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W: D-100

꾸꾸일기 / 11. 14 - 20

by HYO

수능, 전역, 올림픽, 크리스마스, 그리고 출산 '백일 전'. 이 시간엔 저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백일 후에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한다. ‘백일 전’은 적잖이 많은 시간이 남은 거 같지만, 정신 차려보면 금방 지나고 마는 거짓말 같은 시간, 그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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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태어나기까지 앞으로 100일.




기다림

매일 함께 있으면서, 빨리 오길 기다린다. 존재는 알고 있지만, 정체가 궁금한 그를 간절히 기다린다. 참 희한한 기다림이다.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고는, 그럼 안 되지라며 말을 거둔다.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면서, 빨리 흘러서 만나는 날이 왔으면 한다. 사람들은 지금 이 시기가 제일 좋고, 분명 그리울 거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인간인지라 얼른 꾸꾸와 함께하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내일 당장이라도 꾸꾸가 옆에 누웠으면 정말 기쁠 거 같다. 그냥 지금의 시간을 떼어서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꾸꾸가 태어나면 천천히 흐르게 붙여줬으면 좋겠다.




꾸꾸 중심

누나가 조카를 낳고, 많은 부분들이 그 아이를 중심으로 달라지는 모습이 나는 좀 싫었다. 저녁 메뉴를 고르는 일도, 휴가를 떠나는 일도, 물건을 사는 일도, 휴일의 시간까지 모든 것이 아기가 우선되고, 집 안의 사물과 내 몸에 걸치는 것까지 조카들을 중심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고,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세제를 바꾸고, 돈을 모아 세탁기를 바꾸고, 거실 테이블을 갖다가 팔고, 내 옷 대신 아기의 옷을 더 많이 사고, 내 물건을 정리해 구석으로 치우거나 버리면서 아기의 물건을 사는 내가 될 줄 모르고... 꾸꾸가 태어나면 대부분의 스케줄은 물론이고, 취향마저도 아기에게 맞춰져 버리겠지. 그것은 좋은 건가 나쁜 건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인 건가...




처음을 함께 하는 기쁨

꾸꾸는 아무것도 모른 채 태어난다. 밥을 먹는 법도, 씻는 법도, 글씨를 읽는 법도, 걷는 법도 모른다. 토요일 오후엔 무엇을 해야 하고, 상대방이 화가 났을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그저 젖을 먹고, 똥을 싸고, 우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첫 경험이 될 텐데, 그 첫 경험을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어서 괜히 뿌듯하다. 우리로부터 밥을 먹는 법을 배우고, 말을 배우고, 걸음을 배우고,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니. 아무것도 대충대충 허투루 할 수가 없다.



앞으로 백일, 한 겨울을 보내고 봄이 올 듯 말 듯 사람을 애태우는 시절이 오면,

우리집엔 알고는 있었지만, 처음 만나는 꾸꾸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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