마는 양육보다 자기 인생을 더 중요히 여기는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청소년일 때 엄마가 여러 번 가출했던 것부터, 지금도 엄마 빚을 내가 갚고 있는 것까지 헤아려보면.


그러나 이런 이해의 단계에 오기까지 나는 너무 먼 길을 돌아왔다. 그리고 그 길은 원망과 증오, 미워하는 마음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엄마가 나를 미워하는 만큼 나도 엄마를 미워했다. 엄마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면 무력하게 울던 나도 나중에 가서는 마주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렇게 오래도록 서로를 미워한 세월, 지금은 하루에 서너 마디를 나누면 정말 오래 대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서먹한 사이가 되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엄마가 여전히 밉냐고 물어본다면, 응어리져 있는 무언가가 남아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붕어빵을 짓눌러도 잘 뭉개지지 않는 팥 알갱이처럼.


어느덧 식어버린 붕어빵을 품에 안고 걸어가는 길. 내가 보낸 메시지로만 가득한 엄마와의 문자 기록을 보다가, 습기에 젖어 눅눅해진 봉투를 열어 붕어빵을 한 개 꺼내 입에 물었다. 식어서 물컹물컹해져버린 반죽의 식감이 입 안을 괴롭힌다. 다 식어빠진 반죽 사이로 아직 미지근한 앙금이 입 안을 잠시 데울 뿐. 얼마간 입 안을 맴돌던 온기를 입김으로 뱉어본다. 입술 밖으로 새어나온 미지근한 입김이 서늘한 바람 속에 스며들어 금세 사라지고 만다. 이 모든 게 미움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오래 곱씹고 나면, 남는 것은 결국 미지근한 권태감뿐이니까. 나는 오늘도 가슴 한 구석에 식어버린 붕어빵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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