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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달 Nov 28. 2021

편지 쓰기

끊임없이 상대를 생각하게 되는 마성의 글쓰기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한다.

사진보다 그 당시의 감정, 생각을 더 쉽게 묘사하고 느낄 수 있어 한 번씩, 서랍에서 꺼내어 보기도 한다.

대화, 소통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하물며 상대가 내 메시지를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요즘 세상이다. 편지는 단방향에다가 느리기까지 하지만 쓰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끊임없이 정제되고 다듬어진 하나의 상대에 대한 마음이다.


  첫 편지는 초등학교에서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였다. 남들 다 하는 흔한 내용.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효도할게요'

 당시 이 주제를 가지고 별로 크지도 않은 편지지를 꾸역꾸역 채우는 것인 힘들었다. 시키니까 그냥 썼지 뭐.

그렇게 오랫동안 쓰지 않다가 대한민국의 20대들이 모두 작가가 되는 순간. '군대'다.

 자대를 가게 되면 전화도 하고 가끔 인터넷도 쓸 수 있다고 하지만 이 감성이 마음에 들었는지, 훈련소는 아직도 모든 연락수단을 차단하고 손편지와 인터넷 편지만 가능하다. 훈련소에서 받아보는 부모님의 편지에 뭉클했던 기억은 한 번쯤 있지 않을까. 전역만 하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고 성공할 것 같았던 군대 생활이 끝나고 그렇게 편지는 한 동안 잊혀 간다.

 연애를 하면서도 편지를 많이 쓰지 않았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감정과 표현에 서툴렀다. 결론 - '좋아해'를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서로가 글을 쓰는 것엔 익숙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편지 말고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 왔다. 그래도 충분했으니까.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편지 쓰기는 결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과정'의 아름다움이다. 편지를 쓰자고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다 쓴 편지를 상대에게 전해주는 일련의 과정이 가져다주는 두근거림이 있다. '편지 쓰기'를 시작한 순간부터 상대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글을 쓰고 수정하고 반복해서 마음을 완성시켜 나간다. 때로는 편지를 쓰면서 처음 예상했던 주제나 내용보다 감정이 더욱 깊어지기도 한다. 계속해서 상대를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한 번 뱉으면 담을 수 없는 말과 달리 글은 상대가 읽기 전까지 스스로가 주워 담을 수 있다. 조금 느린 나에게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라는 점에서 편지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지금도 편지를 쓰게 되면 쓰는 내내 오롯이 편지의 대상에게 집중하고 상대와 관련하여 평소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며칠 전,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편지를 썼다.

친구의 생일을 맞아 선물과 함께 편지를 고민하기를 한 달...

날이 다가와도 편지의 내용은 떠오르지 않았고 고민만 하다

이틀 전 새벽 네 시, 문득 잠에서 깨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두 시간 동안 내리 글을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된 초안을 보고 시계를 보니 새벽 여섯 시

'분명 새벽 감성이라서 다시 읽으면 이불 킥 세게 하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잠을 청했다.


그렇게 오후에서야 잠에서 깨어 다시 읽어본 초안은 예상대로 개판이었다. 문법도 안 맞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술 취한 사람 마냥 괴발개발. 다행히도 전하고자 하는 큰 틀은 잡았다고 생각해서 또다시 수정 수정.

어색한 단어나 문장은 맞춤법 검사기에도 돌려보고 소리 내서 읽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마음으로 이 단어나 문장을 썼을까도 생각해 본다.


이제 마지막이다. 어느 정도 완성된 편지를 실제 편지지에 옮겨 적는 작업이다. 편지지에 옮겨 적는 동안 내가 쓴 편지를 다시 한번 읽음으로써 마지막 교정에 들어간다. 그렇게 두세 개 정도 어색함을 다시 바로잡는다. 글자체도 신경 쓰인다. 글자체라고 하기엔 두 가지밖에 없지만 이 날 따라 마음에 드는 정도가 다르다. 결국 처음 썼던 글자체를 버리고 다시 새로운 편지지에 내용을 옮겨 적는다. 진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래도 완성 후의 자기만족의 정도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렇게 마침표를 찍고. 봉투에 넣어 마스킹 테이프로 마무리까지 한다. 몇 번이고 다시 꺼내어보고 싶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제는 만나서 편지를 잘 전해줘야겠다.라는 설렘만 남아 있다.


편지는 무사히 전해졌다. 노파심에 선물과 함께 편지도 넣어놨다고 선물이 든 가방을 그냥 버리지 말라는 말도 헤어지고 나서야 전했다. 사실 상대가 어떠한 반응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엄청난 리액션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잘 전해졌으면 좋겠다.

 편지를 쓰는 마음조차 편지의 내용이라고 한다. 나 또한 그러하다. 상대에 대한 마음을 다잡고 정리하는 시간. 나에게는 그 시간이 바로 편지를 쓰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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