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그렇기 때문에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인간관계에 있어 하나의 '수단'이라고들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기대를 하고 있었기에 그 기대만큼 부응하지 못할 경우 돌아오는 것은 아쉬움 그리고 실망이다. 기대하지 않아야 나중에 기대가 무너지더라도 상처 받지 않는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는 관계가 과연 좋은 관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기대란 단순하게 '뭘 해줬으면 좋겠어'와 같은 바람만이 아니다. 관심의 척도이기도 하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와 같은 대상과 관련한 정보를 바탕으로 해서 기대가 만들어진다. 정보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기대는 더욱 구체화된다. 친한 사이일수록 파악하고 있는 정보의 양은 많을 것이고 구체화된 기대는 '실현 가능한' 형태의 기대가 된다. 그리고 그 기대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깊은 관계일수록 터무니없는 기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대'와 '충족', 이러한 단순한 내면의 행위들은 반복될수록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어 준다.
당연히 관심이 없으면 기대를 하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누구랑 있든 관심 없다. 기대는커녕 생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에 당신이 들어올 자리는 없다.
꽤나 오래전에 들었던 말임에도 불구하고 잊히지가 않는다. 실망을 주기 싫으니 기대를 하지 말라는 뜻으로 말한 것 같은데 이 뜻도 마음에 들진 않는다. 애초에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또는 안 할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는 이를 '본인은 관계의 개선에 있어 노력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느껴졌다. 좀 더 나아가면 '죽을 텐데 왜 사냐.'라는 말과 진배없다.
태초에 완벽한 것은 없다. 여러 번 깎이고 다듬어져서 더 나아지는 것이 사람이고 삶이며 인간관계인데 그때의 말은 본인에게 관심을 끊어달라는 지극히 소심하지만 확실한 표현이었을까?