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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심연 Jan 04. 2023

공포

2020년, 치킨집에서 닭을 튀기며

금세라도 피부를 녹일 것만 같은 열기가 후끈, 마스크를 낀 얼굴을 엄습했다. 튀김옷을 입힌 생닭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이 생닭을 저 펄펄 끓는 기름으로 넣을 때, 실수로 손까지 같이 담그는 일을 상상한다.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이 손가락을 옥죈다. 후두부를 가격하는 듯 충격적인 통증에 기름에서 금방 손을 빼내었지만, 손에 들고 있던 생닭을 놓치고 만다. 기름 속으로 풍덩! 입수하게 된 생닭이 그 무게의 반동으로 기름방울을 사방으로 튀긴다. 그렇게 튀어버린 기름방울에 얼굴까지 점점이 얕은 화상을 입고 만다. 급하게 찬물로 씻어 내려 보지만 이미 손가락은 살이 서로 붙어버렸고, 얼굴은 화상 부위가 붉게 달아오른 상태다. 안 그래도 보잘 것 없는 얼굴에 얼룩덜룩한 화상이라니. 그보다 더 문제인 건 손이었다. 손을 화상으로 잃으면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글을 쓰는 일도 더는 못할 거고, 펜을 잡고 그림을 그리는 일도 더는 할 수 없겠지. 그렇게 된다면 가정형편이 나빠 대학을 자퇴하고 생계전선에 뛰어든 내가, 일을 하면서도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준 사이버 대학교마저도 더는 못 다니게 될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화상을 입은 손으로 일을 더 할 수 있는지도 문제다. 그런 생각까지 들고 나니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왜 나는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게 되는 걸까? 이를테면 카페에 가서도 계단을 오르다가 쟁반을 엎어버리는 상상을 하고 말이야.’


그렇게 자책해 봐도 달라질 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튀김옷을 입힌 이 생닭을 저 악마의 구렁텅이 같은 기름 속으로 집어넣어야만 했다. 이 일터는 성수기에는 치킨을 하루 평균 오십 마리, 많게는 팔십 마리에서 백 마리까지도 판매하는 지점이었다. 그런 지점에서 인건비를 아낀다고 사람을 둘밖에 쓰지 않으니 주방에서 망설일 시간 같은 건 없었다. 지금 당장 닭을 넣지 않으면 자연히 대기 시간이 길어져 손님에게 클레임이 걸릴 것이 틀림없었다. 한국인들은 특히나 빨리빨리의 민족이니까.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게 느껴진다. 어제 갈아버린 기름인 데도, 치킨을 여러 마리 튀기다 보니 벌써 산화되어 많이 까매졌다. 아직 닭을 못 튀길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 끓는 기름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온 몸에 끈적끈적하게 붙어 피부를 녹게 만드는 약품도 이 펄펄 끓는 기름보다 무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유정 씨, 뭐해? 얼른 닭 튀겨야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주방장님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놀라 생닭을 기름에 그대로 떨어트려버렸다. 우려한 일 중 하나가 벌어지고 말았다. 여기저기 튀는 기름방울이 팔뚝과 얼굴을 강타했다. 피부가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에 눈물이 찔끔 나온다. 아니, 실제로 조금은 타들어 갔을 지도 모른다. 180도가 넘는 온도의 기름방울이 튀었으니.


고통스러운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바로 개수대로 가서 기름이 튄 부위를 한참 찬물로 씻는다. 벌써 벌겋게 물집이 잡혔다. 이 정도로 끝난 걸 감사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내가 다친 것보다도 중요한 건 닭이었다. 주방장님을 쳐다보니 그는 이미 내가 넣다 만 절단육을 기름에 능숙하게 넣고 있었다.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는지. 나는 기름에 닭을 넣을 때마다 끔찍한 상상들이 떠올라 버틸 수가 없는데.


얼음팩을 가져다 화상 부위를 냉찜질하기 시작했다. 주방장님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와 화상 부위를 살피곤 조금 쉬고 있으라며 주방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런 그를 바라보니 문득 예전에 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자신도 기름이 튀는 걸 무서워했는데, 하도 튀다보니 아픔에 익숙해져서 기름이 무섭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게 과연 가능한 걸까? 공포라는 감정에 무뎌지고 익숙해진다는 건 어떤 걸까? 나는 당장 이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에 펼쳐진 으슥한 골목길을 혼자 걸어가는 것으로 하루의 마지막을 공포로 장식하는데 말이다. 뇌를 저릿하게 자극해오고 심장을 불안정하게 뛰도록 만드는 그 악랄한 감정에 익숙해진다는 건, 어쩌면 내 평생의 난제로 남아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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