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명절 스케줄을 소화하고 돌아오던 차 안. 고단했던 난 남편에게 소소하게 투덜댔고 남편은 다 그런 거지 뭘 그런 걸로 그러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 아니 내가 뭘 어떻게 해달라고 했던가... 그저 들어주고 공감만 해주면 되는 것을... 서운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고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바로 입을 닫아 버렸다. 며칠 후 감정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을 때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명절 동안 고생했는데 달달한 커피 한잔 사주면서 그냥 들어주는 게 그렇게 힘든 거냐고... 며느리로서 역할을 안 한다는 것도 아닌데 그럼 나는 당신 아니면 누구한테 이런 얘기를 하냐고... 앞으로 이런 일 있을 때는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그날 이후 명절 마무리는 늘 달달한 커피 한잔으로 하곤 한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그전처럼 서운했던 부분들을 구시렁거리며 늘어놓는 일 따윈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렇게 난 그냥 커피 한잔이면 되는 쉬운 여자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내가 불평불만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들은 하나도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걸 묻는다면 커피를 빼놓을 수 없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도 모두 한 번에 맞출 수 있는 아주 쉬운 문제일 것이다. 처음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건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그때는 믹스커피를 마셨다. 우리나라에 어딜 가나 아메리카노를 접할 수 있었던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대 때 카페에 가면 블루마운틴을 즐겨 마셨고 아주 가끔은 향 커피 헤이즐넛을 마셨다. 커피맛을 엄청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나는 커피를 마실 때 기분이 좋아지고 차분해지면서 편안함을 느낀다. 맛도 맛이지만 향에서 전해지는 느낌인 것 같다.
하루에 두세 잔은 기본으로 마신다. 피곤한 날이나 사람을 많이 만나는 날은 더 마실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속에서 쓴맛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더 마실 수도 있지만 몸을 위해 참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제하곤 한다. 친한 지인들은 몸이 아파도 링거에 커피 넣어서 혈관으로라도 마실 거라며 농담을 한다. 그만큼 애호가인 내가 커피를 향한 마음은 강박 or 집착 그 어디쯤인 것 같다. 건강 생각해서 좀 줄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변명처럼 나는 몸에 안 좋은 거 하는 거라고는 커피 마시는 것뿐이라고 말을 한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건강 상하게 하는 행동은 잘 안 한다는 핑계를 대곤 하지만 나도 좀 줄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긴 하다.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나는 주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더운 여름에도 뜨아를 마실 정도로 커피는 뜨거워야 제맛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스트레스가 많거나 몸이 피곤한 날은 달달한 커피를 마시기도 하지만 절반 정도 마시다 보면 아메리카노를 시킬걸... 하고 후회한다. 식사를 하다가도 커피 생각이 나면 배가 어느 정도 찼다고 보면 된다. 뷔페에서 식사를 할 때 한 접시를 먹고 나면 항상 커피를 같이 가져와서 마시면서 식사를 한다. 그러면 식사가 더 맛있어지는 효과가 있다. 친한 지인들은 나한테 부탁할 일이 있으면 항상 커피를 사들고 온다. 다른 그 무엇보다 커피 사 올 때 가장 좋아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커피로 시작된 부탁은 항상 들어주게 된다는 게 나도 문제 아닌 문제긴 하다.
어제, 오늘 너무너무 아파서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일이 일어났다. 급체했는데 최근 컨디션이 워낙 안 좋았던지라 다 무너져버렸다. 체해서 무너졌다기보다는 그동안 누적된 것들 때문에 체하고 몸살도 온 것 같다. 골이 흔들리고 어지럼증 때문에 일어날 수가 없어서 출근도 못했다. 마냥 퍼져있을 수는 없는지라 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링거도 맞고 왔다. 몸이 아프니 죽도 안 넘어가고 커피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죽도 잘 못 먹으면서 커피는 마시고 싶은 나... 이 정도면 병적 강박 & 집착이 맞는 것 같다. 부디 내일은 컨디션 회복하여 출근도 하고 커피도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챌린지 형식으로 작성하는 글이라 죽이랑 약 먹고 잠시 앉아서 생각 없이 써 본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늘 완벽할 순 없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