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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심연 Jan 04. 2023

빈 문서 (1)

2015, 스무 살에 썼던 자전적 소설

불 꺼진 거실 가운데 허여멀건 빛이 점멸하고 있었다. 이제 갓 소녀의 나이를 벗어나 이십 대의 문턱에 선 여자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빈 문서를 한참이나 무서운 기색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길쭉하고 둥그런 계란형 얼굴을 감싸고 있는 짧은 단발. 미지근한 공기가 감도는 어두운 거실 속에서 덩그러니 놓여있는 컴퓨터 모니터가 발사하는 빛을 받아 형태가 드러난 그 얼굴은 그리 유쾌한 인상이 아니었다. 오밀조밀 좁게 위치한 이목구비부터 깊게 팬 미간, 부라린 작은 눈과 꾹 다문 오리 입술에서 무뚝뚝함과 까다로움이 묻어났다. 그녀는 몇 분 동안 그 자세와 표정에서 미동도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 본다면 그녀 주위의 시간만 멈춰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곧 그녀가 움직였다. 정확히는 눈동자만 움직였다. 움직인 눈동자는 컴퓨터 본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전원이 나가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불안하게 모터 소리가 울려오는 탓이었다.


“그렇게 노려보고 있으면 글씨가 저절로 써져?”


컴퓨터의 본체 깊숙이에서 진동하는 모터 소리만 가득했던 정적을 뚫은 건 아직 앳됨이 묻어나는 변성기 소년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여자의 고막을 날카롭게 쿡쿡 찔렀다. 여자의 굳은 인상에 드디어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그녀는 미간을 단숨에 찌푸린 채 입술을 악물고 모니터에 못 박혀 있던 시선을 돌려 자기 동생을 노려보았다. 이제 여자보다 한 뼘 정도 키가 커졌을까, 소년은 그의 누나가 자신에게 쏟아붓는 매서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슬렁어슬렁 걸어 부엌의 냉장고를 열었다. 아마도 먹을 것을 찾는 듯했다. 냉장고 속을 탐색하고 여느 때처럼 그럴듯하게 허기를 달랠만한 군것질거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냉장고 문을 닫을 때까지 여자의 시선이 끊이지 않자 소년은 냉장고를 닫으며 “뭐.”라는 한 마디를 뻔뻔스럽게 내뱉을 뿐이었다.


여자는 인상을 찡그릴 대로 찡그린 채 소년을 바라보다가 결국 그렇게 인상을 구기고 노려보는 것을 포기했다. 계속 다물어져 있을 것만 같았던 입술이 열리며 한숨이 길게 새어 나왔다. 피곤과 고뇌에 젖어 흐릿한 검은 눈이 정처 없이 흔들리다가 다시 빈 문서에 고정되었다. 글자 하나 적히지 않고 정직하게 텅 빈 문서를 보자 다시 기분이 암담해졌다. 그것은 마치 지금 자신의 머릿속이나 황량한 마음속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보드에서조차 손을 뗀 채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괜히 마우스를 붙잡고 마우스 휠을 위아래로 굴리는 것을 반복했다. 그렇게 하면 판타지 소설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빈 문서에 저절로 글이 나타나기라도 할 것처럼. 하지만 되돌아온 건 정신없이 시시각각 발광하여 눈을 아프게 하는 모니터 화면밖에 없었다.


결국 마우스를 움직여 저장 버튼을 눌렀다. 이 텅 빈 문서에 그럴듯한 제목이라도 붙여주고 저장해두면 그 제목을 보고 무어라고 첫머리가 트이지 않을까 싶은 일말의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큰 고민이 되어 다가왔다. 어떤 글이든 제목과 첫머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스무 살까지 쌓아온, 또래보다는 비교적 풍부한 독서 경험과 어설프게나마 글쓰기라는 걸 흉내 내어 써본 짤막한 글 쪼가리들을 다듬으면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어떤 것이든, 특히 그것이 예술 가치를 논할 만한 대상이라면 비로소 이름이 붙여져 있을 때 번듯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무제인 상태로 심미를 만끽할 수 있는 것도 있다지만 이 빈 문서에 써 내려질 글만큼은 그런 것이 전혀 아니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아직 한 글자도 쓰지 못했지만, 이 새하얀 빈 문서에 곧 가득 채워질 이야기들에는 무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게 좋을까. 그걸 고민하는 새에 시각은 벌써 자정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기 울음소리가 난다. 그 소리는 안방 문이 열리면서 적막한 거실을 채워나갔다. 아기를 어르는 다정하고 애달픈 이모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겨우 붙잡고 있던 집중의 선마저 완전히 손끝에서 떠나가 버렸다. 결국 오늘도 이렇다 할 수확은 없이 빈 문서를 닫았다. 손으로 마른세수했다. 한 건 없지만 열중만큼은 열심히 한 탓에 달아오른 얼굴이 차가운 손끝에서 서서히 가라앉아간다.


한참 얼굴을 감싼 자세로 앉아 있다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늘도 한 게 없다는 사실은 무기력감을 부추기는 동시에 마음을 다급하게 만들었다. 달력 앞으로 걸어갔다. 검지로 날짜를 세어갔다. 정확히 한 달이었다. 여자는 다시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사실 자신이 날짜를 착각한 것이었고 실제로는 하루 이틀 정도는 더 말미가 있는 거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얻은 것은 절망감 외에는 없었다.


주어진 시간은 이제 정확히 한 달. 오늘이 지나면 29일. 촉박했다. 역시 이대로는 안 될 일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라도 써나가야 할 것이었다. 그렇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애초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남이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조리 있게 풀어 쓴다는 건 어지간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자를 이렇게 고뇌에 젖게 만든 사건의 발단은 몇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자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고등학생이었다. 정확히는 전문학교로 진학하는 것을 자신의 진로로 정한 3학년의 소녀였다. 면접에서도 당당히 합격했고, 문제는 등록금과 학비였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이 그런 것처럼 소녀의 집도 그리 사정이 넉넉지는 못했기 때문에 등록금도 우여곡절 끝에 발 등에 붙은 불을 끄는 격으로 냈다. 그러나 비단 문제는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몇 개월 후의 이야기이긴 했지만, 언제까지고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비싼 학비가 문제였다. 국가 장학금이라는 것도 소녀가 진학하기로 한 전문학교는 노동부 인가의 교육기관이었기 때문에 받을 수가 없었다. 편부모 가정의 장녀인 소녀는 어렸을 때부터 집 안 가계부의 사정을 알고 있어 더욱 발만 동동 굴렀다.


그렇다고 뒤늦게 진로를 바꾸기에도 무리였다. 그러기엔 이미 늦은 것은 물론이요 문과였던 소녀가 뒤늦게 자기 적성과 꼭 맞는 과가 이공계 과라는 것을 깨닫고 교차지원을 하려고 했을 땐 전문대나 전문학교 외에는 교차지원을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따라서 처음에는 전문대에 갈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그 생각은 곧 접을 수밖에 없었다. 취업난이 벌어지는 요즈음 전문대에도 입시 불이 붙은 탓에 중상위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는 자신의 애매한 성적으로는 수도권 전문대 내에 겨우 턱걸이할까 말까 하는 수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도권과 그나마 가까운 곳에 진학한다고 하더라도 통학 시간이 문제였고, 그 이상으로 떨어진다면 자취까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였다. 무엇보다 소녀가 선택한 과는 이공계 중에서도 메이저에 속하는 전공이었기에 더욱이 합격률이 저조했다.


결국 여러 가지 생각 끝에 소녀는 다시 생각의 발단으로 돌아와, 국가 장학금 없이 학비를 어떻게 감당해 낼 것인가 고민하기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소녀는 어른들이라면 누구나 입이 닳도록 말하는 ‘수도권 내의 번듯한 대학에 반드시 진학해야만 좋은 인생을 살아간다.’라는 사회통념에 크게 얽매이지 않았다.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취업난이 극성인 지금, 소녀는 뒤늦게 재수하는 한이 있어도 취업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번듯한 4년제를 나와도 이렇다 할 능력이나 자격증, 요건이 없으면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낙엽과 같은 신세가 되어 버리는 지금이라면 특히 더. 물론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심각하게 나빠진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회복기를 거치며 공부에 전력을 쏟아부을 수 없게 된 상황도 그랬지만 소녀가 가진 소탈한 성격도 소녀의 생각에 영향을 미쳤다. 소녀가 얼마나 소탈했느냐면, 소녀의 고등학교 시절 소원은 그저 집에서 하루 내로 통학할 수 있는 대학에 다니는 것이었다. 다만 소녀가 사는 곳이 서울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랬기에 다른 고등학생들이 그렇듯이 수도권 내의 대학 진학에 얽매이게 되었다. 버스로 한 시간 또는 그 이상 걸리는 거리에 있는 제법 먼 고등학교에 통학했던 경험도 수도권 내의 대학으로 통학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워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이 인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과거도, 돌이킬 수 없는 선택도, 현실에 대한 탁상공론도, 불확정한 미래도, 취업난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소녀는 당장 눈앞에 닥친 학비 납부를 걱정해야 했다. 처음에는 휴학하면서 학비를 벌어가며 다녀야 할까 생각해보았다. 주변의 아는 선배들이 그러하듯이.


그러나 전문학교의 바쁜 사정이 그것을 봐주지 않았다. 전문학교는 취업을 뚜렷한 목표로 두고 전문적인 기술과 능력을 습득하는 곳이기 때문에 휴학으로 시간을 지체하면 낙오자가 될 거라고 교수가 말했다. 학비는 오로지 부모님에게 맡기고 2년, 혹은 3년―소녀가 진학한 과는 3년제였다―동안 무조건 배우는 데에만 힘쓰라는 것이 교수진 모두의 뜻이었다.


소녀는 오만하게도 처음에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어쩌면 믿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르바이트하면서 어떻게든 악착같이 공부하면 학비도 학업도 취업도 모두 손안에 쥘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현실은 냉담했다.


때는 수능이 끝나고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었던 날이었다. 벌써 대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집에서 나선 소녀는 오리엔테이션에서 진행된 수업 맛보기를 경험하고는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겠다는 생각을 고이 접어 대학 생활에 대한 설렘과 함께 머릿속에서 내다 버렸다. 소녀는 그 자리에서 교수의 말이 틀림없다는 것만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것과 동시에 어쩌면 전문학교는 취직이라는 틀에 맞춰 인간을 조립해내는 공장은 아닐까 하는 염세적인 생각이 드는 것을 간신히 떨쳐내었다. 비판은 하되 염세적이지는 말고, 힘든 현실에 좌절할지언정 그 끝에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돌리자는 것이 소녀가 갖고 있는 유일하게 큰 신념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소녀의 머릿속을 세게 후려치고 지나가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소녀의 외할머니였다. 소녀의 외할머니는 소녀가 가진 그 신념을 소녀의 마음속에 싹트게 해주었던 사람이자 소녀가 힘들 때마다 곁에서 손을 뻗어주었던 구세군이었다. 소녀는 정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외할머니를 찾아갔다. 그녀는 마치 소녀가 자신을 찾아오리라는 것을 예상했던 것처럼, 언제나 그랬듯이 소녀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다만 지금껏 조건이 없었던 도움과는 달리 이번에는 조건이 있는 특별한 지원이었다.


이것이 바로 갓 이십 대의 문턱에 들어선 여자가 컴퓨터 앞에서 빈 문서와 씨름하게 된 사건의 원인이었다. 여자는 첫 학년 첫 학기 학비를 받는 조건으로 외할머니의 일생을 장장 백 페이지 이상의 번듯한 글로 써오라는 일종의 대필 외주를 받았다. 그 일감을 얼마나 잘 해낼 수 있는지 설득하는 데에 얼마나 힘이 들었던가. 소설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삼류 글 쪼가리를 꾸준히 쓴 것을 뭐 대단한 걸 써본 것처럼 호언장담하며, 백일장 수상 경력과 함께 그럴듯하게 빚어내어 외할머니 앞에서 자신의 필력을 자신만만하게 피력했다. 하지만 도가 지나쳤던 탓일까, 외할머니는 굉장히 기대하는 눈초리였다. 괜히 오만을 떨었다. 그에 따른 후회가 극심하게 엄습했다.


그래도 처음 며칠은 그런 후회가 들지 않았다. 자신이 분명 기한 내에 반드시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부족한 글솜씨지만 전문가가 아닌 것치고는 일반인보다는 나은 축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맞춤법 역시 일반인보다는 잘 알고 있으니 걱정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외할머니의 일생에 대해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오랜 세월 여러 번 들어왔기에, 지금 당장 누군가가 외할머니의 일생을 전부 읊어보라 명한다면 그 자리에서 출생부터 유년기,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 전부 나누어 줄줄 이야기를 쏟을 수 있을 정도로 여자는 외할머니의 일생에 대한 것을 꿰차고 있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그것을 누군가에게 알아듣기 좋게 설명하는 것은 다르다고 했던가. 지금껏 그녀가 써온 것은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이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쓴 글이 전부였다. 남의 이야기를 타인이 읽기 쉽게 써 내려간다는 것은 자신이 써온 것과 방향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런 탓에 빈 문서를 켜둔 채 첫머리도 갈피 잡지 못하는 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그렇게 닷새나 지나버렸다. 차라리 이것을 물리고 마지막 겨울 방학 동안 뼈가 빠지게 일해서 학비를 미리 벌어두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자는 하루하루가 고뇌의 연속이었다.    

 

여자는 화장실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갔다. 누르스름한 형광등에서 품어져 나오는 빛이 화장실 안을 샛노랗게 비추어 눈이 따갑다. 칫솔을 들어 치약을 묻히고 이를 닦기 시작한다. 고상하게 표현해서 그렇지 실상 여자는 양치질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여름이라면 몰라, 겨울에는 저녁마다 냉기가 감도는 화장실에서 추위에 떨며 차가운 물에 양치질해야 한다는 사실이 하루 일상 중에서 가장 성가신 일이었다. 은둔형 외톨이 같은 생활에 심취하게 되는 방학이 오면 어김없이 귀찮아지는, 식사를 제때 챙겨 먹는 일보다 더욱더.


하지만 양치질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치과 치료비가 감당하지 못하게 나올 거라는 사실이 오늘도 그녀의 손을 움직였다. 여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게으름과 그것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귀찮음과 성가심, 그것이 자아내는 직무 태만과 일상 태만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역시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돈이 행복의 필수 조건이 되어 버린 세상. 돈으로 인해 인간이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으면서도 돈 때문에 인간이 인간이길 포기하게 되는 모순이 있는 현대. 그렇지만 돈이 없으면서도 행복한 사람은 무어며, 돈이 있는데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또 무엇일까. 언제부터 전자는 이 시대에서 보기 드문 사람이 되었으며 혹자에게는 행복의 가치를 모르는 기이한 사람으로 취급받으며 손가락질받게 되어 버린 걸까. 여자는 그런 생각으로 괜히 가라앉은 마음을 양칫물과 함께 뱉어내 버렸다. 이런 자신이 철학과에 갔다면 더없이 염세적으로 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같이.


화장실에서 나와 젖은 손을 대충 닦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뜨끈한 이불 속에서 애벌레처럼 몸을 잔뜩 말고 폭 한숨을 내쉰다. 복잡한 생각은 나중에도 실컷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당장 해야 할 일부터 고민하는 게 옳았다. 문득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일 년 동안 자신을 돌보아 주셨던 담임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쓸데없는 생각이 들면 그건 바쁘지 않은 증거라고 일침을 놓으시던 엄격한 목소리.


하지만 선생님, 바쁜 것이 도를 넘어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수준이 되면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여자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웅얼거리며 이불을 추슬러 덮었다. 내일부터는 반드시, 반드시 무어라도 써 내려가자. 그런 결심을 하는 것도 오늘로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선잠이 들락 말락 하다가 알람을 제대로 맞추었나 싶은 생각이 퍼뜩 들어서 잠이 깨어버렸다. 이불 속에서 손만 꺼내어 발밑을 더듬거렸다. 제법 한참을 더듬거린 끝에 스마트폰을 들어 여덟 시 알람을 제대로 맞추었는지 확인했다. 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늦어도 여섯 시 반에는 기상했던 때에 비하면 방학 동안 여덟 시에 기상한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었다. 여자는 그 사실에 다시 감사하며 동시에 인간의 수면권이 그럴듯하게 보장되지 않는 바쁜 현대인의 삶에 대해 연민을 느꼈다. 머지않은 미래에 사회로 나아가면 보장되지 않는 것은 비단 수면권뿐만이 아니라는 사실까지 상기하자 막연한 씁쓸함이 고개를 드는 것을 억눌렀다.


스마트폰 액정에서 점멸하는 푸른빛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그 빛이 스스로 꺼질 때가 되어서야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내일은 외할머니께 조언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자신의 주변에 있는 가까운 선배들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그들의 전공을 하나하나 되새겨보았다. 국어국문과나 국어교육과가 전공인 선배는 두엇쯤 되었지만, 문예창작과가 전공인 사람은 정말 한 명도 없었다. 자문할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건가. 자신의 좁은 인맥을 한탄하다가 이런저런 추억의 실을 따라 기억을 더듬은 끝에, 문득 중학교 때 문예창작과로 가겠다는 포부를 당당히 밝히던 옛 친구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는 것을 뒤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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