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꾸일기 / 11. 21 - 27
아주 가끔 학창 시절이 그립다. 그 시절의 가능성이나, 해맑음 때문이라기보다, 그냥 정답만 잘 맞히면 훌륭한 인생을 사는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그렇다. 사회생활은 물론이고, 아이와 관련된 일엔 정답이 없는 것 같아 너무 어렵다. 심지어 정답 대신에 수많은 답들이 있다. 우는 아기를 안아라, 안지 말아라, 교감을 해라. 이래라. 저래라... 뭐 어쩌라는 건지. 알면 알 수록 참으로 어려운 세계다. 여긴.
평온한 임신생활 가운데 드디어 걸림돌을 만났다. 아내가 임신성 당뇨에 걸렸다. 임산부의 5% 정도라는 낮은 확률과 몸에 특별한 변화가 없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임신성 당뇨환자가 되어버렸다. 임수 후 호르몬 변화로 인해 당을 잘 분해하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고 했다. (어쩌진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더라 같은 무식한 이야기는 통하지 않는다) 이제는 먹고 싶은 대로 먹지도 못하고, 먹고 싶지 않은 것도 반드시 먹어야 한다. 게다가 매일 같이 손가락을 찔러 혈당을 체크하고, 시험을 통과하듯 일정한 수치를 넘기지 않아야 하는 숙제도 매일 해내야 한다. 입덧이 끝나고 난 후, 먹는 거만큼은 즐거운 시절이 오나 했더니만, 다시 아무거나 먹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몸에선 먹으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사람이 되었으니... 먹는 걸로 많은 고생을 하는 것 같다.
_ 뭐 대충 이런 식사를 한다. 떡볶이나 돈까스를 먹을 수 없을 뿐, 맛있고 건강하다
언제나 그랬듯 병원에선 최선을 다해 비관적으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우리는 또 최선을 다해 그 말들을 지키고 있다. 일단 건강하게 식사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근육맨들의 식단처럼 적당한 비율의 탄단지를 계산해가면서 식사를 한다. 샐러드, 고기, 현미밥을 중심으로 짧은 경험과 블로거들의 검증을 거친 몇 가지 메뉴. 근데 생각보다 먹을만하고, 먹고 나면 건강해지는 느낌도 들어서 좋다. 그동안 얼마나 함부로 막 먹고 지냈는지 반성도 하고 있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건 일생의 축복이다. '내일 혹은 다음에 먹어야지'라는 생각 혹은 다이어트 같은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행동 따위 접어두고 먹을 수 있을 때 마음껏 먹읍시다.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이렇게 임신성 당뇨에 걸릴 줄 알았더라면, 아내는 떡볶이를 질리도록 먹었겠지...
속상했고, 걱정도 많이 되고, 하필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짜증도 많이 났었다. 그런데 아내는 또 꽤 씩씩하고 담담하게(물론 자주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한다고 짜증내고, 가끔씩 울기도 하지만) 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아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