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 보면, 아니 살다 보면 '진심'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쓴다. 우리의 진심을 이렇습니다. 왜 나의 진심을 몰라주니. 알고 보면 진심을 이랬답니다.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이건 진심이라구요! 매일은 아니지만 이 단어를 빼놓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일까 결코 가볍지 않은 이 말이 추임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술에 취해 '진짜 솔직히'라는 말로 말을 시작하던 사람처럼.
일을 하다 보면, 아니 살다 보면 진심은 진심이 아닐 때가 많다. 거짓을 감추기 위한 포장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잠시의 가식, 사실은 진심 없는 진심 어린 충고 아닌 잔소리,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입으로만 내뱉어진 마음 없는 말들. 그런데 어떤 것들은 진심보다 더 진심 같아서 우리를 감쪽같이 속이고 쉽게 낫지 않는 상처를 줄 때가 있다. 감쪽같이 믿었던 진심에 몇 번 데이고 난 후 우리는 진심을 진심으로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한편으로 '진짜 솔직히'를 두 번 반복해 강조하면서.
일을 하다 보면, 아니 살다 보면 진심을 의심받을 때가 있다. '너 그거 진심이니?'라는 말. 사랑을 확인하는 일 정도는 돼야 쓰는 말이라 생각했는데, 탕수육에 소스를 붓겠다는 말에도 '진심?'이라고 묻는다. 조금만 다른 생각과 취향마저 끊임없이 진심을 의심받는다. 대체 얼마나 속으며 살아온 걸까. 혹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걸까.
일을 하다 보면, 아니 살다 보면 진심은 깊이 숨겨두는 편이 나을 때가 더 많다. 솔직하지 못한 불편한 마음을 조금 삼키고 돌아서면 사는 게 좀 편해질 때가 많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야 괜찮아 솔직하게 다 말해봐라는 말에 진짜 솔직하게 말했던 사회 초년생 시절의 실수 같은 것들 말이다.
마음은 쉽지 않다. 진짜 마음은 더더더더더 쉽지 않다. 진심을 주장하는 것도, 추궁하는 것, 의심하는 것도 모두 마주하기 어려워서 그런 거겠지. 분초로 변하는 사람의 마음에 '진짜'를 붙이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거니까, 그런 건 원래 없는 거라 믿으며 사는 게 더 속 편하겠다. 진심, 아무것도 모르겠으니까.
(안이는 요즘 서운하면 곧잘 '아빠는 내 마음도 모르고!'라 말하고 팔짱을 끼고 눈을 흘긴다. 지금이야 그것이 눈에 보이는 말과 마음이라서 피식하고 웃거나, 대역 죄인이 된 거처럼 달래거나, 알아듣거나 말거나 싸우지만 안이가 진짜 자라서 진짜 마음을 모르는 날이 오는 날을 생각하면 진심, 좀 알고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