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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심연 Jan 03. 2023

선풍기가 고장난다하여도

사랑하는 이모의 부재를 그리며

선풍기 날개가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죽을 것 같은 무더위에도 나는 선풍기 전원을 껐다. 먹먹하고 어두운 여름밤에 오래도록 잠들지 못하고 갇혀 있었다.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고 귀가하며 시끄럽게 떠드는 동네 남자들의 소음이 정적을 깼다. 그 소음에 나는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다. 푹푹 찌는 더위에 숨이 턱턱 막혔지만 땀보다도 눈물이 먼저 나왔다. 나는 소리 없이 울며 휴대폰을 켰다. 이제는 ‘알 수 없음’이라고 뜨는 사용자와 나눈 메시지를 본다. 몇 번이나 곱씹은 건지 내용을 다 외웠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읽었다. 대체로 세금과 공과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게 전부였으나, 드문드문 사적인 얘기가 끼어있었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 보고 싶다는 말, 언제 한 번 놀러오라는 말, 잘 지내냐는 안부, 전부 내가 먼저 보낸 메시지가 아니었다. 나는 항상 무엇이든 받기만 하는 입장이었다. 그마저도 최근으로 올수록 나눈 메시지가 적어졌다.


‘울 유정이 이모가 사랑해’


둘째이모를 영영 볼 수 없게 된 날로부터 두 달 전에 온 메시지였다. 그에 대한 내 답장은 없었고, 스크롤은 그곳에서 끝이 났다. 나는 한참이나 손톱으로 화면을 긁다가, 그 메시지 위에 있는 메시지를 본다.


‘이모가 미안한데 4만 원만 빌려줄 수 있을까? 이모 선풍기 좀 사게. 너무 더워서’

‘아ㅠㅠ 저도 지금 월급일 아직 안 돼서 잔고가 딱 교통비만 남아있어요’

‘알았어 더위는 좀 참을게 이모가 미안... 기말고사 잘 봐^^’


나는 결국 장마처럼 눈물을 쏟았다. 그까짓 4만 원이 뭐라고, 가족들과 다투고 떨어져 살았던 둘째이모가 유일하게 손 벌릴 수 있는 사람이 나였는데. 내가 어디에 빌려서라도 줬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가는 길 조금이라도 선선했을까. 더위에도 조금은 덜 썩었을까. 갖은 후회가 홍수처럼 범람했다. 머리가 온통 어지러웠다. 나를 미치게 만드는 건 이 무시무시한 더위가 아니었다. 선풍기 소리. 옆방에서 들려오는 선풍기 소리였다. 나는 옆방의 선풍기까지 꺼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나의 잘못과 미련과 괴로움이 다른 가족까지 괴롭혀서는 안 됐다. 이제 겨우 다들 그 일을 마음속에 묻고 일상에 안착했는데. 간혹 괴롭다 할지라도 웃으면서 둘째이모와의 추억을 얘기할 수 있을 만큼 회복했는데.


나는 새우처럼 누운 채 머리를 싸맸다.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은 끔찍한 기분이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에 열이 오르는 나머지 팔다리가 저릴 지경이었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약 이 년 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그 즈음, 선선한 바람과 함께 둘째이모의 사망 소식이 실려 왔다. 외할머니는 쓰러지셨고 엄마와 이모들은 울었다. 나는 그 가운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하니 있는 게 고작이었다.


둘째이모의 시체는 심각하게 부패된 채로 발견됐다고 관할 경찰서 형사가 말해주었다. 사망 추정일은 대략 8월 말 무렵. 9월까지도 여름이 길게 지속되듯 더웠기 때문에 부패 속도가 더욱 빨랐을 거란 말 역시 들었다. 지역 병원 영안실에 비치된 시체조차도 우리는 볼 수 없었다. 성인 남자가 보기에도 역하고 힘들고 무섭고 충격적일 만큼 시체의 부패도가 심각해서, 노모는 물론이요 성인 여자인 자매들도 보지 않기를 원한다는 형사의 말 때문이었다. 외할머니는 끝까지 보겠다고 의견을 피력하시다가, 또 쓰러지면 큰일이라는 만류에 끝내 포기하셨다.


타살이나 자살의 흔적은 없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그렇다면 조속히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해서 보내주고 싶다는 게 우리 가족의 뜻이었다. 하지만 형사는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다. 썩은 내가 진동한다는 옆집의 항의에 둘째이모 집 문을 열고 들어간 집주인이 시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를 했기 때문에, 사건으로 접수가 되어 부검까지 진행해야 한다는 게 경찰 측의 입장이었다. 외할머니는 또 오열하셨고 엄마와 이모들은 그런 외할머니를 수발하느라 정신없었다. 그 모든 혼란 속에 나는 꼭 길을 잃은 듯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부검 결과 부패가 심각해서 사인을 밝혀내기 어렵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도, 첫째이모가 대표로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왔을 때도, 둘째이모의 유품을 닦고 햇볕에 잘 말려 썩은 내를 없앤 날에도 나 홀로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았다.


그런 나를 현실로 끌어들인 건 지난날 나눈 메시지와 선풍기 소리였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뒤늦게 울었고 늦게까지 괴로워했다. 그러니 지금까지도 눈물로 이 밤을 지새우고 있지 않은가. 나는 한참을 정신없이 눈물을 쏟다가 탈진하듯 눈을 감았다. 그 잠시간의 더위에도 지친 건지 몸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선풍기를 끝내 켜지 못했다.


아마도 나는, 선풍기가 고장난다하여도 영영 새로 사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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