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홍콩 직딩 이야기
한국에서 자라오면서 통성명 이후에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면 "실례지만 혹시 몇 살이세요?"인 거 같다.
학교 다닐 때는 "몇 학년이야?" "고등학교 2학년요." 이렇게 학년으로 대답하면 서로가 다 나이를 짐작하듯이 성인이 되고 나서도 불특정 한 다수가 모여 인사를 하고 통성명 이후에 나이에 대한 질문은 빠지지 않았다.
심지어 꼬마친구들을 보면 나는 6살이고 너는 몇 살이야? 내가 언니네, 너는 동생이고 하는 걸 보면 나이에 대한 우리의 질문은 아주 통상적으로 어릴 적부터 습관적으로 해 왔던 것 같기도 하다. 나이를 듣는 순간 나를 기준으로 나이가 많고 적고에 따라서 언니인지 동생인지 호칭이 달라진다. 우린 아마 어릴 때부터 상대방이 몇 살인지 알아야 언니, 오빠, 형, 누나 나누어지는 호칭으로 이어져 몸에 자연스럽게 배인 거 같다.
해외 직장생활에서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나이에 대해 서로가 전혀 묻지 않았다. 친한 동료에게는 나이를 물어보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호칭을 쓰면서 이야기했지만. 우리 팀 경우 서로 나이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서로에게 묻지도 않았다.
나중에 몇 개월이 한참 지나 서로의 나이를 안다고 하더라도 거기까지. 내가 어리다고 해서 혹은 내가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떠한 변화가 없었다. 서로에게 존댓말을 사용하고 직장생활에서는 굳이 나이가 중요하지 않았다.
홍콩에서는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어 있는 많은 엑스 팟을 만난다. 특히, 이웃집 독일 가족의 4살이 꼬맹이도 나의 이름을 부른다. 처음에는 어떻게 "안티 캐런"이라고 안 부르고 캐런이라고 부르지? 아직 애라서 모르는 건가? 더욱이 엄마 아빠가 고쳐주지 않는 거 보니 호칭+이름, 혹은 호칭을 무조건 넣어서 부르는 건 특히 아시안 문화가 들어가는 거 같다. 홍콩에서는 주변에 친구네 가족들을 보면 이모, 삼촌 관계에서 호칭+이름 들을 수 있었다. 안티 로제, 엉클 핸리 등 한국말로 한다면 숙자 이모 철수 삼촌이 되겠는데 어릴 때는 이름+삼촌&이모를 불러왔는데 커가면서 어느새 이름은 사라지고 호칭만 부르게 된 시점이 있었던 거 같다. 아니면 사는 지역을 해서 추가해서 제주도 이모 이렇게나 혹은 큰 이모 작은 이모, 큰 아빠 둘째 아빠, 막내 삼촌 이렇게 호칭을 사용해 더 많이 사용해 온 거 같다.
아빠의 형제는 삼 형제에 큰고모가 있다. 아빠는 막내 늦둥이 아들로 태어나셨다. 상자 돌림을 쓰셨던 아버지 형제는 큰아버지의 성함은 금자 상자, 작은아버지 성함은 은자 상자, 이쯤 하면 우리 아빠의 성함은 동자 상자가 되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우리 아버지 성함은 만자 상자. 어릴 때 혼자 발견하고 막 웃고 아빠에게 장난으로 아빠 이름만 왜 달라? 메달 순위에서 밀렸어? 이런 웃습게 이야기도 하고 했었는데. 이름+호칭으로 부르는 걸 생각하니 영 어색하다.
생각해보면 10대, 20대 손자들이 60-70대 조부모의 이름을 부르는 걸 영화에서 심상치 않게 본거 같다.
외국사람들이 많이 있는 홍콩 직장문화도 호칭은 거의 없다. 글로벌 시니어 매니저분들이 왔을 때도 나보다 더 시니어 급 매니저를 부를 때도, 나보다 나이가 적든 나보다 나이가 많든 서로에게 이름만 부른다.
이름만 부른다 라는 건 회사 문화에서도 비교적 수평적인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내가 어려서 아님 내가 여자여서 일에서 밀리거나 중요한 일을 맡지 않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국팀의 분위기도 비교적 수평적인 문화였다. 서로 나이에 대해서 묻지를 않았고 비교적 조금 친해져서야 어디에 사는지 남자 친구는 있는지 없는지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가 오고 갔었다. 선이 넘지 않을 정도로 서로에 대해서 원하는 만큼만 물어봐주고 프라이버시를 지켜주었다.
나에게 익숙하게 느껴졌던 나이 때문에 바꿔지는 존칭어, 서열, 행동들은 나이에 전혀 개의치 않는 홍콩 문화에서 훨씬 자유로움을 느낀다. 존칭어가 발달하지 않는 영어에서는 상대방이 보스라고 해서 아님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예의를 지키는 조건 아래 내가 이야기 못할 이유가 없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말을 안 하거나 혹은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나이 에피소드가 있다. 불금은 직장인들에게 특별하다. 매주 불금은 친구들과 함께 라운지에서 칵테일을 마시거나 맛있는 집을 찾아다니기 바빴다. 홍콩은 비교적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고 새로운 사람들에게도 오픈되어 있다.
나와 나의 남자 친구도 동갑내기 친구의 초대를 받아서 바를 찾았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동갑내기 친구가 조금 늦게 왔었는데. 그 동갑내기 친구의 선배가 술을 가득 따르면서 늦게 왔으니 벌주로 3잔 마셔라고 했다. 동갑친구는 마시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마시는 상황이 되었다. 중국계 미국인이었던 내 남자 친구는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 살 차이밖에 안 되는 친구(?)한테 어떻게 저렇게 대우를 하냐고. 그렇게 따지면 자기가 그 술을 먹인 그 친구보다 한 살 더 많아서 나도 저렇게 해도 되느냐고 이해 못 하는 표정이었다.
한국은 나이에 따라 호칭부터 존칭과 심지어 행동도 달라지긴 해. 친하고 안 하고 행동이 달라질 수 있지만, 나이가 많아서 동생한테 마시라고 하는 거 같은데.
그래?
그럼 형이니 그럼 다 오늘 술값 다 낼 수 도 있는 거네? 남자 친구가 다시 나에게 물어보았다.
그럼 얼마나 좋을까? 나는 웃으면 대답을 했다.
물론 그 당시 테이블 술값은 다 더치페이를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