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홍콩 직딩 이야기
홍콩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아침 6시부터 10시까지는 밑으로 내려간다. 회사원들은 밑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맡겨 여름에는 덜 땀나게 겨울에는 느긋이 선선한 바람을 즐기면서 센트롤 중심가로 출근을 한다. 중간중간 에스컬레이터 옆쪽으로는 아침을 파는 카페에 들려 커피와 크로와상을 테크아웃해 에스컬레이터 출근길에 오른다.."라고 나의 센트롤 입성 로망을 이루고 싶었지만.
대부분 나는 고양이 세수하고 눈썹과 아이라인만 그린 대충 한 화장에 뺑뺑이 안경을 쓰고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뛰면서 센트럴로 출근을 했다.
그래도 아침 지옥철 타고 출근하는 것보다 도보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직으로 인해 "센트롤"이라는 직장인들의 성지에 출근하는 건 또 다른 매력이었다.
또한 우리 회사는 랜드마크 앞에 있었기에 완벽한 센트롤 중심이다. 더 상세히 말하자면 센트롤에 "더들 스트리트(DUDDELL STREET)"에 회사가 위치해 있고 200년 넘은 가스등과 홍콩의 최초 스타벅스 입점된 거리로 유명하다.
첫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Project manager로써 한국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한국에 팀이 있었지만 모든 한국 마켓의 셀링은 홍콩지점으로 넘어왔고 내가 조인하고 몇 달 후 한국팀은 없어졌다. 장점은 나 혼자 한국사람이어서 웬만한 한국 마켓은 혼자 담당을 했었고 또한 시니컬한 부분, 언어적인 장벽이 있는 부분까지 회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단점은 역시 외로움.
가끔은 같은 일을 하는 부분에 대해 한국말로 의논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말할 상대가 없었다. 이직한 회사는 달랐다. 홍콩에는 작게나마 한국 팀이 있었다.
한국은 팀 무적의 팀이야!
왜냐면 모든 나라를 커버할 수 있거든.
나에게 처음 스카우트를 제안했던 팀 매니저는 한국 팀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한국 팀이라고 해 봤자 고작 3명뿐이었지만 이제 나까지 들어왔으니 4명.
홍콩에 크고 작은 회사던 혹시 한국 팀이 있을 경우 한국 마켓을 커버하는 일이 있지만 영어, 한국어, 중국어까지 할 수 있었던 한국 팀은 한국을 넘어 영어권 국가, 중국 마켓, 동남아 마켓까지 커버하는 천하무적 팀이라고 했다.
팀메이트가 있는 건 너무 좋았다.
항상 모범을 보여주고 처음 모르는 걸 잘 가르쳐 주시는 시니어 매니저 분 J님. 항상 쾌활하시고 배울 점이 많은 B님. 외국계 회사이다 보니 서로의 대한 존칭은 거의 영어 이름을 불렀다.
다들 한국 사람들이고 비슷한 또래였지만 회사 안이니 서로에게 높임말을 썼다.
홍콩 직장문화는 조금 더 자유롭다. 그러면 직장 내 존재하는 상하관계가 있을까?
어떤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매니저가 있고 어떤 프로젝트에 대해 전해받아서 일하는 지급이 나눠져는 있지만 "내가 상사니 무조건 들어" 군대식의 상하관계는 홍콩 직장문화에서 보기 어렵다. 오히려 자기의 생각을 표현을 안 하는 자체가 마이너스이고 자기 일에 대한 생각을 자주 묻는 편이다.
그래도 직장생활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나의 라인 매니저의 이야기를 들어야 될 때도 있으며, 잘못한 일처리에 대해서는 일에 대한 조언과 방향을 제시해 줄 때도 많았다. 영어라는 언어 자체가 높임말이 존재하는 언어는 아니지만, 예의 있게 말하는 법, 공손한 표현, 정중한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쓰이는 표현 자체가 친구처럼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어에 대한 공손한 표현은 다른 편에서 이야기해 보겠다. 회사에서는 대체적으로 "Please"를 안 쓰는 이유)
무적의 팀 " 한국팀"에 더 이야기해 봐야겠다.
나의 첫 직장에서 그리웠던 것이 있다면 아이러니하게 "한국어"가었다. 특히, 업무를 보면서 잘 이해가 되지 않거나 해결해야 되는 부분이 있을 때 정확하고 빠르고 쉽게 이해되는 모국어인 한국어로 듣는다면 더 이해가 빠르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분명 한국 회사에서 인턴의 경험이 있지만 그것 또한 북경지사에 있는 대기업 소재였기 때문에 한국에서 파견된 주재원이셨던 분이 많으셨다. 한국말 중국말을 다 잘하시는 조선족 분들도 계셨고 같이 인턴 하는 한국 선배들도 있었다. 한국어에 대한 그리움이 없었다. 오히려 한국어로 보고를 해야 되었으면 그 한국어를 중국어로 번역하는 업무도 있었고 벤더들과 중국어로 소통할 때가 있었지만 한국기업은 한국어가 메인이 되는 언어였다.
대학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학 수업 때 온종일 중국어로 듣고 중국어로 시험을 치고 리포트를 적었지만 혹여, 학교 발표에 중국 친구를 만난다고 해도 나의 생활안에는 나와 같은 유학생인 신분의 친구들이 있어서 한국어를 때어 놓을 수가 없었다.
홍콩의 직장생활은 달랐다. 신입 동기가 없는 이곳은 혼자서 해결하는 부분이 많다.
첫 직장은 우리 부서에는 나 말고 한국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인 경우가 많았다. 나중에 다른 부서에 한국분들이 있어서 삼삼오오 함께 점심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업무를 진행할 때는 오로지 영어로 진행을 했기 때문에 언어에서 오는 답답하면 항상 있었다. 홍콩 매니저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었고 나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척하면 척"의 속도전에서 항상 우린 시간이 걸렸다. 또한 한국 마켓의 클라이언트더라도 인하우스(같은 계열 사)였기 때문에 그룹에서 지정했던 모든 업무는 영어 이메일이 원칙이었다.
이직을 하면서 이 부분이 조금은 해결되었다.
우리 팀에서 시니어 분이셨던 S님은 상해에서 공부를 하셨고 B님은 한국에서 명문대학을 나오셨는데 부모님께서 중국에서 사업을 하셔서 어릴 때 중국에서 살았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한국에 세일즈를 담당하셨던 K님은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셨다고 했다. 이상하게 신기했던 건 모든 분들이 영어에 능통하셨고 플러스 중국어까지. 그러니 " 전 세계를 커버할 수 있는 무적의 팀"이라고 한국팀이라고 불렀다.
영어 마켓을 커버할 때는 영어로 업무를 했지만 한국 마켓의 경우는 무조건 한국어로 이메일을 작성해야 했다.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다니" 즐거웠다.
"척하면 척"이라고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로 사용해서 일을 할 수 있다니. 더 쉬울 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나의 착각이었다.
리서치 용어를 사용할 때 모든 자료들은 영어로 적혀있기 때문에 영어로 습득하고 영어로 트레이닝을 받고 영어로 이메일 업무를 진행에 나는 이미 익숙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한국 마켓에서는 한국어로 다시 적고 " 아 다르고 어 다른" 한국어의 미묘한 차이를 이해해야 되었다. 한국어로 업무를 보는 건 더욱 쉽지 않았다. 또한 맞춤법. 띄어쓰기. 문장을 마무리하는 어법, 어휘 표현 모든 것을 생각하고 이메일을 적어나가야 되었고 한국어로 컨퍼런스 콜을 해야 했다. 정말 영어만 하는 환경에서 갑자기 한국어로 컨퍼런스 콜을 한다면 어떤 특정한 단어는 순간적으로 한국어가 아닌 영어단어가 나갈 때가 있었다.
해외에서 오래 사신 분 중에 예전에 왜 저렇게 영어를 넣어서 이야기하지? 잘난 척 하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겠다.
그냥 한국어로 단어가 전혀 기억에 나지 않는다. 빠르게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한국 클라이언트 콜이 끝나고 한국 이사님께 연락이 오고 아이러니하게 모국어인 나의 한국어를 평가받아야 했다.
"캐런 씨, 한국어 표현 방법이 좀 어색한 거 같아요"
고민에 빠졌다. 나름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소싯적 글짓기 상도 많이 받았다. 모국어인 한국말에 대한 평가는 그야말로 큰 충격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홍콩 생활은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한국말을 안 해도 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미드를 더 자주 봤고 한국 친구들보다 외국 친구가 훨씬 더 많았다. 또한 첫 직장에서 영어로 업무를 더 많이 처리하니 업무에 관련된 영어가 더 익숙해졌다.
불금을 맞이하는 어느 금요일. 난 팀원들에게 200년 된 가로등이 유명한 스타벅스 앞에서 다리에서 커피 한잔을 하자고 했고 바쁜 일은 처리하고 오후에 커피 한잔의 여유를 가졌다.
진지하게 우리 팀원들에게 나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래도 나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대학을 안 나온 팀원들도 있었고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외국에서 살아서 영어와 중국어를 주 언어로 과목을 공부한 팀원들도 많았다. 우리 모두가 한국에 살지 않기 때문에 듣는 한국어도 적어서 그런지 점점 한국어가 점점 퇴행한다고 느낀다고 했다.
무적의 한국팀이라고 회사에서 이야기했지만 사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팀원 모두 나름대로 언어에 대해 고민이 있었다. 영어로도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해야 하면서 한편으로 한국 마켓은 한국어로 진행을 해야 하고 많지는 않지만 중국 클라이언트는 중국말을 해야 했기 때문에 대부분 항상 긴장되어 있었다. 이 상황에 어떠한 단어가 적절한지 아닌지를 매 순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 캐런 씨 걱정 마세요, 일에 익숙해지면 또 다 하게 되더라고요. 다 완벽할 수는 없더라고요. 우선 네이티브 영어&중국어가 아닌 걸 인정하고 많이 듣고 말하고 적어야 되겠더라고요"
그럼 한국말은요?
"저희랑 이야기하면 되죠!" 그리고 서로가 한참을 웃으면서 나는 팀원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무적의 한국팀은 모든 마켓을 다 할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그걸 만들기 위해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곤 분투하며 삶과 일에 대해 고민하는 20대의 후반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