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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대표 Dec 20. 2024

1-1. 곤두박질 그래프와 쌓여가는 반품 박스

위기의 CEO 아린

끝없이 추락하는 그래프

커피잔을 옆에 둔 채, 아린은 노트북 화면 속 매출 그래프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한때 희망차게 상승 곡선을 그렸었는데, 이번 달 들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그래프의 끝자락에서 빨간 글씨로 찍힌 ‘-38%’는 비수가 되어 그녀의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다.

아린은 마우스를 움직여 새로고침을 반복했다. 그저 잘못된 수치일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몇 번이나 새로고침 버튼을 눌렀지만 숫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차갑게 내려앉은 빨간 숫자는 “이게 현실이다”라고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그녀는 속으로 되뇌었다.

눈을 부릅떠보았지만, 그래프는 점점 더 또렷하게 보였다.

책상 옆에는 빼곡히 쌓인 서류 뭉치들이 차곡차곡 그녀를 압박하고 있었다. 택배 반품 목록, 손상된 상품 신고서, 고객 불만 사항까지, 모두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서류들이었다. 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고 싶었지만, 잔을 들어 올리던 손이 중간에서 멈췄다. 잔 속 커피는 이미 식어 있었고 그녀의 마음을 더욱 서늘하게 만들었다. 옆에 켜 놓은 메일창에는 끝도 없이 쌓인 고객 메시지가 빼곡히 보였다. 제목만 보아도 어떤 내용인지 알 것 같았다.


‘배송 지연 관련 문의’

‘상품 파손 보상 요청’

‘환불 접수 완료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천천히 의자에 기댔다. 머리를 젖힌 채 천장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왜 이렇게까지 된 걸까...”


감당할 수 없는 요청들


“대표님, 잠시 시간 되실까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갑작스레 정적을 깨뜨렸다. 문틈으로 직원이 얼굴을 내밀었다. 아린은 갑작스레 고개를 들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녀는 평소보다 낮고 침착한 톤으로 물었다.


“오늘 반품 들어온 수량이 어제보다 두 배로 늘었어요. 그리고요...”

직원의 시선이 서류를 넘기며 조금씩 떨렸다.


“고객센터에서도 더 이상 클레임 처리 못 하겠다고, 팀에서 한계를 넘었다고 하네요.”


아린은 가만히 눈을 깜박이며 직원의 말을 들었다.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졌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오히려 울림처럼 커졌다.


‘한계를 넘었다고?’


“...알았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녀는 겨우 짧게 대답을 내뱉었다. 직원이 나가고 문이 닫히자마자 그녀는 의자에 깊이 몸을 묻었다. 책상 위에는 아직 처리하지 못한 반품 요청서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화면 속 그래프는 여전히 그녀를 조롱하는 듯했다. 사무실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 누구의 시선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침묵과 서류를 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한때, 이 공간은 활기와 웃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가 함께 목표를 위해 움직이며, 그녀 역시 손을 멈출 틈도 없이 행복하고 바쁜 나날을 보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녀는 혼자였다.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것들

책상 한쪽에 쌓인 반품 목록을 집어 들었다. 서류 한 장 한 장이 손끝에 닿을 때마다 마치 무거운 돌덩이를 들어 올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쓸모없어.”


그녀는 낮게 중얼거렸다.

이 물건들은 한때 그녀의 모든 열정과 꿈이 담긴 것들이었다. 밤을 새우며 디자인을 고민하고, 직접 손으로 포장을 만들며 완성했던 물건들. 고객들에게 보내질 때마다 작은 편지를 함께 넣으며 마음을 전했다.


“당신의 하루를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길 바라며...”


그녀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들은 그녀에게 실패의 잔해로 돌아오고 있었다. 찢어진 포장지와 손상된 물건, 고객들의 냉정한 메시지가 쌓인 목록은 그녀의 자존심을 밟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손에 든 반품 목록을 내려다보았다.


“불량이라니... 어떻게 이걸 버리냐고.”


그녀는 속으로 반박했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목록을 다시 내려놓으며 손끝을 내려다봤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변한 거지.”


그녀는 머리를 감싸며 스스로를 질책했다. 한때 고객들의 감동과 웃음이 담긴 사진을 SNS로 받아보며 뿌듯했던 마음은 이제 사라지고, 대신 끊임없는 클레임과 반품 요청이 자신을 감싸고 있었다.


‘내가 실수한 걸까? 내가 부족한 걸까?’


하지만 생각할수록, 그녀는 더 깊은 무력감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정함조차도 버겁다

정적 속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 화면을 내려다보니 남편 서준의 이름이 떠 있었다.

그녀는 전화를 받을까 말까 망설였다. 하지만 화면이 계속 깜빡이는 것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어디야?”


서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다정했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 답했다.


“사무실. 아직 일이 쌓여 있어.”


“점심은 먹었어? 아니면 잠깐이라도 나와서...”


그의 목소리는 따뜻했지만, 지금의 그녀에게는 그 다정함조차 견디기 힘들었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나 바빠서 그럴 시간 없어.”


그녀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준의 목소리는 원래 그녀에게 위로가 됐다. 일이 힘든 날에도 그와의 대화는 그녀를 다독이는 작은 쉼터와도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 다정함이 오히려 자신의 처지를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는데...’


아린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창밖에는 여전히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과 싸늘한 겨울바람 불고 있 뿐 그곳에서도 위로와 안정을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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