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W: 남자의 임신생활

꾸꾸일기 / 11. 28 - 12. 4

by HYO

2019년의 달력이 한 장 남았다. 작년 이맘때 즈음 세웠던 올해의 계획은 지켜진 것이 하나도 없지만 계획에도 없던 꾸꾸를 가지게 되었으니 지키지 못한 약속들도 미련 없이 삭제. 배가 나오는 만큼, 겨울은 깊어지고, 꾸꾸에 대한 마음도 더욱 진해지고 있다.



임신을 겪는 남자들

‘아빠’라는 이름으로 임신 시절을 보내고 있다. 곧 태어날 아기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새롭게 변해가는 가족에 대한 만족감 못지않게 쉽지 않은 시절인 거 같다. 물론 수많은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겪고 있으며 목숨을 건 출산을 앞둔 ‘엄마’만큼은 아니겠지만. 이 시절의 남자들은 잘못은 하지 않았지만 죄를 지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한 밉상이 되기도 한다. 가끔 답지 않은 슈퍼맨의 역할을 부여받아 힘겨울 때도 있고, 야속한 존재가 되어버릴 때도 있다. 임신 시절의 남자에게도 힘든 마음이 있고, 지치는 날이 있지만 그 크기가 임산부의 것보다는 작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일들이 되어버린다. 위로받기보다는 상대를 다독이는 일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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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아이를 새롭게 보듯,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새롭게 보고 있다.




배만큼 불러가는 것

누군가의 남편, 아들, 동생, 친구, 선배 정도로만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의 ‘가장’이 되어버렸다. 아직 실감할 수 없지만 이 단어가 주는 부담감은 상당하다. 내일이라도 당장 그만둬야지 했던 회사를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지를 계산하고, 그만큼 다니면 아이는 몇 살이 되는지를 확인하고 있으니 말이다. 포기해야 하는 엄마의 인생만큼 아빠의 인생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어 초조한 오늘과 책임지고 함께 나아가야 할 불안한 내일에 대한 걱정의 크기는 ‘엄마’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아니 어떤 날은 더 클지도 모른다.




아빠를 생각한다

아직 뱃속에 있는 아기 하나도 어려운데, 지금의 내 나이 때 이미 세 아이의 아빠가 된, 나의 아빠의 삶을 가늠해본다. 지금의 나보다 더 바쁘고, 더 치열하고, 더 부족했을 그때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보통의 삶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별일 없이 셋을 무탈히 길러낸 지금의 삶도 상상할 수 없긴 매한가지다. 다시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아빠가 대단해 보인다. 자주 똑같은 스마트폰 사용법을 묻거나, 요즘 것들을 이해 못하는 아빠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한 것을 반성하면서. 매일의 고민과 걱정이 그런 아빠가 되어가는 좋은 거름이라고 믿으면서.



엄마가 될 사람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오늘만큼은 세상의 모든 아빠들에게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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